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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춤이”…청각 장애인에게 BTS가 쏘아올린 ‘수어’의 공

중앙일보

입력

BTS 퍼미션 댄스 뮤직비디오에서 국제 수어를 사용한 사례에 대하여 15일 청각 장애를 가진 이준만(28)씨가 중앙일보 사옥에서 인터뷰하는 모습. 우상조 기자

BTS 퍼미션 댄스 뮤직비디오에서 국제 수어를 사용한 사례에 대하여 15일 청각 장애를 가진 이준만(28)씨가 중앙일보 사옥에서 인터뷰하는 모습. 우상조 기자

“수어와 밝은 표정이 합쳐지니 저도 모르게 춤을 따라 하고 싶더라고요. 수어 덕분에 노래를 이해하기가 더 쉬워요. 청각 장애인들은 다 공감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아미(방탄소년단 팬클럽 이름)이자 중증 청각장애인인 이준만(28)씨에게 방탄소년단(BTS)의 신곡 안무 이야기를 꺼내자 활짝 웃으며 이같이 답했다. BTS가 지난 9일 공개한 신곡 ‘Permission To Dance(퍼미션 투 댄스)’ 뮤직비디오에서 선보인 국제 수어 안무가 이목을 끌면서다. 지난 11일 테드로스 게브레예수스 WHO 사무총장은 자신의 트위터에 “BTS에 감사하다”며 “세계 15억 청각장애인이 음악을 즐기고, 삶의 활력을 느끼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칭찬했다.

청각 장애인 노래 못 듣는다? “박자 통해 음악 느껴”

'춤'을 국제 수어와 한국 수어로 표현하고 있는 이준만(28)씨. 정희윤 기자

'춤'을 국제 수어와 한국 수어로 표현하고 있는 이준만(28)씨. 정희윤 기자

한국 수어뿐만 아니라 미국 수어 등 국제 수어에 능통한 이씨는 “BTS의 지난 앨범 ‘Butter’에도 버터를 표현한 국제 수어가 들어갔다”며 “이렇게 국제 수어에 관심이 있는 아이돌은 처음이라 놀랐다. 한국 수어도 전파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고 했다.

청각 장애인이 노래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은 편견이었다. 이씨는 "스피커랑 가까이 있으면 전율이 몸을 타고 들어와 음악을 잘 느낄 수 있다"며 "박자를 통해 음악을 즐긴다“고 말했다. 이씨가 가장 좋아하는 노래는 가수 임재범의 ‘너를 위해’다. 그는 "가장 좋아하는 장르는 발라드"라며 "느린 비트를 느끼다 보면 가사의 슬픈 느낌이 그대로 느껴져 가사를 따라 음악을 즐길 수 있다"고 말했다.

“장애인 의료 장벽 없애고 싶어"…미국 유학길

이씨는 미국 유학 경험을 통해 미국 수어와 국제 수어를 배웠다고 한다. 그는 “대학 진학 때 의료 관련 학과에 지원했지만 청각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며 “미국에는 장애 차별법 등이 잘 제정돼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영어나 미국 수어도 몰랐지만, 유학을 결심했다”고 설명했다. 지난 2015년 겨울 이씨는 의료계에 종사하고 싶다는 꿈을 찾아 22살의 나이로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지금은 캘리포니아주 노스리지대학교에서 신체 운동학(kinesiology)을 전공하고 있다.

그가 의료계 종사 꿈을 키운 건 운동선수로 활동하면서 받았던 진료 경험 때문이다. 한국 농아인 컬링 국가대표 선수이기도 한 이씨는 지난 2015년 러시아 한티만시스크 데플림픽(동계농아인 올림픽대회)에 출전했다. 그런데 훈련 당시 의사나 물리치료사와의 소통이 원활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씨는 “의사소통이 잘 안 되고, 수어 통역사는 의학 용어를 잘 모르니 제대로 아픈 곳을 설명하고 치료를 받기 어려웠다”며 “나 같은 청각 장애인에게 편하게 의료를 접할 수 있게 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청각 장애인은 주로 필담(筆談)으로 진료를 보거나 필요하면 수어 통역사를 대동한다. 이씨는 “한국은 수어 통역사 수가 부족해 원하는 시간에 필요한 서비스를 받기가 힘들다”며 “미국의 경우 청각 장애인 환자가 진료 예약을 하면 미리 기관에 연락해 통역사를 섭외해놓는다. 우리 입장에서 정말 편리하다”고 말했다.

"수어 사용하면 집요한 시선 느껴져"

중앙일보 사옥에서 BTS 퍼미션 댄스 뮤직비디오에서 나온 국제 수화 중 '평화'를 뜻하는 포즈를 취하는 이준만씨와 박남희 한국농아인협회 대리. 우상조 기자

중앙일보 사옥에서 BTS 퍼미션 댄스 뮤직비디오에서 나온 국제 수화 중 '평화'를 뜻하는 포즈를 취하는 이준만씨와 박남희 한국농아인협회 대리. 우상조 기자

이씨는 이번 BTS 신곡을 계기로 수어뿐만 아니라 청각 장애인에 대한 인식이 개선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수어를 사용하면 사람들의 집요한 시선이 느껴져 동물원의 동물이 된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가 많다”며 “각자 사용하는 언어 방식은 다르지만 같은 사람으로서 존중받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또 “지금 다니는 대학교의 경우 전문 수어 통역사가 100명 정도 있어 수업을 듣는 데에 많은 도움이 된다”며 "한국도 관련 정부 예산이 조금이라도 늘어나 수어 통역사가 늘어났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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