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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흘 새 -1.5조’ 신풍제약…“‘손절’이냐 ‘존버’냐” 개인투자자 속 탄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약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신풍제약 피라맥스. 말라리아 치료제인 이 제품은 코로나19 억제 효과가 있는지 임상 시험을 진행했다. [뉴스1]

약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신풍제약 피라맥스. 말라리아 치료제인 이 제품은 코로나19 억제 효과가 있는지 임상 시험을 진행했다. [뉴스1]

서울 한 대학병원에서 임상연구를 하는 A씨는 지난 7일 자신의 증권 계좌를 확인하다 충격을 받았다. 이날 오후 늦게 계좌를 열어봤더니 지난해 투자했던 신풍제약 주가가 거의 반토막이 났기 때문이다.

코로나19 치료제 개발로 지난해 16배 올라 #지난 5일 “유의성 없다” 판정 받으며 급락

A씨는 “코로나19 관련 연구를 하면서 두루 검토해 보니 신풍제약의 코로나19 치료제가 나쁘지 않다고 봐서 주식을 샀다”며 “나도 손실이 크지만, 함께 투자한 연구실 후배들도 있어 상당히 곤혹스럽다”고 하소연했다.

사흘 만에 시총 1조5000억 증발 

신풍제약 최근 1년간 주가 변동. 그래픽 차준홍 기자

신풍제약 최근 1년간 주가 변동. 그래픽 차준홍 기자

지난 5일 이 회사가 코로나19 치료제로 개발 중인 ‘피라맥스’가 “유의성을 확보하지 못했다”는 판정을 받은 후 시가총액이 1조5000억원가량 빠졌다. 발표 다음날 하한가(6만7000원)를 기록하더니 7일 2.69% 하락한 6만5200원, 8일엔 0.15% 오르면서 6만5300원으로 마감했다. 개인 투자자들은 지금이라도 팔아야 할지, 주식을 계속 보유하고 있어야 할지 갈팡질팡하고 있다.

피라맥스는 원래 항말라리아 치료제다. 2012년 국내 신약 16호로 등록됐으며 지난해 매출은 40억원 미만이다. 신풍제약은 지난해부터 피라맥스가 코로나19 치료에 효과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임상시험을 했고, 이 과정에서 주가가 롤러코스터를 탔다.

지난해 1월 2일 기준으로 7320원이던 이 회사 주가는 정부가 임상시험 계획을 승인한 지난해 5월 2만원대로 뛰었다. 지난해 9월엔 20만9000원까지 치솟았다. 매출 1900억원대 회사가 11조원대의 가치로 평가받은 셈이다. 지난 한해 주가 상승률이 1612.7%로 거래소 2위였다. 1위는 신풍제약 우선주(1955.4%)였다.

주가 16배 뛸 때 증권사 리포트 딱 하나

주가변동에 달리 큰변화 없는 신풍제약. 그래픽 김경진 기자

주가변동에 달리 큰변화 없는 신풍제약. 그래픽 김경진 기자

특히 올해부턴 개인 투자자들이 적극 뛰어들었다. 개인 투자자는 올 들어 3140억원어치의 신풍제약 주식을 순매수했다. 같은 기간 외국인(-940억원)·기관(-502억원)·기타법인(-1690억)은 모두 신풍제약을 순매도했다.

신풍제약은 사업 구조가 비교적 단순한 회사다. 실적은 100% 의약품 제조에서 나오고, 굵직한 자회사도 없다. 지난해 매출이 1977억원으로 2019년(1897억원)과 비슷했다. 같은 기간 영업이익은 각각 56억원, 78억원이었다. 외려 지난 1분기 영업이익은 11억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20억원) 보다 줄었다.

투자자 사이에선 화제가 됐지만 지난해부터 올해 상반기까지 금융투자업계에서 내놓은 신풍제약 기업분석 보고서는 단 1개다. 유일하게 신풍제약 기업분석 보고서를 작성한 KB증권의 홍가혜 연구원은 당시 리포트에서 “피라맥스가 코로나19 치료제로 개발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주가에 영향을 미쳤다”며 “치료제 개발 경쟁 심화와 신약 개발의 불확실성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때도 투자 의견이나 목표 주가는 제시하지 않았다.

익명을 요청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그간 신풍제약 주가가 급등락한다는 점을 인지했지만, 뚜렷한 원인이 없어 굳이 재무적으로 분석할 필요를 판단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그동안 일부 대주주는 3차례 차익 실현

신풍제약은 지난해 최대 주주인 송암사가 200만주를 시간외 매매(블록딜) 방식으로 처분한다고 공시했다. [사진 금융감독원]

신풍제약은 지난해 최대 주주인 송암사가 200만주를 시간외 매매(블록딜) 방식으로 처분한다고 공시했다. [사진 금융감독원]

피라맥스는 임상2상에서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하지 못했다. 피라맥스를 투여한 경증 코로나19 환자(52명)와 이 제품을 투여하지 않은 환자(58명)가 28일 후 각각 어떻게 됐는지 봤더니, 별 차이가 없었다.

안정성 평가도 마찬가지다. 파라맥스 투여군에서 이상 반응을 보인 환자 비율(40.4%)은 대조군(48.3%)과 차이가 관찰되지 않았다. 지난 5일 이 소식이 알려지자 주가가 급락했다. 최고점 대비 3분의 1도 안 된다.

개인 투자자들은 ‘손절이냐’ ‘존버냐(수익이 날 때까지 버팀)’를 고민하고 있지만, 일부 대주주는 이미 일부 지분을 처분하며 차익을 실현한 상태다. 지난해 5월 장원준 전 신풍제약 사장의 친인척으로 알려진 민모씨는 자신이 보유한 신풍제약 주식 전량(92만3902주)을 장내 매도했다.

신풍제약도 지난해 9월 자사주(128만9550주)를 시간 외 대량매매(블록딜) 방식으로 매각했다. 당시 시가 기준으로 2153억원 규모다. 지난 4월엔 최대주주(송암사)가 블록딜 방식으로 1680억원어치(200만 주)를 매각했다. 송암사는 장원준 전 신풍제약 사장이 지분 72.9%를 보유한 개인회사다.

신풍 “고위험군만 놓고 보면 도전할 만”

신풍제약은 항말라리아 치료제 피라맥스가 코로나19 치료에도 효과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진행한 임상 2상에서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사진 신풍제약]

신풍제약은 항말라리아 치료제 피라맥스가 코로나19 치료에도 효과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진행한 임상 2상에서 통계적 유의성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밝혔다. [사진 신풍제약]

신풍제약은 피라맥스 임상3상을 신청한 상태다. 일부 지표에서 피라맥스가 코로나19 바이러스를 억제하고 중증으로 악화하는 비율을 낮출 가능성을 보였다는 것이 회사 측의 판단이다.

회사 측은 고위험군의 임상2상 결과에 주목하고 있다. 기저질환이 있거나 고령·비만을 동반하는 등 중증 악화 가능성이 높은 환자(고위험군) 통계만 떼어놓고 봤더니, 피라맥스를 투여한 환자(16명)는 모두 10일 후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음성으로 전환됐다는 것이다.

또 감염성 바이러스 보유량이 상위 50%인 환자만 놓고 봤더니 임상3상에 도전해 볼 만했다는 것이 신풍제약 측의 설명이다. 이들 중에서 피라맥스를 투여한 환자는 투약 3일 후 바이러스가 96.3% 줄었는데, 위약군(34.5%)보다 훨씬 많이 감소했다는 것이다. 이를 기반으로 신풍제약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1238명을 대상으로 임상3상을 신청했다.

“3000개 중 하나 성공…전략 차원일 수도”

전문가들은 임상2상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상황에서 임상3상이 성공할 확률은 높지 않다고 말한다. 김우주 고대구로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임상3상은 통상 3000여 개 후보 물질 중 1개 정도가 성공한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약물 재창출 방식의 코로나19 치료제는 임상 성공이 쉽지 않다”며 “신풍제약이 전략적인 차원에서 임상3상을 신청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중앙일보는 이날 신풍제약 측에 수십 차례 연락했지만 전화를 받지 않았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바이오 기업이 임상에서 성공하면 대규모 수익이 날 수 있지만, 반대로 임상에서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도 염두에 둬야 한다”며 “신풍제약 주가도 이런 산업적 특성이 반영된 사례 중 하나”라고 설명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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