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그 영화 이 장면

기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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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김형석 영화 저널리스트

호러의 계절 여름. 공포영화 라인업에 눈에 띄는 작품이 하나 있다. 2007년 작품 ‘기담’이다. 이른바 ‘정가 형제’, 즉 정식·정범식 감독이 연출한 ‘기담’은 세 개의 기이한 이야기가 이어지면서 교묘하게 연결되는 옴니버스 형식의 영화다. 10여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어색하거나 낡아 보이지 않는 이 작품은 어느새 한국 공포영화의 모던 클래식이 되었다.

단순히 무서운 것이 아닌, 슬프고도 아름다운, 멜로에 가까운 호러인 ‘기담’에서 가장 섬뜩한 신은 단연 아사코 엄마(박지아)의 장면이다. 교통사고로 부모를 잃은 아사코(고주연). 소녀의 주변엔 엄마의 귀신이 나타난다.

영화 [기담]

영화 [기담]

여기서 ‘기담’의 방식은 정공법이다. 판에 박힌 사운드 효과나 갑작스런 편집 등으로 장난치지 않는다. 이 영화의 귀신은 그냥 툭 등장해 거기에 앉아 있다. 아사코의 엄마도 마찬가지다. 처량하게 딸 옆에 앉아 정말 기괴한, 아니 ‘기괴한’이라는 형용사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지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상한 소리를 내고 있는 귀신. 미친 듯 중얼거린 후 짓는 소름 끼치는 미소. 감히 말하면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이 영화는 볼 가치가 있으며, 배우 박지아는 시나리오의 ‘방언을 읊조린다’는 한 줄을 가지고 상상도 할 수 없는 명장면을 만들어냈다. 리허설 땐 쑥스럽다며 안 보여주다가 촬영에 들어가자 그 리얼한 퍼포먼스로 스태프들을 경악시켰다는 그 전설의 신. 놓치지 마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