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靑, 인사도 방역도 '집단책임론'…"책임 안 지는 운동권 문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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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특정인이 책임질 일은 아니다”.

기모란 방역기획관(오른쪽)이 3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2차 특별 방역 점검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기모란 방역기획관(오른쪽)이 3일 오후 청와대에서 열린 2차 특별 방역 점검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 발언을 듣고 있다. 연합뉴스

최근 이어진 인사와 방역 관련 책임론에 대처하는 청와대의 일관된 방식이다.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공동으로 책임을 질 문제라는 ‘집단책임론’ 또는 ‘연대 책임론’에 가깝다. 그런데 이러한 집단책임론의 본질은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무책임’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14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기모란 청와대 방역기획관에 대한 책임론과 관련 “기획관은 컨트롤타워가 아닌 청와대와 정부 기구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지금은 국민과 함께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박 수석은 그러나 스스로 ‘컨트롤타워’라고 규정한 ‘각 부서’ 즉 관련 부처는 물론 청와대, 그리고 둘 사이의 ‘가교’ 역할을 했다는 기 기획관 중 누구도 책임을 질 거란 말은 하지 않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1150명으로 일주일째 1000명대를 기록한 13일 오전 서울역 광장에 마련된 중구 임시선별검사소에서 시민들이 줄 서 있다. 뉴스1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1150명으로 일주일째 1000명대를 기록한 13일 오전 서울역 광장에 마련된 중구 임시선별검사소에서 시민들이 줄 서 있다. 뉴스1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내며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15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기 기획관의 인책론에 대해 “한심한 소리”라고 비판했다.

그는 “불이 났으면 불을 끄는 데 집중해야지 옆에 앉아 ‘이 불이 어떠니, 저 불이 어떠니’ 하며 남 탓하는 것이야말로 못난 짓”이라며 기 기획관에 대한 비판론을 ‘남 탓’이라고 했다. 기 기획관은 지난 4월 “방역에 대한 책임자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청와대 직제까지 개편해 임명됐던 인사다.

이에 대해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당 회의에서 “집단 지성으로 만들었다는 주먹구구식 정치방역 대책 탓에 민생은 집단실신 직전”이라며 “더 기가 막히는 것은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원내대표는 이어 “이진석 국정상황실장과 기모란 방역기획관, 두 사람이 방역 실패의 책임자가 아니라면 국정 총책임자인 문재인 대통령이 책임져야 마땅하다”며 “문 대통령마저도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우기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대통령이 책임을 지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김외숙 인사수석이 6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김외숙 인사수석이 6일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참석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집단책임론은 김외숙 인사수석을 둘러싼 인사참사 국면에서도 청와대의 핵심 방어 전략으로 활용됐다.

김기표 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비롯해 각종 인사 검증 실패가 지속적으로 드러났음에도 청와대는 “인사수석이 책임질 일이 아니다”라며 김 수석을 비호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특히 이철희 정무수석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인사 시스템은 후보 선정 과정, 검증 과정, 대통령께 누구를 추천할지 판단하는 과정 등 세 단계로 이뤄진다”며 “인사수석은 후보 선정에 관한 일을 주로 한다. 세 단계에 관련된 모든 사람이 공동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공동 책임론’을 내세워 당장의 비판 여론을 피해간 뒤 지금까지 이 수석이 제시했던 청와대의 ‘3단계 인사 라인’ 중 그 누구도 책임을 진다고 나선 사람은 없다.

이철희(왼쪽) 정무수석이 5월 11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제20회 국무회의에서 김외숙 인사수석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철희(왼쪽) 정무수석이 5월 11일 오전 청와대 여민관에서 열린 제20회 국무회의에서 김외숙 인사수석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냈던 이동관 전 수석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집단이 공동으로 책임을 진다는 것의 본질은 사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무책임을 뜻한다”며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모두가 함께 잘못하면 괜찮다는 과거 운동권 문화에서 비롯된 집단범죄심리로도 표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외국 속담에 ‘빨간불도 함께 건너면 무섭지 않다’는 말이 있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청와대의 현재 상황이 이 속담의 의미와 정확히 일치하는 상황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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