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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주식 상승 ‘부의 효과’…벤츠·포르쉐 없어서 못판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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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중견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김모(42)씨는 연초에 폴크스바겐의 제타를 샀다. 10년 전 620만원에 마련한 아반떼XD 중고차를 처분하고 산 생애 첫 ‘수입차’였다. 국산 준중형 중고차에서 신형 수입차로 ‘점프 업’ 했지만, 비용 부담은 크지 않았다. 꼭 필요한 옵션만 넣은 가격은 2490만원, 국산 중형 쏘나타 신차 가격(2547만~3645만원)보다 저렴했기 때문이다. 김씨는 “가격과 연비 모두 만족스럽다”며 흐뭇해했다. 김 씨 같은 40대들이 수입차 시장에 진입하면서 올해 상반기(1~6월) 수입차 판매가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연말까지는 수입차 30만대 시대가 현실화할 것으로 보인다.

수입차 판매 상반기 사상 최대 #자산가치 오르며 여윳돈 많아져 #40대 주축, 1억 넘는 고급차 더 인기 #“포르쉐는 내년 2월까지 물량 동나”

상반기 수입차 판매 추이.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상반기 수입차 판매 추이.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6일 한국수입자동차협회(KAIDA)에 따르면 상반기에 팔린 수입차는 14만7757대에 이른다. 이전 최고를 기록한 2018년 상반기(14만109대)보다 5% 늘었다. 여기에 하반기에 신차가 더 많이 팔리는 점을 고려하면 수입차 30만대 시대는 시간문제다. 게다가 KAIDA 집계에는 회원사가 아닌 테슬라의 판매 대수는 포함되지 않는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상반기에 테슬라 등록 대수는 1만1629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4% 증가했다. 테슬라는 연말까지 최대 2만5000대를 팔 것으로 예상한다. 이에 따라 국내 시장에서 수입차의 비중도 역대 최고인 20%를 기록 중(1~5월 기준)이다.

수입차 판매 증가에 대해 업계에선 여러 요인이 겹쳤다고 본다. 고태봉 하이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은 “최근 2~3년간 부동산·주식·코인 등 자산 가치가 올라 쓸 수 있는 돈이 많아진 ‘부의 효과’가 가장 큰 요인”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저금리로 인해 ‘오토 리스’ 프로그램도 이전보다 조건이 좋아졌다”고 했다. 고 리서치센터장은 “수입차에 대한 거부감이 적어졌다는 점, 그랜저·제네시스 등 국산 고급 브랜드의 가격 상승으로 수입차 가격이 상대적으로 덜 비싸 보인다는 점도 꼽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전체 승용차 중 수입차 비중.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전체 승용차 중 수입차 비중.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실제로 수입차 시장에서는 메르세데스-벤츠나 포르쉐 같은 고급 차종의 경우 “없어서 못 팔 정도”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벤츠는 사전 판매로 올해 한국에 들어올 물량이 이미 완판되다시피 했고, 포르쉐는 내년 2월까지 더 팔 물량이 없는 것으로 안다”며 “특히 1억원이 넘는 하이엔드(고급형) 차가 더 잘 팔리는 현상이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카이즈유데이터연구소에 따르면 상반기 가장 많이 팔린 차종은 메르세데스-벤츠 E시리즈(1만4733대), BMW 5시리즈(1만991대), 테슬라 모델 3(6275대)였다.

연령대별 수입차 구매 비중.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연령대별 수입차 구매 비중.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최근 수입차 선호 현상을 40대 이상 연령층이 이끄는 것도 특이점이다. KAIDA에 따르면 올해 수입차 구매자 중 20·30대 비중은 22.3%로 5년 전인 2016년(29.6%)보다 7.3%포인트 낮아졌다. 반면 같은 기간 40대와 50·60대 구매자는 각각 1.9%포인트, 4.1%포인트 늘었다. 이호근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5년 전엔 20·30 세대가 할부나 리스를 통해 수입차를 대거 샀다. 이 때문에 ‘카 푸어(Car Poor)’라는 말도 나왔다”며 “하지만 최근엔 실제 재산이 있는 사람들이 고가의 고급·대형차를 사는 경향이 늘었다”고 말했다.

현대차·기아를 제외한 외자계 3사(한국GM·르노삼성·쌍용차)의 판매 부진도 빼놓을 수 없다. 익명을 요구한 업계 관계자는 “쌍용차가 주도했던 픽업트럭 시장에서 쉐보레·지프 등이 점유율을 늘리는 게 단적인 예”라고 말했다. 실제로 메르세데스-벤츠·BMW·아우디 독일 3사의 상반기 판매량은 8만9229대로, 외자계 3사 판매 대수(8만8625대)를 앞질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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