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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안혜리의 시선

K방역, 대통령의 꽃놀이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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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2일 수도권 특별방역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K 방역 자화자찬을 해오더니 4차 대유행 후엔 "무관용 원칙""모두의 책임"이라며 국만과 지자체장 탓을 했다. [사진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2일 수도권 특별방역점검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K 방역 자화자찬을 해오더니 4차 대유행 후엔 "무관용 원칙""모두의 책임"이라며 국만과 지자체장 탓을 했다. [사진 청와대]

코로나19가 모기인가, 문득 그런 엉뚱한 생각이 들었다. 어디 숨어있다가 밤만 되면 스멀스멀 기어 나와 피를 빨아먹는 모기처럼 코로나19도 오후 6시 이후에만 감염력이 높아지나 싶어서. 아, 물론 둘의 차이는 있다. 모기는 모여있는 사람 수가 많든 적든, 또 동거 여부나 지인 관계까지 따져가며 정교하게 물 정도로 머리가 좋지는 않다. 민노총이라고 지레 겁먹고선 저 멀리 도망가거나, 반대로 태극기 부대 피 냄새만 더 기막히게 맡고선 달려들지도 않는다. 그냥 무차별 공격이다.
하지만 한국 정부가 파악하고 있는 이놈의 코로나는 특정 상황, 혹은 특정 세력에게만 위협적이다. 가령 오후 6시를 넘기면 수백 명이 타는 지하철 승객은 절대 공격하지 않지만 택시를 같이 탄 단 3명의 승객에게는 무자비한 침투력을 자랑한다. 서로 모르는 사람이라면 옆자리에 앉아 식사를 해도 내버려 두지만 혈연·지연으로 얽힌 관계라면 2명을 넘어서는 순간 기막히게 알아차리고는 절대 봐주지 않는다. 무엇보다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모기는 대통령도 물 수 있지만 코로나는 감히 대통령 근처에 얼씬거리지도 못한다는 게 아닐까.
세상에. 무슨 미개 원시시대나 절대 왕정도 아니고 민간 우주관광까지 경쟁하는 시대에 이 무슨 비과학적이고 무식하고 유사종교같은 소리인가 싶은데 유감스럽게도 지금 대한민국 방역 수준이 딱 이렇다. 지금 정부의 코로나 대응이 정치 방역인지 아니면 방역 정치인지는 잘 모르겠으나 한 가지 확실한 건 방역이 더는 국민의 안녕과 건강을 위한 도구가 아니라 문재인 대통령 손에 쥔 꽃놀이패로 전락한 지 이미 오래됐다는 사실이다.
지금의 4차 대유행은 명백한 문재인 정부의 실책이다. 지난해 2월 1차 대유행 땐 신천지교도, 지난해 8월 2차 대유행 땐 8·15 반정부 집회 참석자를 악마화하는 방식으로 국민 눈속임을 했지만 이번 4차 대유행만큼은 그런 억지 희생양을 찾기조차 어렵다. 물론 이 정부가 그런 시도를 안 한 건 아니다. 손쉽게 2030에 책임을 전가하려다 세대 불문 "백신도 못 구해준 주제에"라는 반발이 나오자 서둘러 입을 닫았다.
욕받이 희생양이 없으니 정부의 오판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지금 성난 민심은 백신 정책을 결정하는 주요 고비고비마다 "화이자·모더나는  비싸기 때문에 백신 구매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거나 "꼭 화이자 같은 (안전하지 않은) 이런 백신을 맞아야 하나"라는 식으로 무능한 정부 입장만 대변하며 국민을 기만해온 기모란 청와대 방역기획관에게 일차적으로 쏠리고 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 역시 불과 한 달 전에 "현재 같은 접종·방역을 유지하면 7월 중순 이후 확진자가 큰 폭으로 감소할 것"이라고 낙관론을 폈으니 비판에서 자유롭지 않다. 시시각각 변하는 상황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방역당국이 7월의 백신 공백을 이미 알고 있는 상태에서 나온 발언이라는 걸 감안하면 너무나 무책임하고 비겁하기까지 하다.
보다 본질적으로는 전문가들도 입 모아 "필요 없다"던 자리를 굳이 만들어 기 기획관에게 내주고 인기영합적 발언만 일삼아온 문 대통령 책임이 가장 크다. 기 기획관 같은 정치에 오염된 전문가를 내세워 코로나가 창궐하면 집회 금지라며 반대파 입막음하는 수단으로, 수그러들면 그간의 국민 희생은 싹 무시하고 본인 치적 만들기에 활용했으니 하는 말이다. K 방역이 과연 무엇인지, 또 어떻게 평가할 것인지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리지만 전문가든 일반 시민이든 협조 잘한 국민 덕분에 이만큼의 성과를 냈다는 데는 누구나 동의한다. 방어가 잘 되면 국민 덕분이고, 뚫렸다면 정부가 잘못된 신호를 줬다는 얘기다.
오직 문 대통령만이 이와는 전혀 다른 행보를 보여주고 있다. K 방역에 대한 자화자찬은 방역 당국 오판의 빌미가 됐고, 그 결과 생계를 위협받는 희생을 강요받은 국민은 망연자실했지만 대통령은 아무렇지도 않게 예외적인 특권을 누려왔다. 국민에겐 편찮은 부모도 만나지 말라면서 정작 본인은 참모진 송별 저녁은 공적 모임이라면서 인원 제한쯤은 우습게 여긴다. 또 지난 1월 기자회견에서는 "방역은 너무 잘하니까 질문이 없느냐"며 스스로 추켜세워더니 4차 대유행 현실화 후인 지난 12일 수도권 특별방역점검회의에선 야당 오세훈 서울시장 등을 겨냥해 "우리가 방역에 실패한다면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책임이 있다"고 남 탓을 한다. "무관용 원칙" 운운하며 원칙없는 거리두기에 대한 사과 대신 호통도 잊지 않았다. 국민 모두 고통받을 때 대통령은 일상의 불편조차 느끼지 않는데 방역이 실패하면 국민을 벌 주는 나라. 지금 모두의 인내심이 빠르게 바닥나고 있다. 매일 밤 극성맞은 모기 상대하기도 힘든데.

안혜리 논설위원

안혜리 논설위원

'오염된 전문가' 내세워 자화자찬 #고비마다 오판 이어져 국민 고통 #국민 인내심 빠르게 바닥나는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