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최민우의 시선

그나마 부동산이 가장 낫다

중앙일보

입력 2021.07.16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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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제목만 보고 '누구 염장 지르냐'며 열불내지 않을까 싶다. 현 정부 들어 집값 폭등으로 '벼락거지'가 됐고, 집 있는 이라도 세금 뜯기는 형편인데 말이다. 여론도 그렇다. 7월 첫 주 한국갤럽 조사에서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잘못하고 있다’는 응답은 78%, ‘잘하고 있다’는 고작 9%였다. 부동산 불만은 유주택자(79%)와 무주택자(76%)를 가리지 않았다. 여권도 가장 실패한 정책으로 주저없이 부동산을 꼽는데 도대체 뭐가 낫다는 얘기냐고? 문재인 정부에서 25번의 부동산 대책은 낙제점이었지만, 부동산 대처는 나름 전향적이었다는 게 내 판단이다.

2017년 8월 17일 취임 100일을 맞은 문재인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2017년 8월 17일 취임 100일을 맞은 문재인대통령이 청와대 영빈관에서 내.외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①사과=처음엔 호기로웠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취임 100일 회견에서 “더 강력한 대책도 주머니 속에 많이 넣어두고 있다”고 했다. 2019년 ‘국민과의 대화’에서도 “부동산 문제는 우리 정부에서는 자신 있다고 좀 장담하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지지율 하락에 버티는 장사는 없는 법. 문 대통령은 올 신년사에서 "주거 문제의 어려움으로 낙심이 큰 국민께는 매우 송구한 마음"이라며 처음 사과했다. 3월초 LH 투기 의혹이 불거졌을 때도 고개 숙였다. 최근 민주당 대선 주자들은 “걱정을 끼쳐드려 송구스럽다”(이낙연 전 대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정세균 전 총리), "국민적 신뢰를 잃은 점은 뼈아프다"(박용진 의원) 등 집단 반성 모드다.

부동산 실정에 비판 거세지만
인사·방역 등은 아직도 요지부동
무서운 민심 느껴야 전환하나

②책임추궁=문 대통령은 지난달 54억원을 '영끌' 대출한 김기표 반부패비서관을 경질했다. 언론 보도 사흘만이다. 지난해 임대차 3법 시행 직전에 전셋값을 14%가량 올린 김상조 정책실장도 4·7 재·보선을 앞두고 전격 교체했다. 지난해 노영민 비서실장과 김조원 민정수석이 교체된 배경에도 부동산 논란이 컸다. 민주당도 부동산 투기 의혹이 있는 현역 12명을 제명(비례대표)하거나 탈당 권유했다.

③기조전환='주택은 차고 넘친다'던 정부는 지난해 7월 문 대통령이 당시 김현미 국토부 장관에게 “발굴을 해서라도 공급 물량을 늘리라”고 하면서 방향이 바뀌었다. 올 2·4대책에선 전국에 83만호를 짓겠다고 했다. 규제도 풀었다. 12일 국회 국토위는 재건축 2년 실거주 의무를 폐지했다.

지난해 8월 4일 정부가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주택공급확대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홍남기 부총리,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 뉴스1

지난해 8월 4일 정부가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주택공급확대 관련 브리핑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 홍남기 부총리,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 뉴스1

이같은 변화를 평가절하할지 모르겠다. 막상 민주당에서 탈당한 이는 아무도 없으며, 실질적인 공급은 요원하고, 사과 역시 '부동산 빼고는 못 한 게 없다'는 일종의 '부동산 손절'이라는 반론이다. 하지만 모든 건 상대적 아닌가. 다른 분야를 둘러보면 부동산 대처의 비교우위를 실감할 터다.

①방조와 물귀신=지난해 2월 코로나 확산에 문 대통령은 "신천지 집단 감염 사태 이전과 이후는 전혀 다른 상황”이라고 했다. 같은 해 9월 국회 연설에서 이낙연 대표는 "8·15 광화문 집회로 코로나19가 재확산됐다. 방역을 조롱하고 거부하는 세력이 있다"고 했다. 8월 13일부터 확진자가 이미 급증했다는 건 외면했다. 반면 이번 4차 대유행 직전인 지난 3일 민주노총이 도심에서 8000여명 집회를 열었지만, 처벌은커녕 탓하는 목소리도 거의 없다. 외려 문 대통령은 12일 오세훈 서울시장과 이재명 경기지사를 불러놓고 “방역에 실패하거나 방역 때문에 국민이 어려움을 겪게 된다면,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책임이 있다”고 했다.

3일 오후 종로3가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노동법 전면 개정 등을 요구하며 도로를 점거한 채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3일 오후 종로3가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노동법 전면 개정 등을 요구하며 도로를 점거한 채 전국노동자대회를 열고 있다. 연합뉴스

②무조건 내편=박수현 국민소통수석은 14일 “기모란 방역기획관은 가교 역할”이라며 "청와대가 재난 컨트롤타워"라던 문 대통령의 기존 입장마저 뒤집었다. 검증 무능 비판에 직면한 김외숙 인사수석에 대해 이철희 정무수석은 "특정 개인이 져야 할 책임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감쌌다. 검찰 수사에 이어 기소까지 됐지만, 이진석 국정상황실장과 이광철 민정비서관은 버젓이 청와대에 출근 중이다.

③마이웨이=내년도 최저임금은 9160원으로 5.1% 상승했다. 직원을 둔 자영업자의 수가 31개월 연속 감소했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용도폐기된 줄 알았던 소득주도성장은 부활했다. 북한을 향한 구애도 한결같다. 문 대통령은 지난달 '타임'지와의 인터뷰에서 김정은 위원장에 대해 "매우 솔직(honest)하고 의욕적"이라고 했다.

청와대는 6월 9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여민관 영상회의실에서 타임(TIME)지 화상 인터뷰 및 표지 촬영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타임지 표지와 인터넷판 기사.(타임지 캡처) 뉴스1

청와대는 6월 9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여민관 영상회의실에서 타임(TIME)지 화상 인터뷰 및 표지 촬영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사진은 타임지 표지와 인터넷판 기사.(타임지 캡처) 뉴스1

문 대통령은 지근거리에서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 실패를 목도했다. 그랬음에도 더 강화된 규제책을 꺼낸 건 '확신'이라고 볼 수 있다. 지금도 속내는 '투기 세력 때문이지 정책은 잘못된 게 아니야'일지 모른다. 그런데 왜 수정했을까. 민심이 무서워서다. 누구나 피부에 와 닿는 이슈라서다. 그건 역으로 '개혁'이란 미명하에 검찰을 와해시키고, 방역 책임을 떠넘기는 건 아직 무섭지 않다는 얘기다.

행여 내년 정권이 바뀌면 여권은 "부동산 때문에 졌다"고 할 것이다. 하지만 훗날 역사가들은 "부동산은 그나마 양심적이었다"고 평가할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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