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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난 집 잃고 또 닥친 불행…1주새 줄줄이 병원간 몽골인 3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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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골인 사른과 그의 세 아들. 둘째와 셋째는 쌍둥이다. 사진 이준모 목사 제공

몽골인 사른과 그의 세 아들. 둘째와 셋째는 쌍둥이다. 사진 이준모 목사 제공

지난달 24일 오후 인천시 계양구 한 건물 앞. 방호복을 입은 이들에 둘러싸인 40대 여성과 5살 아들이 구급차에 올랐다. 다음날 오후 비슷한 풍경이 펼쳐졌다. 이번엔 60대 여성과 3살 아이였다. 며칠 뒤엔 다른 3살 남아가 구급대원과 함께 병원으로 향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양성 판정을 받아 연이어 병원으로 향한 이들은 몽골에서 온 사른(가명·40) 가족이다. 1주일 사이에 차례로 일상을 잃은 5인 가족. 3대가 모여 살던 이들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어머니가 맺은 한국과의 인연

사른 가족과 한국의 인연은 2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01년 어머니 마를(가명·64)이 한국에서 일자리를 구하면서 시작됐다. 마를은 딸 사른이 성인이 되자 홀로 한국으로 떠났다. 평소 동경하던 나라에서 색다른 도전을 할 심산이었다. 수도권 한 공장에서 일하던 그에게 새 인연이 싹텄다. 동료인 한국 남성 A씨였다. 일터에서 함께 구슬땀을 흘리며 가까워진 이들은 5년 뒤 백년가약을 맺었다. 마를의 인생 2막은 그렇게 순탄하게 흘러가는 듯했다.

지난 2016년 봄 마를은 고민에 빠졌다. 몽골에 있는 딸이 한 부탁때문이다. 그사이 대학을 졸업한 딸은 사업을 하고 있었다. 딸은 “아이도 태어났으니 어머니가 손주를 돌봐주면서 같이 살았으면 좋겠다”는 뜻을 넌지시 전했다. 사연을 전해 들은 마를의 남편은 사른이 한국에 와서 경영 관련 공부를 계속하면 어떻겠냐고 역으로 제안했다. 좋지 않은 몽골 경기에 미래를 고민하던 딸은 고민 끝에 한국행을 택했다. 한국어학당을 거쳐 수도권의 한 경영대학원에 진학했다. 언젠간 NGO 단체에서 경영 관련 일을 하고 싶단 꿈이 있었다.

꿈 접고 생계 전선 뛰어든 딸

지난 6월 이준모 목사(가운데)가 사른 가족과 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 이준모 목사 제공

지난 6월 이준모 목사(가운데)가 사른 가족과 식사를 하고 있다 사진 이준모 목사 제공

넉넉하진 않지만 단란했던 사른 가족의 일상에 균열이 생긴 건 2017년. 정신적 지주였던 마를의 남편이 병환으로 세상을 떠나면서다. 월세와 세 아이의 보육비가 당장 문제였다. 어머니 마를도 녹내장으로 눈이 성치 않은 상황. 딸은 꿈을 잠시 접고 생계 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외국인이라 복지혜택을 받을 수 없었던 그는 이삿짐센터 등 닥치는 대로 일을 찾아 나서며 힘겹게 삶을 이어갔다.

힘든 내색 없이 분투했지만, 뜻밖의 재난이 이들 가족을 덮쳤다. 지난해 2월 사른 가족이 세 들어 살던 재향군인회 건물에 갑자기 불이 났다. 누전으로 인한 화재였다. 다행히 몸은 피했지만, 화마는 1시간 만에 보금자리를 앗아갔다. 모텔을 전전하던 이들은 노숙인쉼터를 운영하는 이준모 목사의 도움으로 가까스로 머물 곳을 구할 수 있었다.

동료 확진에서 시작한 연쇄감염 

다시 위기를 넘겼지만, 근심은 남았다. 주경야독으로 대학원을 졸업한 기쁨도 잠시, 유학생 비자(D2) 만료일이 다가왔다. 구직 비자(D10)를 받아야 하지만 노모와 세 아이를 돌보며 매일 사투 중인 사른에겐 정식 취업은 요원해 보였다. 걱정을 안고 이삿짐센터 일을 계속하던 지난달 말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졌다. 일터 동료가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았으니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으라는 통보였다. 검사결과는 불행의 연속이었다. 사른과 첫째 아이만 확진된 줄 알았건만 미결정 상태였던 다른 가족까지 차례로 양성 판정을 받았다.

이준모 목사는 “마를은 상태가 좋지 않아 영양제를 맞고 있다. 사른과 세 아이는 특별한 증상이 없어 그나마 다행이다”라면서도 “병원비 부담까지 떠안은 터라 사른은 매일 잠을 못 이루고 있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급히 후원금을 모아 100만원을 전달했지만, 임시방편일 뿐”이라며 “이들 가족을 도울 방안을 찾고 있지만 쉽지 않은 상황”이라며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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