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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서 자국 이익유지 노린 김정은-시진핑 교집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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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북·중 우호조약 체결 60년

이상숙 국립외교원 연구교수

이상숙 국립외교원 연구교수

북한이 침략을 받을 때 중국의 자동개입을 명기한 ‘북·중우호협력상호원조조약(이하 북·중 우호조약)’이 11일로 60주년을 맞는다. 1961년 7월 11일 체결된 북·중 우호조약은 20년 단위로 연장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2001년 조약이 20년 연장돼 2021년까지 조약의 유효성이 확보됐고, 올해 체결 60주년을 기념해 그 연장 여부가 확인될 것이다. 굴곡 많은 60년 세월 동안 북·중 우호조약 또한 적지 않은 변화를 겪었으나 북·중은 현재 이 조약을 폐기하거나 수정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지는 않다. 그 이면에 자리한 김정은-시진핑(習近平) 북·중 두 지도자의 셈법은 과연 무엇일까.

61년 7월 체결돼 20년마다 연장 #조약 위반해 실효성 떨어졌지만 #중국은 유사시 한반도 개입 가능 #북한은 한·미 대항 위해 중국 필요

북·중 관계를 안보동맹으로 보는 건 북·중 우호조약에 기인한다. 이 조약에 안보협력 내용이 포함돼 있고 지금까지도 이 조약이 존속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중은 서로를 동맹국가로 표현하지 않고 ‘전통우호관계’라 칭한다. 북한에 중국군이 주둔하지 않고 있고 양국 합동 군사훈련 등과 같은 안보협력이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북·중은 양국 관계가 한미동맹과 같은 안보동맹과는 다르다고 주장한다. 특히 북·중 관계는 강대국과 약소국 간 비대칭 동맹에서 발견되는 강대국의 안보지원과 약소국의 자율성 교환이란 관계가 성립되지 않기에 일반적인 비대칭 안보동맹과도 차이가 있다.

북·중 우호조약의 체결 배경은 1950년대 말부터 시작된 중국과 소련 간 중·소 분쟁이다. 중·소 양국으로부터 안보지원을 받던 북한은 중·소 분쟁으로 양국 모두로부터 안보지원을 받지 못하는 상황을 우려했다. 이 때문에 북한은 소련 및 중국과 각각 안보지원 조항이 포함된 안보동맹 조약을 체결했다. 북한이 중·소와 체결한 조약 내용을 보면 북·중 우호조약은 안보조항인 제2조에 ‘지체 없이’란 문구를 삽입해 북·소 우호조약보다 더 긴밀한 관계라는 점을 부각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이 지난 2019년 6월 21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북한 방문을 마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환송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이 지난 2019년 6월 21일 평양 순안공항에서 북한 방문을 마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을 환송하고 있다. [조선중앙통신=연합뉴스]

조약 제2조는 “체약 일방이 어떤 한 국가 또는 몇 개 국가의 연합으로부터 무력침공을 당해 전쟁 상태에 처하게 되는 경우 체약 상대방은 모든 힘을 다해 지체 없이 군사적 및 기타 원조를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 조항으로 북·중 우호조약은 안보동맹의 성격을 지닌다고 할 수 있다. 또 조약 제7조는 조약의 수정 또는 폐기에 대해 쌍방 간 합의가 없는 이상 계속 효력을 갖는다고 규정해 어느 일국이 조약을 파기하지 못하도록 했다. 이로 인해 북·중 우호조약은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다.

그러나 북·중 우호조약이 북·중관계의 전모를 설명하는 건 아니다. 왜냐하면 양국은 이미 조약의 일부 조항을 위반했으며 또 이에 대한 어떤 제재 수단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조약 제3조는 “체약 쌍방은 체약 상대방을 반대하는 어떠한 집단과 어떠한 행동 또는 조치”에도 참가하지 않는다고 했으나 중국은 한국과 수교함으로써 이 조항을 위반했다.

또 조약 제4조는 “일체 중요한 국제문제들에 대해 계속 협의”한다고 함으로써 대외 문제와 관련해 서로 의견을 교환하고 공동 협력하자고 했지만, 북한은 핵 실험 시 중국과 협의하지 않고 독자적인 행동을 취해 이 조항을 위반했다. 결국 탈냉전 이후 북·중 우호조약의 실효성은 크게 약화됐다.

북·중 관계 주요 일지

북·중 관계 주요 일지

북·중 양국은 상대국의 조항 위반을 비판하기는 했다. 그러나 이게 조약의 폐기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탈냉전 이후 북·중 관계의 변화로 인해 북·중 우호조약은 양국 관계를 규정하는 유일한 것이 아니라 양국 관계의 바탕이 되는 상징적 의미가 됐다. 또 북·중 우호조약의 각 조항이 엄격한 실효성을 가지는 건 아니며 조약의 각 조항을 꼭 준수해야 하는 절대적 의무 또한 사라졌다고 볼 수 있다.

북·중 안보동맹에 변화를 야기한 건 1970년대의 미·중 데탕트였다. 냉전 시기 북·중 동맹은 한미동맹에 대항하는 성격을 가졌다. 그러나 중국이 미국과 관계 개선을 이루면서 북·중 양국은 대미 위협인식에 있어서 차이가 발생하였다. 실제로 중국은 70년대의 데탕트 시기부터 한반도 정책을 미·중 관계와 한반도의 안정이란 두 개의 렌즈로 보기 시작했다. 특히 1976년에 발생한 ‘8·18 판문점 사건’은 북한의 도발이 한반도 분쟁을 야기할 수 있다는 점을 중국에 각인시켰고, 이를 기점으로 중국은 북한의 도발 억제를 강화했다.

이후 한·중 수교는 북·중 관계가 북·중 우호조약의 틀을 벗어나 갈등이 확대되는 계기가 됐다. 한·중 수교는 북·중 양국 간의 다양한 갈등을 표출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는데 그 대표적인 게 북한 핵문제다. 실제로 2006년 북한의 첫 핵실험에 대해 중국은 북한을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이러한 북·중 관계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북·중 양국이 우호조약을 폐기 또는 수정하지 않는 원인은 조약의 유지가 양국의 이익에 부합하기 때문이다.

김일성 북한 수상(왼쪽)과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가 1961년 7월 11일 중국 베이징에서 ‘북·중 우호협력상호원조 조약’을 체결한 뒤 악수를 나누며 웃고 있다. 조약은 20년마다 갱신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바이두 캡처]

김일성 북한 수상(왼쪽)과 저우언라이 중국 총리가 1961년 7월 11일 중국 베이징에서 ‘북·중 우호협력상호원조 조약’을 체결한 뒤 악수를 나누며 웃고 있다. 조약은 20년마다 갱신되는 것으로 알려진다. [바이두 캡처]

먼저 중국의 경우 한미동맹에 대한 외적 위협에 대항하고 북한의 불안정성을 제어하기 위해 조약의 유지를 지지한다. 중국은 북·중 우호조약의 존재 자체만으로도 한미 양국이 한반도 문제에 대한 중국의 개입을 고려하기 때문에, 북·중 우호조약이 한반도의 무력 충돌을 억제하는 역할을 한다고 본다. 이에 따라 북·중 우호조약을 유지하는 게 한반도의 안정에 기여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중국의 조약 유지 목적은 또 한반도 유사시 개입할 수 있는 명분을 확보하고 미국이 한반도 문제를 일방적으로 처리할 수 없게 하려는 데 있다. 미·중 경쟁이 강화되는 시진핑 시기를 맞아 중국은 한미동맹 강화에 대한 우려가 존재하며 이는 북한의 입장과 일치한다. 북·중 양국은 대미 위협인식에 대해 차이가 있긴 하지만 접점을 찾을 수는 있게 된 것이다. 따라서 중국은 조약 유지의 비용이 커지더라도 조약을 유지하려 할 것이다.

북한 역시 한미동맹이라는 외적 위협에 대항하기 위해 북·중 우호조약이 필요하다. 한반도 문제가 한미 양국에 의해 좌우되지 않도록 북한은 중국이 개입하는 게 일정 정도 필요하다고 본다. 김정은 시기 북한은 안보위협 해소를 위해 헌법에 핵보유국임을 명시하면서 핵무력을 통해 국방력을 강화하였고 2017년 11월엔 ‘국가핵무력 완성’을 선포하였다.

그러나 북한이 한미동맹과 대항하기 위해선 중국의 지원이 필수적이다. 북한은 북·중 우호조약이 존재함으로써 한미 양국이 한반도에 대한 중국 개입을 우려하게 되기 때문에 조약의 존재가 한국 주도의 무력 및 흡수통일을 제어하는 역할을 한다고 본다. 결국 김정은-시진핑 시기 북한과 중국은 북·중 우호조약 유지에 대한 교집합을 갖게 된 것이다. 이처럼 한반도에서의 각각의 이익 유지를 위해 양국은 북·중 우호조약의 존속을 지지하고 있다.

미·중 경쟁속 재조명받는 북·중 우호조약

조 바이든 미 행정부의 대중국 정책은 동맹국들과 협력해 중국에 대한 압박을 강화하는 것이다. 미국과 EU 국가들은 지난 6월 브뤼셀에서 개최된 NATO 정상회의와 런던에서 열린 G7 정상회의를 통해 대중정책에 대한 협력을 확인했다.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 대한 중국 책임론까지 겹쳐지면서 미국과 EU의 대중국 압박정책은 가시화되고 있다.

이러한 중국의 대외 상황은 1989년 중국의 6·4 사건(천안문 사태) 이후와 유사하다. 당시 미국과 EU 국가들은 인권 문제를 제기하면서 중국과의 경제관계를 축소하고 중국을 압박했다. 이때 중국이 선택한 정책은 주변국과의 관계 강화였으며 이 시기 북·중 협력도 강화됐다.

1970년대 미·중 데탕트 시기 이후 중국의 대미 위협인식 약화가 북·중 관계의 변화를 가져왔다면, 미·중 경쟁 시대 중국의 대미 위협인식 강화는 북·중 양국의 협력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물론 북핵 문제로 인한 북·중 양국 간 안보갈등은 여전히 존재한다. 그러나 북·중 양국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대미 정책에서 접점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특히 미국이 신장(新疆)과 홍콩 문제를 비롯한 중국의 인권 이슈를 제기하고 사회주의 이념 문제를 언급할수록 북한과 중국의 협력 공간은 확대될 것이다.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일을 맞이하여 지난 1일 김정은 총비서가 시진핑 주석에 보낸 축전에 중국과의 이념 유대를 강조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에 따라 북한과 중국은 북·중 우호조약의 유효성에 대해선 모호성을 유지한 채 조약을 유지할 전망이다. 북·중 관계의 긴장과 갈등은 상존할 것이지만 최소한 한미 양국의 이익에 따라 한반도 상황이 변화되는 것은 제어하려 할 것이다. 결국 북·중 우호조약은 한반도에서 소극적인 분쟁예방 기능을 하면서 현상유지에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할 수도 있다.

북·중 우호조약의 유지는 북핵 및 한반도 평화문제와 관련해 중국의 역할을 고려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2018년 평창올림픽을 통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에서 남북 및 북·미 정상회담에 앞서 개최된 것이 북·중 정상회담이라는 점은 이를 뒷받침한다. 비록 시진핑 주석이 북한보다 한국과 먼저 정상회담을 한 중국의 첫 지도자였다고 할지라도, 2008년 차기 지도자로서 북한을 방문한 바 있음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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