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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킹덤’ 김은희 작가 “겁 많은 성격…공포가 내 상상력 원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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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김은희 작가의 괴담 기획개발 캠프 마스터클래스가 1일 부천아트벙커B39에서 진행됐다. [사진 BIFAN]

김은희 작가의 괴담 기획개발 캠프 마스터클래스가 1일 부천아트벙커B39에서 진행됐다. [사진 BIFAN]

사이버 수사대를 내세운 ‘유령’(SBS·2012), 과거·현재를 잇는 타임슬립 형사물 ‘시그널’(tvN·2016), 넷플릭스 좀비 사극 ‘킹덤’(2019~). 김은희(49) 작가를 장르 드라마 귀재로 불리게 한 작품들이다. 오는 23일 공개될 스핀오프 ‘킹덤: 아신전’, 가을에 방송할 주지훈·전지현 주연 ‘지리산’(tvN) 등 신작도 벌써 화제다.

부천국제영화제 괴담 캠퍼스 강연 #“한 달 20권 독서, 철저한 취재·고증 #너무 쉽게 써지면 재미없는 대본” #명품 드라마 쓰는 노하우 공개

그가 장르 덕후들의 아지트,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 마스터클래스에 나섰다. 영화제 개막(8일)에 앞서 부천시와 진행한 ‘괴담 캠퍼스’의 괴담 기획개발 캠프에서다. 미완성 괴담 주제 극영화·시리즈를 전문가 멘토링, 마스터클래스 등을 통해 개발하는 제작지원 프로그램. 4월 공모한 극영화·시리즈 프로젝트 108편 중 엄선된 8편의 창작자들에게 나홍진 감독, 김은희 작가 등이 마스터클래스를 열었다. 이를 축약한 동영상이 13일·14일 영화제 공식 유튜브로 공개된다.

1일 부천아트벙커B39에서 1시간가량 열린 김 작가의 마스터클래스 사회는 남편인 장항준(52) 영화감독이 맡았다. 현장에서 김 작가가 밝힌 ‘김은희 드라마 월드’ 비결을 7가지로 정리했다.

BIFAN 괴담 캠퍼스 포스터. [사진 BIFAN]

BIFAN 괴담 캠퍼스 포스터. [사진 BIFAN]

#1 ‘사람’을 보라 = 스토리텔링의 영감은 어디서 얻을까. 창작자들 질문에 김 작가는 “살아있는 모든 시간”이라 답했다. “술자리에서 장항준 감독과 이야기하다가, 영화 보다가, 예전에 읽던 책에서 얻는다”면서 “드라마 작법 책보다는 사람을 많이 만나고 관찰하는 데”에서 나온다고 했다.

올 하반기 방영할 신작 ‘지리산’은 죽으러 오는 자, 죽이러 오는 자, 살리러 오는 자가 뒤엉킨다는 내용. “크리스마스를 떠올리며 구상했어요. 크리스마스 지리산의 가족 이야기. 눈 내리는 크리스마스에 지리산 오는 사람이 있을까. 영화나 단막극 정도 생각했는데 하다 보니까 더 긴 얘기를 해도 괜찮겠다고 생각해 쓰게 됐죠.”

#2 결핍이 동력이다 = ‘김은희 월드’에는 유난히 ‘정의’가 많이 담긴다. “제가 정의롭지 못해서죠. 겁 많고 타협하고 그냥 참는. 제가 못하는 것을 드라마 속 인물에게 많이 시키는 게 아닐까요.” 장르물을 좋아하는 것도 “권선징악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어서”다. 중학교 땐 아버지가 즐겨 보던 무협지에 빠지기도 했단다. “저는 겁이 많아서 지하주차장에선 뛰어다녀요. 어디서 좀비가 나올 것 같고. 내가 무서운 공포 상황도 좋은 상상력이 되죠.”

#3 쉽게 써지면 의심하라 = “대본이 너무 쉽게 써진다”고 느껴질 땐 먼저 의심한다. 뻔한 장면, 재미없는 대본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그래서 드라마 대본은 9화까지도 모니터링을 받는다.

그는 기획의도부터 탄탄해야 한다고 했다. “드라마로 뭘 얘기하고 싶은지 출연 인물, 나이, 직업 캐릭터 등을 정리하며 1회 구성과 시놉시스를 써내려가죠. 매회 정확한 사건보단 몇회쯤 이런 감정선이 됐으면, 하고 감정선에 대한 구상을 더 많이 넣고 들어가는 것 같아요. 밤을 새우고 아침 7시쯤 뭔가 풀리죠.”

#4 독서는 얇고 넓게 =  “김 작가처럼 다양한 책을 보는 이는 못 봤어요. 호기심, 관심이 많죠.” 장항준 감독이 ‘인증한’ 다독습관이다. 김 작가는 “얇고 넓게, 한 달에 20권 정도 본다”면서 “한 권을 읽다 보면 의문이 생겨 같은 분야 책을 세 권 더 사게 된다”고 했다. ‘킹덤’을 집필할 땐 조선 지리학자 김정호 지도첩 『대동여지도』 해설본을 보곤 했다. 당시 지형을 생생하게 그릴 수 있어서다.

#5 자료조사가 차이를 만든다 = “머릿속에서 나온 건 내가 봐도 재미없고 뜬구름 잡는 소리여요. 당시 글귀 하나, 자료 하나라도 들어가야 살아있는 느낌이죠.” 사극이든 현대극이든 취재와 고증도 중요하다. 김 작가는 “신인 작가일 때 자료조사를 많이 해야 하는데 어렵다”면서 의학 수사물에 도전한 ‘싸인’(SBS·2011) 때를 돌이켰다. “부검의에 대한 이야기인데 법의관 섭외가 정말 어려웠어요.” 결국 장 감독이 다니던 치과 의사의 소개로 어렵게 법치의학자를 만나게 됐단다.

#6 중심은 작가가 지킨다 = 김 작가는 “모니터를 듣는 자세가 열려 있어야 한다. 내 글이 재미없을 수 있고 어떻게 하면 재밌게 만들 수 있지, 자기 잘못을 알아야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면서도 “중심은 작가가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시그널’은 첫 기획을 SBS와 했는데 2부까지 대본을 내고 무전기를 빼라는 얘기를 들었다. 무전기와 과거를 빼고 현재 형사들로만 하자더라”면서 “그걸 빼면 ‘시그널’이 ‘시그널’이 아니게 돼서 장항준 감독 생각을 물으니 ‘네가 옳다’고 했다”고 돌이켰다. 장 감독은 “때로는 기성 창작자들이 가진 것을 깨야 하고, 세상에 내가 맞았다는 것을 증명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7 완성형 작가는 없다 = “작가는 끊임없이 노력해야 하는 사람이죠. 완성형이 될 수 없어요. 초기에 고생하면 노후가 좋아지죠.” 김 작가는 힘든 시기를 극복한 원동력을 “죽을 만큼의 노력”이라면서, 드라마 각본 데뷔작 ‘위기일발 풍년빌라’(tvN·2010) 때를 떠올렸다. “1년 반 동안 뭘 쓰기만 하면 다들 한숨만 쉬었어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가보자 했죠. 1년 반 뒤 12고가 나왔을 때 건드릴 게 없다는 말을 듣고 눈물이 핑 돌았어요.” 그는 쉼 없이 글을 쓰는 동력으로 “칭찬”을 꼽았다. 좋은 대본은 어떻게 탄생할까. “쉬지 않고 쓰고 또 쓰고가 방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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