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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공 폭동 그 뒤엔, 실업률 46% 청년들의 분노 있었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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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아파르트헤이트(흑·백 인종 분리·차별 정책) 종식 이후 최악의 위기” “넬슨 만델라의 나라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왔는지…”

코로나로 빈곤층 실직 크게 늘고 #권력층 부정부패 스캔들까지 얽혀 #“아파르트헤이트 끝난 후 최악 위기”

제이컵 주마 전 대통령의 투옥을 계기로 폭동·약탈이 일주일 넘게 이어지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을 외신들이 이렇게 묘사한다. 주마 전 대통령의 고향인 동부 콰줄루나탈주에서 시작된 소요 사태는 북부 대도시 요하네스버그까지 번졌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14일까지 최소 72명이 숨졌고 1300명 가까이 체포됐다.

200개 이상의 쇼핑몰이 약탈당했으며 줄루나탈주의 대도시 더반에 있는 LG전자 공장은 전소했고 삼성전자 물류센터도 피해가 컸다. 현지 교민 이광전씨는 14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창고란 창고는 전부 습격 대상”이라며 “피해도 심하지만, 상점에 새로 채울 물건이 없어 생필품 구매 자체가 힘든 상황”이라고 전했다.

‘혼돈’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무슨 일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혼돈’ 남아프리카공화국에 무슨 일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15개월 형을 받고 지난 7일 수감된 주마는 지난 13일 “감옥에서 나갈 때까지 평화는 없다”는 옥중 메시지를 발표해 사태 장기화가 우려된다. 소도시는 경찰이 모자라 주민들이 민병대를 꾸렸다.

워싱턴포스트(WP)는 “주마 정권(2009년~18년 집권)의 높은 실업률, 권력층의 부정부패에 최근 코로나 확산까지 겹친 탓”이라고 원인을 분석했다. 정치분석가 랠프 마테크가 박사는 WP에 “약탈을 범죄로만 보지 말고 사회·경제적 뿌리를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6000만 인구의 절반이 빈곤 상태라는 사실과 역대 최고치를 찍은 청년 실업률이 문제의 근원이라는 지적이다. 남아공 통계청의 지난달 4일 발표에 따르면 올해 1분기(1~3월) 실업률은 32.6%였고, 15~34세 청년 실업률은 46.3%나 됐다.

1994년 민주화로 아파르트헤이트는 폐기됐지만, 빈부 격차는 그대로다. 일간 텔레그래프는 줄지어 생필품을 약탈하는 흑인 빈민들과 관련, “이들은 값싼 담요 몇 장으로 탐나는 물건을 맞바꾸며, 챙겨 나온 알루미늄 시트지로 아기의 머리에 빗물이 떨어지지 않게 가린다”고 설명했다. 세계은행(WB) 분석에 따르면 코로나19의 확산은 빈민들을 더욱 가혹한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남아공의 저임 노동자들이 고임 노동자들보다 4배나 많은 실직을 겪었다. 코로나 상황은 갈수록 악화해 미 존스홉킨스대 집계에 따르면 14일 기준 6만 5595명이 숨졌고 223만여 명이 확진됐다. 백신을 한 번이라도 맞은 인구는 전체의 6.7%다.

요하네스버그 비트바테르스란트대의 윌리엄 귀메데 교수는 일간 텔레그래프에 “상층부의 법질서 무시가 이번 사태를 불렀다”고 지적했다. 그는 “주마 정권 당시 대통령과 그의 정치적 동지들은 수 조 랜드(남아공의 화폐 단위)를 훔치거나 약탈했지만 아무도 처벌받지 않았다”며 “과거 윗선에서 하던 약탈이 이제 풀뿌리 단계에서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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