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서로 벌거벗는 것, 나는 네것 너는 내것”

중앙선데이

입력 2021.07.17 00:02

업데이트 2021.07.17 0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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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5호 18면

『프루스트를 읽다』 낸 92세 불문학자    

평생 대학에서 프랑스 문학을 가르쳤다. 일본어를 경유하지 않고 프랑스 문학에 직접 접근한 첫 세대로 꼽힌다. 문학은 단순한 예술 장르가 아니었다. 사회적 항의이자 자기 해방의 길이었다. 그런 미래를 약속하는 실존주의 문학을 활발하게 국내에 소개했고, 1960년대 한국문학을 비이성적이라며 질책했다. 한동안 자연주의 소설 연구에 눈을 돌렸지만 쉰 무렵 결국 돌아왔던 곳은 실존주의 문학, 사르트르 연구였다.

정명환 서울대 명예교수
『잃어버린…』 완독한 척 부끄러워
하루 한두 시간 읽으며 5년간 집필

감성·지성·통찰력 등 갖춘 프루스트
‘사랑은 질투’라 생각하는 건 한계

간추려본 원로 불문학자 정명환 서울대 명예교수의 지적 편력이다. 이렇게 사르트르 애호가, 사르트리앵(Sartriens)을 자처하는 삶을 살았던 그가 최근 프랑스 현대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1871~1922)에 관한 책을 냈다. 1929년생, 무려 아흔두 살의 나이에 벌인 일이다. 프루스트의 대하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특유의 비판적·분석적 시각으로 읽고 그에 대한 나름의 생각들을 『프루스트를 읽다』(현대문학) 안에 풀어냈다. 프루스트 소설 인용을 많이 하고 있어, 간접 독서도 되는 책이다.

정명환 서울대 명예교수. 아흔둘의 나이에 방대하고 난해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독하고 『프루스트를 읽다』를 냈다. [사진 현대문학]

정명환 서울대 명예교수. 아흔둘의 나이에 방대하고 난해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를 완독하고 『프루스트를 읽다』를 냈다. [사진 현대문학]

#제자인 문학평론가 김화영씨는 스승의 책을 두고 이런 감상을 밝혔다. 뒤표지 추천글에서다.

“90이 넘도록 장기간에 걸친 고산준령이나 심해의 탐험을 마다하지 않으며 거기서 매 순간 명철한 의식과 균형을 잃지 않는 비판정신을 유지하며 삶을 부감한다는 것은 실존적 은총이다.”

준령, 심해는 물론 방대하고 난해하기로 악명 높은 『잃어버린…』을 뜻한다. 명철한 의식 등등은 정 교수의 책을 읽어보면 알 수 있는 일. 그런데 노학자는 인생 황혼이라는 표현조차 물색없게 느껴지는 나이에 왜 꼭 프루스트라는 문학 해협을 건너야 했을까.

정 교수는 머리말에서 평생 불문학자로서 부끄러움을 간직해 왔다고 했다. 실제로는 『잃어버린…』을 완독하지 않았으나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내용을 익히 아는 것처럼 행세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부끄러움과 뻔뻔함을 조금이라도 해소하지 않고서는 편히 눈을 감을 수 없겠다는 생각이 커졌다고 한다. 2016년 초부터 ‘죽음과의 경쟁’을 시작했다. 국내 2개 번역본이 모두 12권씩으로 구성된 방대한 소설. 기력이 달려 하루 한두 시간씩 읽고 몇 자 적는 5년간의 거북이걸음이었다.

정 교수의 전화 인터뷰 목소리에서는 뜻밖에도 세월이 묻어났다. 몇 해 전 한두 차례의 병치레 영향인 듯했다. 하지만 그의 정신은 팽팽한 문장만큼이나 또렷하게 느껴졌다.

『프루스트를 읽다』

『프루스트를 읽다』

머리말에 써놓으셨지만 무척 힘드셨겠습니다.
“내 몸이 약하니까 그렇죠. 다른 사람 같으면 2년이면 충분했을 겁니다.”
감회 한 말씀 하신다면.
“꼭 내 유작을 보는 것 같아요. 허허. 이제는 그야말로 기운이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게 됐습니다.”
사르트르 실존주의 연구자로서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완독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20세기 불문학에서 가장 으뜸가는 책이 프루스트의 『잃었던 때를 찾아서』(※정 교수는 책 제목을 이렇게 표현했다)라고, 아주 공인사항입니다. 그래서 정말 전권을 샅샅이 읽어볼 생각을 했습니다.”
읽어보시니 어떠셨나요.
“프루스트는 아주 병약하고, 고질적인 천식이 있어서 의식이 미래의 창조로 향할 수는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죽음의 그늘을 끼고 살았죠. 그래서 삶의 의미를 과거에서 찾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과거의 시간을 찾아간 건데, 소설의 매력이 엄청납니다. 잃었던 과거를 찾아가는 과정과 그것을 제시하는 언어에 우리는 매혹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보통 사람은 가질 수 없는 두 가지를 이 사람은 겸비하고 있어서입니다. 가령 감성과 지성, 그리고 통찰력과 추리력, 상상력과 관찰력, 이런 걸 한꺼번에 가지고 있어서 그것들을 바탕으로 언어를 구사하는 그 매력은 도저히 견딜 수가 없을 정도의 매력입니다. 그런데 읽어 나가다 보니까 이 사람에게도 한계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어떤 건가요.
“그 한계 중 하나가 사랑에 관한 겁니다. 사랑이라는 것은 서로 까놓고, 말하자면 서로 벌거벗는 거죠. 나는 네 거고 너는 내 거다, 이렇게 돼야 사랑이 되죠. 그런데 이 소설의 사랑에 있어서는 그렇지가 않아요. 말하자면 남자는 옷을 단정하게 입고 여자는 벌거벗기는 식이에요. 남자는 항상 불안해합니다. 여자의 마음도 몸도 자기의 것으로 만들고 싶은데, 어떻게 몸은 그렇게 한다고 하더라도 마음이 내 것이 됐다는 증거가 없어서죠. 여자가 무슨 짓을 하고 다닐지 모르니까 늘 살피고 질투를 합니다. 그래서 사랑은 질투다, 말하자면 이런 식의 생각을 표명하고 있는데 나는 이것이 사랑의 본질, 진실한 모습 같지는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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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선생님이 생각하시는 사랑의 진실한 모습은 어떤 겁니까.
“아시다시피 괴테 소설의 주인공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의 평화를 위해서 자살을 하지 않습니까. 또 도스토옙스키의 장편소설 『백치』를 보면 나스타샤라는 타락한 여자가 백치 무쉬킨의 아내가 된다면 그 순수한 사람을 오염시킬 거라는 생각에서 자기의 정부였던 사람을 찾아가 결국 죽음을 당하죠. 토마스 만의 중편소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에서 아센바흐 교수는 동성애 소년의 순수성을 더럽히지 않기 위해서 먼발치에서 힐끗 바라만 보다가 유행병에 걸려서 죽고 맙니다. 이런 식의 상대를 위한 자기희생의 사랑도 있거든요. 그런데 그런 것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고, 또 서로가 발가벗자는 것도 아니고 나는 옷 입고 너는 벌거벗어서 너를 내가 완전히 소유하겠다, 나는 내 독립을 지키겠다, 이런 태도는 사랑의 진보가 아니죠.”

프루스트 소설에 대한 정 교수의 불만은 이어졌다. 작가의 분신인 소설 화자가 치밀하게 따져 보면 천식으로 인해 요양소에서 보낸 시간만 수년에 이를 정도인데, 그런 자전적 사실이 소설 주제에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서인지 싹 빼버렸다고 지적했다. 잃어버린 시간을 진실하게 찾겠다고 해놓고 결국 픽션으로 전락했다는 점에서 프루스트의 한계라는 것이다. 발언은 어느새 정 교수 자신의 문학 성향에 대한 이야기로 옮아갔다.

“마지막으로 프루스트가 나에게서 멀구나 생각하는 것은, 건방진 얘기일 수 있는데, 나는 나 자신이 싫고 나 자신을 미워하고 나 자신을 비판하기 위해서 문학으로 뛰어들어갔어요. 그래서 나하고 다른 이질적인 사람들을 반겼죠. 행동하는 사람, 모험하는 사람, 남을 위해서 봉사하는 사람, 죽음을 무릅쓰는 사람, 이런 사람들의 문학을 반겼어요. 말하자면 실존적인 사람들이라고 할까요. 가령 생텍쥐페리라든가, 앙드레 말로라든가, 카프카 같은 사람들의 문학에 익숙해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내 밖으로 나가고 싶어서 문학을 했는데, 프루스트는 자기중심적이에요. 내가 세계를 향해서, 이질적인 바깥을 향해서, 나 자신을 내놨다고 한다면 프루스트는 거꾸로 세계를 자기 속으로 흡수한 사람입니다.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고 소화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아, 이 사람은 나하고는 지향이 맞지 않는구나, 이런 생각을 했습니다.”

정 교수는 “다만 소설의 마지막에 나오는 프루스트의 예술론에 대해서는  전폭적으로 동의한다”고 했다. 또 “그렇게 전폭적인 동의로 책을 끝내는 것이 그나마 행복하다”고 했다.

평생 연구하신 실존주의는 요즘 사람들 관심에서는 멀어진 것 같습니다.
“당연하죠. 급변하는 기술사회에 적응해야 하는데 그런 걸 생각하다가는 뒤처지죠. 하지만 나 자신은 뭐냐, 나는 왜 사느냐, 이렇게 자기를 대면하는 일을 휴가를 가거나 한가한 시간에 젊은 사람들이 한 번쯤 시도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내 책 같은 것도 읽어주면서요. 그것이 진실한 인생이고 기술사회에 동조하는 생활의 방편이지 자기를 대면하려는 태도 자체가 생활의 본질은 아닌 것 같습니다.”
결국 실존주의는 자기를 대면하는 것이라는 말씀인가요.
“그렇죠. 그런 것도 실존주의죠. 자기 존재를 따지는 건 모두 넓은 의미에서 실존주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보람 있던 일이나 순간을 꼽는다면요.
“훌륭한 후배들을 몇 두고 있는 것이 그렇게 행복해요.”
앞으로 계획이 있으십니까.
“무위도식의 방법을 배우려고 합니다. 이제는 기운이 없어서 아무것도 못하는데 그 무위도식이라는 게 어렵거든요. 머릿속을 비워야 하는데 자꾸 이 생각 저 생각 쓸데없는 생각이 떠오르니까. 그래서 이제 무위도식을 위해서 수양을 하려고 합니다.”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십니까.
“주로 좁니다. 허허. 자꾸 피곤해지고 기운이 없어지니까 졸음이 그렇게 오는군요.”
더 하실 말씀이 있다면요.
“내가 글은 앞뒤가 맞게 쓰는데 말은 어떻게 자꾸 어긋나요. 그러니까 내가 지금 한 말을 다듬어주십시오. 많이 빼기도 하고 보태기도 하고 해서 좀 조리 있는 말로 바꿔주세요.”
‘기억의 연금술’로 사회 이슈까지 건드린 소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사진)는 독자에게는 까다롭기 짝이 없는 소설이다. 프랑스 원서로 7권에 이르는 분량도 그렇지만 문장이 만연체인데다 사건 위주의 줄거리 전개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대신 소설을 끌고 나가는 원동력이 이른바 ‘기억의 연금술’이다. 작가 마르셀 프루스트와 이름이 같은 소설의 화자 마르셀은 우연히 홍차에 적신 마들렌 과자를 맛보고는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냄새의 기억 자극 효과를 뜻하는 용어 ‘프루스트 현상’이 여기서 생겨났다. 이런 화자의 의식을 통해 1차 대전 전후 프랑스 사교계와 동성애, 연인 알베르틴을 대하는 뒤틀린 내면, 드레퓌스 사건 등 사회적 이슈까지 건드린다. 소설이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보여준 소설이라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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