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가 있다는 건 인정하지만, 특정인이 책임질 일은 아니다”.
최근 이어진 인사와 방역 관련 책임론에 대처하는 청와대의 일관된 방식이다. 의사 결정 과정에 참여한 모든 사람이 공동으로 책임을 질 문제라는 ‘집단책임론’ 또는 ‘연대 책임론’에 가깝다. 그런데 이러한 집단책임론의 본질은 아무도 책임을 지지 않는 ‘무책임’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14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기모란 청와대 방역기획관에 대한 책임론과 관련 “기획관은 컨트롤타워가 아닌 청와대와 정부 기구 사이에 가교 역할을 하는 것에 불과하다”며 “지금은 국민과 함께 위기를 극복해나가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박 수석은 그러나 스스로 ‘컨트롤타워’라고 규정한 ‘각 부서’ 즉 관련 부처는 물론 청와대, 그리고 둘 사이의 ‘가교’ 역할을 했다는 기 기획관 중 누구도 책임을 질 거란 말은 하지 않았다.
청와대 국정상황실장을 지내며 문재인 대통령의 최측근으로 분류되는 더불어민주당 윤건영 의원은 15일 라디오 인터뷰에서 기 기획관의 인책론에 대해 “한심한 소리”라고 비판했다.
그는 “불이 났으면 불을 끄는 데 집중해야지 옆에 앉아 ‘이 불이 어떠니, 저 불이 어떠니’ 하며 남 탓하는 것이야말로 못난 짓”이라며 기 기획관에 대한 비판론을 ‘남 탓’이라고 했다. 기 기획관은 지난 4월 “방역에 대한 책임자가 필요하다”는 이유로 청와대 직제까지 개편해 임명됐던 인사다.
이에 대해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당 회의에서 “집단 지성으로 만들었다는 주먹구구식 정치방역 대책 탓에 민생은 집단실신 직전”이라며 “더 기가 막히는 것은 누구 하나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 원내대표는 이어 “이진석 국정상황실장과 기모란 방역기획관, 두 사람이 방역 실패의 책임자가 아니라면 국정 총책임자인 문재인 대통령이 책임져야 마땅하다”며 “문 대통령마저도 컨트롤타워가 아니라고 우기면 몰라도 그렇지 않다면 대통령이 책임을 지는 건 너무나 당연하다”고 주장했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집단책임론은 김외숙 인사수석을 둘러싼 인사참사 국면에서도 청와대의 핵심 방어 전략으로 활용됐다.
김기표 전 청와대 반부패비서관의 부동산 투기 의혹을 비롯해 각종 인사 검증 실패가 지속적으로 드러났음에도 청와대는 “인사수석이 책임질 일이 아니다”라며 김 수석을 비호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특히 이철희 정무수석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인사 시스템은 후보 선정 과정, 검증 과정, 대통령께 누구를 추천할지 판단하는 과정 등 세 단계로 이뤄진다”며 “인사수석은 후보 선정에 관한 일을 주로 한다. 세 단계에 관련된 모든 사람이 공동으로 책임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공동 책임론’을 내세워 당장의 비판 여론을 피해간 뒤 지금까지 이 수석이 제시했던 청와대의 ‘3단계 인사 라인’ 중 그 누구도 책임을 진다고 나선 사람은 없다.
이명박 정부 때 청와대 홍보수석을 지냈던 이동관 전 수석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집단이 공동으로 책임을 진다는 것의 본질은 사실 아무도 책임지지 않겠다는 무책임을 뜻한다”며 “더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모두가 함께 잘못하면 괜찮다는 과거 운동권 문화에서 비롯된 집단범죄심리로도 표현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외국 속담에 ‘빨간불도 함께 건너면 무섭지 않다’는 말이 있는데,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청와대의 현재 상황이 이 속담의 의미와 정확히 일치하는 상황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