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설] 검경 수사권 조정 6개월, 드러나는 폐해들

중앙선데이

입력 2021.07.10 00:21

업데이트 2021.07.10 0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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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44호 30면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안내표지판. [뉴스1]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 안내표지판. [뉴스1]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부터 조국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주도해 불과 1년 만인 2018년 6월 관철시킨 검·경 수사권 조정 등 국가 수사기관 부실 개혁의 폐해가 하나둘 드러나고 있다.  올해 1월 1일 수사권 조정을 담은 개정 형사소송법 시행 이후 경찰의 업무 부담이 가중되면서 고소장 한 장 낼 때의 진입 장벽이 높아지는 부작용이 나타났다. 사건 처리에 걸리는 기간도 이전보다 훨씬 길어졌다는 불만이 쏟아진다. 검찰 수사권을 축소하고 비대해진 경찰 수사를 견제하는 데만 집중하다가 정작 ‘국민을 위한 개혁’이라는 선로에선 탈선한 것이다. 특히 “조국 표(票) 수사권 조정은 힘없는 피해자들에게 치명적”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70년 만에 형사사법시스템을 대수술하는 중대 과업임에도 충분한 준비 없이 집권 세력의 당파적 신념과 실세의 개인적 소신만으로 졸속 추진한 결과 애꿎은 국민들이 대신 피해를 보고 있다.

경찰 입맛따라 ‘사건 쇼핑’…수사 장기화
검찰, 6대 범죄만 수사로 국가수사역량 저하
정파적 이해 얽힌 검찰권 분산 졸속 결정 탓

수사권 조정 시행 6개월이 지났지만 질 좋은 수사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정부의 약속은 공염불이 됐다. 경찰 주변에선 경찰이 사건을 골라 수사하는 이른바 ‘사건 쇼핑’이 벌어진다고 한다. 사기 사건 피해자가 주범과 공범 등 서너명에 대한 고소장을 써 경찰서에 제출했더니 담당 경찰이 며칠간 자료 검토 후 공범의 주소지 경찰서에 고소장을 내라고 반려했다. 골치 아픈 깡치 사건이라고 판단해 아예 입건조차 하지 않은 것이다. 심지어 혐의를 입증하려면 알아서 증거를 찾아오라고 요구하는 경찰관도 있다고 한다.

수사에 착수해도 느림보 수사로 피해자들의 애를 태우고 있다. 1차 수사종결권 획득으로 경찰의 재량권이 커지면서 견제 장치가 대폭 늘어난 탓이 크다. 3개월이면 끝나던 게 1년 이상 걸린다. 경찰청에 따르면 경찰 수사 현장의 업무량은 증가했다. 그에 비례해 올해 상반기까지 경찰 처리 사건에 대한 검찰의 보완수사와 시정조치 요구도 늘어났다. 보완수사 요구 비율은 지난해 동기 4.1%에서 9.7%로, 수사중지 등 시정조치 요구 비율은 2.3%에서 3.2%로 늘었다. 수사의 질이 악화되고 있다는 의미다.  경찰과 검찰이 보완 수사를 놓고 벌이는 신경전에 피해를 보는 고소인도 적지 않다.

문제는 경찰관들의 수사 부서 근무 기피 현상이 여전하다는 점이다. 업무는 과중한데 승진도 잘 안 돼서다. 경찰청이 지난 3월 경찰관 6901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수사경찰 31%만 현 부서에 만족한다고 답한 반면 비수사경찰은 69%가 만족을 표했다. 수사경찰은 불만족 이유 1위로 업무량(40.5%)을 꼽았다.

국가 중추 수사기관이던 검찰의 위상은 약화되고 있다. 업무 강도가 낮아지며 검사실마다 미제 사건이 지난해엔 한 달 100여건에서 올들어 10~20여건으로 대폭 줄었다. 오후 6시에 칼퇴근하는 ‘워라밸’도 가능해졌다. 전직 고검장 출신 변호사는 “검찰이 수사를 안 해 사건이 씨가 말랐다”며 “수백억대 횡령·배임·사기 사건을 고소한 지 1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캐비닛에 처박혀 있다”고 말했다. 민생 사건은 해결이 더디지만 일부 시민단체가 고소·고발하는 정치적 사건에 대해선 입맛 따라 수사권을 차별적으로 들이댄다는 비난을 사고 있다.

수사기관의 존재 목적은 범죄 척결을 통한 정의 구현이다. 그러나 수사권 조정이 국가 수사 역량의 저하로 이어지면서 거악들은 활개를 치고 있다. 무엇을 위한, 누구를 위한 수사권 조정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권익 보호라는 관점에서 형사사법체계를 재정비해야 마땅하다. 다만 당장은 현실과의 괴리를 좁히는 게 급선무다. 경찰이 불송치를 결정하거나 고소장을 임의로 반려할 경우 사유를 자세히 쓰도록 의무화하는등 수사 단계별로 당사자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는 것부터 실천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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