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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오진 의사 인터넷에 올린 사람 명예훼손 처벌, 합당할까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정세형의 무전무죄(44)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모든 사람은 법의 적용을 받는다. 코로나 바이러스 사태 이후 감염병의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여러 사람의 집합이 제한하거나 금지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그런데 만약 법 자체가 잘못되었다면 어떨까. ‘악법도 법’이라고 생각하고 무조건 받아들여야 할까. 최근 사회적으로 큰 이슈가 되고 있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를 살펴보면 형법 제307조 제1항에서는 ‘공연히 사실을 적시하여 사람의 명예를 훼손한 자는 2년 이하의 징역이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진실을 말한 사람에 대해 명예훼손죄로 처벌하는 것이 과연 합당한 것인지 의문을 품을 수 있다.

우리 법체계에 따르면 헌법이 최상위법이다. 그래서 하위법인 법률 등은 헌법에 위반되어서는 안 된다. 이러한 헌법적 분쟁 또는 헌법 침해가 문제되는 헌법재판을 담당하는 곳이 바로 헌법재판소다.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민사 또는 형사 등 사건의 경우 이를 해결하는 기관이 각 지방법원, 고등법원, 대법원과 같은 법원이라는 것은 대부분의 사람이 잘 알고 있고, 이를 배경으로 한 법정 드라마나 영화도 흔히 볼 수 있다. 반면 헌법재판소는 여전히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곳이다.

헌법재판소는 헌법소원심판, 위헌법률심판, 탄핵심판, 정당해산심판, 권한쟁의심판을 관장한다. 이번 글에서는 국민의 권리구제와 밀접한 관련이 있는 헌법소원심판, 그중에서도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따른 헌법소원에 대해 간략히 살펴본다.

헌법적 분쟁 또는 헌법 침해가 문제 되는 헌법재판을 담당하는 헌법재판소. [연합뉴스]

헌법적 분쟁 또는 헌법 침해가 문제 되는 헌법재판을 담당하는 헌법재판소. [연합뉴스]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 본문은 ‘공권력의 행사 또는 불행사로 인하여 헌법상 보장된 기본권을 침해받은 자는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는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서 ‘공권력’이란 입법권·행정권·사법권을 행사하는 모든 국가기관·공공단체 등의 고권적 작용을 말한다. 그 행사 또는 불행사로 국민의 권리와 의무에 대해 직접적인 법률효과를 발생시켜 청구인의 법률관계 내지 법적 지위를 불리하게 변화시키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판례다.

예를 들어 살펴보자. 어떤 사람이 범죄를 저질렀다는 의심을 받아 수사기관에서 조사를 받았는데, 검사로부터 기소유예처분을 받은 경우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다. 기소유예처분은 범죄 혐의가 인정되지만 다른 여러 사정을 고려해 공소를 제기하지 않는 것이다. 만일 죄를 저지른 것이 맞다면 재판을 받지 않아도 되니 기소유예처분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겠지만, 아무런 죄도 저지르지 않았는데 죄가 인정된다는 것을 전제로 하는 기소유예처분을 받는다면 억울할 수밖에 없다. 이러한 경우 기소유예처분을 받은 사람은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의 침해를 이유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 실제로 얼마 전 마트에 있는 자율포장대에 다른 손님이 놓고 간 3500원짜리 사과 봉지를 무심코 가져갔다가 절도범으로 몰려 검찰에서 기소유예처분을 받은 사람이 헌법소원을 통해 누명을 벗었다는 뉴스가 보도되기도 하였다.

기소중지처분에 대해서도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 즉, 검사가 기소중지처분을 한 경우 그 피의사건의 피의자에게는 검사가 다시 사건을 재기해 수사를 한 후 종국처분을 하지 않는 한 ‘범죄의 혐의자’라는 법적인 불이익상태가 그대로 존속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만약 검사가 자의적으로 기소중지처분을 했다면 그 사건의 피의자도 헌법상 보장된 자기의 평등권과 행복추구권이 침해되었음을 이유로 헌법소원을 제기할 수 있다.

반면 검사의 기소처분은 독립해 헌법소원심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점을 유의하여야 한다. 공소제기의 일종인 약식명령청구도 마찬가지이다. 검사의 공소제기가 청구인의 기본권을 침해하였는지는 그 형사재판절차에 의해 권리구제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마트에 있는 자율포장대에 다른 손님이 놓고 간 사과 봉지를 무심코 가져갔다가 절도범으로 몰린 사람이 헌법소원을 통해 누명을 벗은 사례도 있다. [사진 pixabay]

마트에 있는 자율포장대에 다른 손님이 놓고 간 사과 봉지를 무심코 가져갔다가 절도범으로 몰린 사람이 헌법소원을 통해 누명을 벗은 사례도 있다. [사진 pixabay]

그렇다면 법원의 재판에 대해서도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을까.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 본문에서는 헌법소원심판 대상에서 법원의 재판을 제외하고 있다. 따라서 원칙적으로 법원의 재판을 대상으로 하는 헌법소원심판 청구는 허용되지 않는다. 다만 예외적으로 헌법재판소가 위헌으로 결정한 법령을 적용함으로써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 재판에 대해서만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의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 그리고 법원의 재판은 소송법적 의미에 있어서의 재판뿐만 아니라 재판을 담당하는 법원이나 재판장이 소송절차의 파생적·부수적인 사항에 대한 공권적 판단, 사실행위 및 부작위 모두를 포함하는 포괄적 재판작용을 의미한다는 것이 헌법재판소의 판례다.

마지막으로, 법령이 직접 기본권을 침해하게 되는 경우 법령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있다. 이때 법령에는 형식적 의미의 법률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고, 조약, 명령·규칙, 조례 등도 포함된다. 다만 기본권 침해의 직접성은 집행행위에 의하지 않고 법률 그 자체에 의해 자유의 제한, 의무의 부과, 권리 또는 법적 지위의 박탈이 생긴 경우를 의미하기 때문에, 구체적인 집행행위를 통해 비로소 기본권 침해의 법률효과가 발생할 때 직접성의 요건이 결여되어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할 수 없다.

기본권 침해의 직접성이 인정되는 대표적인 경우가 바로 형법과 같이 법률이 직접 국민에게 행위의무 또는 금지의무를 부과한 후 그 위반행위에 대한 제재로서 형벌, 행정벌 등을 부과할 것을 정한 경우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규정도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최근 선고된 헌법재판소 판례를 살펴보면, 어떤 사람이 반려견의 치료를 받았는데 부당한 진료를 받아 반려견이 불필요한 수술을 하고 실명 위기까지 겪게 되었다고 생각해 반려견의 치료를 담당하였던 수의사의 실명과 잘못된 진료행위를 구체적으로 적시하려고 했다. 하지만 위 형법 규정으로 인해 이를 공연히 적시할 수 없게 되자 위 형법조항으로 인해 표현의 자유가 침해된다고 주장하면서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규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이상 헌법소원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았다. 그런데 헌법소원은 누구나 청구할 수 있지만, 청구인이 변호사 자격자가 아닌 한 반드시 변호사를 대리인으로 선임해야 한다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변호사를 선임할 자력이 없는 경우를 위해 국선대리인제도가 마련되어 있으니 이러한 경우에는 헌법재판소에 국선대리인 선임신청서를 제출하면 된다.

아울러 헌법소원에는 기간 제한이 있다는 점 또한 유의해야 한다. 헌법재판소법 제68조 제1항에 따른 헌법소원의 심판은 그 사유가 있음을 안 날부터 90일 이내에, 그 사유가 있는 날부터 1년 이내에 청구하여야 한다. 다만, 다른 법률에 따른 구제절차를 거친 헌법소원의 심판은 그 최종결정을 통지받은 날부터 30일 이내에 청구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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