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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망이 낳은 13자 아파트 이름…“김수한무~냐” 조롱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4면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 ‘과천센트럴파크푸르지오서밋’, ‘래미안서초에스티지S’…. 외계어가 아니다. 최근 입주했거나 입주를 앞둔 새 아파트 단지 이름이다. 열 글자가 넘어가는 곳도 적지 않다.

조합원 “이름 멋져야 값 오를것” #유명 건설사 브랜드명 포함 원해 #사전에도 없는 조어도 갖다붙여 #주민 “긴 아파트 이름 사용 불편”

아파트 단지 이름이 길어지고 있는 게 요즘 아파트 시장의 특징이다. 재건축 사업을 통해 새 아파트로 거듭난 곳은 재건축 조합원이 새 아파트 이름을 짓는다. 조합원은 자신의 아파트에 제일 멋진 이름을 짓고 싶어한다. 건설사 브랜드와 아파트 이름에 따라 아파트값이 달라질 것이란 생각도 조합원의 ‘작명’ 욕구를 부추긴다.

옛 개포 주공 2단지를 재건축한 래미안블레스티지의 경우 래미안 뒤에 붙이는 이름을 놓고 럭스티지, 트리스티지, 포레스티지,블레스티지를 후보로 올려놓고 조합원 설문을 했다. 위신,명예를 뜻하는 ‘prestige’의 ~티지 앞에 ‘luxury’(호화로움), ‘trinity’(삼위일체), ‘forest’(숲), ‘bless’(축복)를 넣은 영어사전에도 없는 합성어다.

디에이치퍼스티어아이파크는 옛 개포주공 1단지의 새 이름인데, 현대산업개발과 현대건설이 공동으로 짓다 보니 두 건설사의 브랜드(현대산업개발 아이파크, 현대건설 디에이치)가 같이 들어가 이름이 길어졌다.

이전에는 여러 건설사가 같이 공사를 하는 경우 건설사 브랜드를 쓰지 않고 독자적인 단지 이름을 짓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현대건설 등 3개 건설사가 지은 도곡렉슬(2006년 1월 완공) 등이 대표적이다. 1970~1980년대에 입주한 아파트는 반포 주공,압구정 현대,개나리,진달래 등 단순하고 쉬운 이름이었다. 이후 2000년대 들어서서 건설사들이 경쟁적으로 자사의 아파트 브랜드를 내세우기 시작했다. ‘래미안’ ‘자이’ ‘힐스테이트’ ‘푸르지오’ 등이 대형 건설사의 브랜드이고 ‘반포 자이’ 등이 건설사 브랜드를 사용한 단지 이름이다.

그런데 최근 건설사 브랜드가 집값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유명 건설사가 시공하는 경우 조합원이나 건설사 모두 각 건설사 브랜드를 단지명에 넣고 싶어하고, 그 결과 아파트 단지 이름이 길어지고 있다. 이렇게 긴 아파트 이름을 놓고 불만도 잇따른다. 대단지 아파트의 경우 아파트 이름이 지명이나 다름없기 때문에 사용하기 불편하다는 것이다.

브랜드 컨설팅 회사인 메타브랜딩의 박항기 대표는 “정체불명의 외래어를 섞은 긴 아파트 이름은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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