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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인 주민들 문 걸어잠갔다…탈출 9일째, 증발해버린 반달곰

중앙일보

입력

경기도 용인시 관계자와 환경부, 경기도, 국립공원공단 관계자들이 반달곰이 탈출한 사육장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용인시

경기도 용인시 관계자와 환경부, 경기도, 국립공원공단 관계자들이 반달곰이 탈출한 사육장 현장을 점검하고 있다. 용인시

지난 6일 경기도 용인시의 한 사육농장을 탈출한 반달곰 한 마리는 어디로 갔을까. 탈출한 두 마리 중 한 마리는 사살됐지만, 다른 곰의 행방은 9일째 묘연하다. 지금까지 동물원이나 사육장을 탈출한 동물들은 대부분 하루 만에 생포되거나 사살됐다. 이 곰은 왜 아직 잡히지 않는 걸까.

우리에서만 자란 세 살짜리 곰

달아난 곰은 40~50㎏의 3살 된 곰이라고 한다. 수놈인지 암컷인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환경부 한강유역환경청과 용인시는 사라진 곰을 찾기 위해 사육 농장 인근을 매일 수색하고 있다. 달아난 곰이 사육장에서만 자란 만큼 멀리 가지 못했을 것으로 추정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곰과 함께 탈출했다가 사살된 다른 곰도 사육 농가에서 400m 떨어진 곳에서 발견됐다.

6일 우리 문을 열고 탈출했다 사살된 곰. 다른 한 마리는 아직 찾지 못 했다. 용인시

6일 우리 문을 열고 탈출했다 사살된 곰. 다른 한 마리는 아직 찾지 못 했다. 용인시

하지만 잡지 못한 곰이 어느 방향으로 도주했는지도 파악되지 않았다고 한다. 곰들이 탈출할 당시 계속 비가 내리면서 발자국 등 흔적이 모두 사라진 탓이다. 첫 곰은 수색견이 금방 흔적을 찾아 사살에 성공했다. 여기에 동물보호단체 등의 항의로 탈출한 곰을 생포하기로 결정하면서 추적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한다.

용인시 등은 곰을 찾기 위해 무인트랩 3대와 열화상 카메라도 설치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트랩 안에선 오소리만 잡혔다. 열화상 카메라에도 탈출한 곰의 모습은 포착되지 않았다. 곳곳에 설치한 현수막을 보고 걸려온 제보 전화 대부분 역시 곰과는 무관했다.

반달가슴곰 전문기관인 국립공원공단 남부보전센터 연구원까지 투입됐지만, 곰은 어디서도 발견되지 않았다. 환경부 한강유역환경청 관계자는 “탈출한 두 곰이 함께 이동했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한 마리만 잡히고 다른 곰은 흔적도 찾을 수 없으니 우리도 답답하다”고 말했다.

애시당초 한 마리만 탈출? 

용인시와 환경부 한강유역환경청은 수색 범위를 넓히는 방안도 조심스럽게 검토하고 있다. 일반적인 곰의 행동반경 반경은 1~2㎞. 그러나 번식기엔 짝을 찾아 10㎞를 이동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이 곰이 사육 농장 주변이 아닌 더 멀리 달아났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다.

이름을 밝히길 거부한 한 전문가는 “사육농장의 우리에서 자란 곰이라 멀리 가진 못했을 것 같긴 하지만, 곰도 성향에 따라 다를 수 있다”며 “탈출 이후 놀라 정신없이 다니다가 행동반경을 벗어났을 가능성도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 6일 곰 두 마리가 탈출한 경기도 용인시의 한 사육농장. 용인시

지난 6일 곰 두 마리가 탈출한 경기도 용인시의 한 사육농장. 용인시

아무리 찾아도 흔적조차 발견되지 않으면서 당초 사육농장에서 탈출한 곰이 한 마리일 가능성도 제기됐다. 발견된 흔적도 이미 사살된 곰의 것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농장주는 “탈출한 곰은 두 마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환경부 한강유역환경청과 용인시는 한 마리가 탈주 중이라는 전제로 포획 노력을 이어가고 있다.

“곰 내려올라” 문 걸어 잠근 주민들 

곰 탈출 이후 사육농장 인근 주민들은 자발적인 은둔 생활에 들어갔다. 되도록 바깥출입을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한 주민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 곰 문제까지 겹치면서 밖에 나오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탈출한 곰을 키우던 사육농장은 2012년에도 2차례나 곰이 도망친 전력이 있다고 한다. 60대 주민은 “지금까진 곰이 일찍 잡혔는데 이번은 오래 걸리는 것 같다”며 “날이 더워서 이른 아침이나 저녁에 밭일을 해야 하는데 요즘은 곰 때문에 밖에 나오기가 무섭다”고 하소연했다.

환경부 한강유역환경청 관계자는 “전문가들에게 자문한 결과 달아난 곰은 작은 개체라 위험성이 크진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면서도“여름 산은 곰의 먹이가 될 만한 것이 없어서 곰이 민가나 밭으로 내려올 우려가 있어 열심히 찾고 있다”고 말했다. 용인시는 곰을 목격할 경우 가까이 가지 말고 즉시 시청 환경과(전화 031-324-2247)로 신고하라고 당부했다.

말레이곰 9일, 히말라야 원숭이 14일 탈주 기록

이 곰처럼 탈주 기간이 길었었던 동물은 또 있다. 2018년 11월 6일 전북 정읍시 영장류 자원센터에서 탈출했던 암컷 히말라야 원숭이(당시 4살)는 14일 만에 붙잡혔다.

2010년 서울대공원을 탈출했던 말레이곰 `꼬마`. 중앙포토

2010년 서울대공원을 탈출했던 말레이곰 `꼬마`. 중앙포토

가장 비슷한 사례는 2010년 12월 6일 과천 서울대공원을 탈출해 청계산으로 달아났던 수컷 말레이곰 '꼬마(당시 7살·30~40㎏)'다. 꼬마는 9일 만에 포획됐다.

지금은 서울대공원에서 13살 연상의 암컷 '말순이'와 함께 지내고 있다. 당시 꼬마와 말순이의 나이 차 때문에 “꼬마가 짝짓기 스트레스 때문에 탈출한 것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서울대공원 동물원장을 지낸 어경연 세명대 교수(동물바이오헬스학과)는 “곰이 생각보다 영리하고 민첩하다”며“여기에 말레이곰은 크기가 작은 소형 곰이라 포획에 어려움이 있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면서 “곰은 잡식성이고 며칠 굶는다고 죽지 않는데 당시 꼬마는 등산객이 버린 음식물을 먹고, 산 정상에 있는 매점을 습격하면서 먹이를 구했다”면서도 “이번에 도망친 곰은 꼬마와는 사육 환경 등이 다르기 때문에 습성 등을 설명하기 어렵다”고 했다.

용인시 관계자는 “시민의 안전을 위해 탈출 곰을 신속하게 포획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 있다”며 “시민들도 안전사고 예방을 위해 야산 출입을 자제해달라”고 요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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