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티 영부인 "남편에 총알 퍼부어…진짜 암살범 따로 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7.11 15:51

업데이트 2021.07.11 16:30

조브넬 모이즈 아이티 대통령의 부인 마르틴 모이즈 여사가 남편의 피살 현장에서 목격한 장면을 육성으로 전했다. 지난 7일 새벽 사건이 발생한 지 사흘 만이다. 당시 남편과 함께 있다가 총상을 입은 모이즈 여사는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진짜 암살범 따로 있다" 의혹 확산

괴한에 피살 당한 조브넬 모이즈 아이티 대통령(왼쪽)과 총상을 입고 치료 중인 부인 마르틴 모이즈. [AFP=연합뉴스]

괴한에 피살 당한 조브넬 모이즈 아이티 대통령(왼쪽)과 총상을 입고 치료 중인 부인 마르틴 모이즈. [AFP=연합뉴스]

10일(현지시간) 영국 BBC 등에 따르면 모이즈는 공식 트위터에 2분 20초 길이의 음성 메시지를 아이티 크레올어로 남겼다.

그는 메시지에서 “한밤중 눈 깜짝할 사이에 집에 들어온 괴한들이 남편에게 총알을 퍼부었다”면서 “공격이 너무 순식간에 벌어진 탓에 남편은 말 한마디 못하고 당했다”고 말했다.

이어 “남편이 정치적인 이유로 표적이 되어 희생됐다”며 배후에 정치 세력이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이름은 밝히지 않았지만 “대통령이 누구와 싸워왔는지 알고 있다”면서 “상대는 도로·수도·전기·대선·총선 등을 이유로 남편과 우리 가족을 죽이려고 용병들을 파견했다. 그들은 이 나라의 변화를 막으려고 했다”고 주장했다.

모이즈 여사는 공식 트위터에 2분 20초 길이의 음성 메시지를 크레올어로 남겼다. [트위터 캡처]

모이즈 여사는 공식 트위터에 2분 20초 길이의 음성 메시지를 크레올어로 남겼다. [트위터 캡처]

그는 “나는 신 덕분에 살았지만, 남편을 잃었다”며 “이 나라가 길을 잃게 내버려 둘 수 없다. 남편의 피를 헛되이 흘려 버릴 수는 없다”고 말했다. 또 “난 여러분(아이티 국민)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콜롬비아인 용의자, 경호 목적 채용자들”

대통령이 괴한에게 암살된 지 사흘째에 접어든 아이티는 대혼돈에 빠졌다. 아이티 당국은 이번 암살에 콜롬비아인 26명, 아이티계 미국인 2명 등 모두 28명이 가담했다고 보고 있다. 이 가운데 17명은 체포됐고, 3명은 사살됐으며 나머지 8명은 추적 중이다.

그러나 일각에선 붙잡힌 콜롬비아인들은 진짜 암살자가 아니라는 주장이 확산하고 있다. 콜롬비아 현지 언론 등 외신을 종합하면 체포된 용의자들은 모이즈 대통령의 경호를 위해 채용된 콜롬비아군 출신의 용병들로 전해진다.

이날 미국의 마이애미헤럴드는 “암살범으로 지목된 콜롬비아인 대부분은 콜롬비아군 출신 용병들로, 마이애미 인근에 있는 대테러 관련 경비경호 서비스 제공 업체 ‘CTU’에 채용됐다”고 보도했다.

조브넬 모이즈 아이티 대통령 암살 용의자와 압수 무기. [AP=연합뉴스]

조브넬 모이즈 아이티 대통령 암살 용의자와 압수 무기. [AP=연합뉴스]

가디언에 따르면 체포된 콜롬비아인 용의자의 배우자도 현지 라디오 인터뷰에서 “남편이 ‘CTU’에 월 2700달러(310만여원) 조건으로 채용됐고,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유력 가문을 경호하는 업무를 맡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정확히 무슨 일을 하는지 몰랐고, 아이티로 간 줄도 몰랐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콜롬비아 언론 ‘세마나’는 “모이즈 대통령 사저 CCTV 영상을 보면 체포된 콜롬비아인들은 사건 발생 1시간 반이 지나서야 현장에 도착했다”면서 진짜 암살범은 따로 있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또 아이티 현지 언론 르 누벨리스트에 따르면 당국이 체포된 아이티계 미국인 용의자 2명은 심문에서 “통역 역할을 했으며, 암살이 아닌 납치가 원래 목표였다”고 진술했다고 한다.

“이익 유지하려는 기득권층이 배후” 주장도

아이티 경찰들이 대통령 암살 사건 소식에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을 통제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아이티 경찰들이 대통령 암살 사건 소식에 거리로 쏟아져 나온 시민들을 통제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다만 현재로써는 암살 배후에 자신의 이익을 유지하려는 기득권층이 있다는 모이즈 여사의 주장에 힘이 실리고 있다. 로이터에 따르면 모이즈 대통령은 아이티 정부 계약을 독점해 온 엘리트 및 재벌 등을 해체하고자 헌법 개정을 위한 국민 투표를 제안한 상태였다. 이에 반대한 기득권층이 암살을 지시했을 것이라는 의혹이다.

이런 이유로 아이티 전 하원의원 알프레도 앙투완도 “암살 배후에는 자신들의 이익이 침해당할 것을 우려한 기득권 재벌들이 있다” 말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경찰관 출신의 아이티 조직 폭력배 우두머리인 지미 셰리지에도 “국내외 정치세력이 모이즈 대통령을 희생시켰다”고 말했다.

너도나도 "내가 후임" 권력 다툼

암살 동기가 밝혀지지 않고 있는 가운데 권력 다툼도 벌어지고 있다. 대통령 사망 직후 클로드 조제프 임시 총리(현 외교부 장관)는 “임시로 나라를 맡게 됐다”고 발표했지만 최소 두 명이 승계의 정당성에 이의를 제기하고 나선 상황이다.

클로드 조제프 아이티 임시 총리가 8일 대통령 암살 용의자들이 언론에 공개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클로드 조제프 아이티 임시 총리가 8일 대통령 암살 용의자들이 언론에 공개관련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조제프는 지난 4월 조제프 주트 전 총리 겸 외교부 장관이 돌연 사임하면서 임시 총리로 임명됐다. 마티아스 피에르 선거 장관도 오는 9월 대선 및 총선 전 까지 조제프가 국정 책임자를 맡는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대통령이 사망하기 이틀 전 새 총리로 지명된 아리엘 앙리가 문제를 제기하고 나섰다. 의사 출신인 앙리는 아직 공식 취임 선서를 하지 않았으나 새 총리로 지명한다는 법령에 근거해 자신이 모이즈 대통령을 대신할 임시 총리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로이터와의 인터뷰에서 “새 정부를 꾸리는 중이며 선거 위원회도 새로 구성할 것이며 선거일도 새롭게 지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의회는 조제프 랑베르 상원의장을 임시 대통령으로 지명한다고 발표했다. 의회는 “대통령 유고 시 의회가 투표를 통해 임시 대통령을 뽑는다”는 2012년 개정 헌법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의회 선거가 제때 치러지지 못해 하원의원의 임기는 모두 끝난 상태고, 상원의원도 정원 30명 중 10여 명만 남아 임시 대통령을 선출할 수 있는 정족수에 미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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