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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법무부 구하라법은 짝퉁…버림받은 자식에 되레 상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구하라법' 발의한 서영교 "법무부 안은 가짜" 

지난 2019년 11월 24일 세상을 떠난 가수 구하라씨(사망 당시 28세). 사진은 2017년 10월 한 행사에 참석한 모습. 뉴스1

지난 2019년 11월 24일 세상을 떠난 가수 구하라씨(사망 당시 28세). 사진은 2017년 10월 한 행사에 참석한 모습. 뉴스1

"미성년 자녀를 돌보지 않은 부모의 자녀에 대한 상속권을 원천적으로 박탈한다."(서영교 안)

"부모가 미성년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한 경우 피상속인이 부모를 상대로 법원에 상속권 상실 청구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법무부 안)

"법무부가 만든 '구하라법'은 진짜가 아니라 짝퉁(가짜)이다."

[이슈추적] 서 의원 "같은 듯 다른 2개의 '구하라법'" 반발

더불어민주당 서영교(서울 중랑구 갑) 의원이 지난달 15일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법무부의 민법 개정안을 두고 한 말이다.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인 서 의원은 1일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구하라법은 친부모에게 버림받은 자식을 보호하기 위한 법인데 거꾸로 상처를 주는 법이 됐다"고 주장했다. "법무부 안은 자신을 돌보지 않은 부모에게 소송을 걸어야 하기 때문에 자식에게 2차 가해를 주는 방식"이라는 취지의 말이다.

법무부가 '구하라법'이라 지칭한 민법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는데, 정작 수년간 '구하라법' 처리에 매달려 온 서 의원이 반발하는 까닭은 뭘까.

구하라법 관련 서영교 안과 법무부 안.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구하라법 관련 서영교 안과 법무부 안.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법무부 "상속권 상실, 학대 방지 제도"   

법무부는 국무회의 의결 당일인 지난달 15일 "상속권 상실 제도 도입을 골자로 한 민법 일부 개정안(일명 '구하라법')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상속권 상실 제도는 재산을 상속받을 사람(상속인)이 재산을 물려주는 사람(피상속인)에 대한 부양의무를 중대하게 위반했거나 범죄 행위 등을 한 경우 상속인이나 피상속인의 청구에 따라 가정법원이 상속권 상실 여부를 결정하는 게 골자다.

법무부는 "'구하라법'이라 불리던 상속권 상실 제도는 부양의무 해태나 학대 방지를 위한 제도"라며 "상속 관계의 중요성에 비춰 가정법원으로 하여금 상속인과 이해 관계인의 입장 등 여러 가지 사정을 고려해 신중하게 판단하도록 하고 피상속인의 의사가 최대한 반영될 수 있도록 했다"고 했다. 법무부 안은 지난달 18일 국회에 제출됐다.

'구하라법'은 2019년 11월 초 서 의원이 해당 개정안을 발의하면서 시작됐다. 가수 구하라씨는 같은 달 24일 28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구하라씨 친오빠 구호인씨는 서 의원이 만든 법을 기반으로 지난해 3월 '어린 구하라를 버리고 가출한 친모가 구하라 사망 이후 상속 재산의 절반을 받아 가려 한다'며 입법 청원을 했지만, 20대 처리는 불발됐다. 서 의원은 지난해 6월 다시 '구하라법'을 본인의 21대 국회 1호 법안으로 대표 발의했다.

서영교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이 지난해 11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일명 '구하라법' 통과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서영교 국회 행정안전위원장이 지난해 11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일명 '구하라법' 통과 촉구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어릴 때 자녀 버린 부모 상속 자격 없애야" 

서 의원이 발의한 법안은 구하라씨처럼 어릴 때 부모가 아이를 버리고 갔다면 자녀 재산을 상속받을 수 없게 부모의 상속 자격을 자연적·원천적으로 박탈하는 게 핵심이다. 이를 받아들일 수 없으면 아이를 버린 부모가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

현행 민법(1004조)에 있는 '상속인의 결격 사유' 5가지 외에 '피상속인의 직계존속(부모)으로서 피상속인(자식)에 대한 부양의무를 현저히 게을리한 사람'을 여섯째 항목으로 추가해 미성년 자녀를 돌보지 않은 부모의 상속권을 원천적으로 박탈하도록 했다.

반면 법무부 안은 친부모의 상속 자격을 인정하는 전제 아래 자녀가 생전에 양육의무를 다하지 않은 친부모에게 자신의 유산이 가지 않도록 소송을 제기하는 형태다. 서 의원은 "상속권 상실의 효과는 같지만, 법무부 안은 부양의무에 대한 입증 책임이 부모가 아닌 자녀에게 있다는 면에서 (서영교 안과) 차이가 있다"고 했다.

법무부가 지난달 15일 "상속권 상실 제도 도입을 골자로 한 민법 일부 개정안(일명 '구하라법')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며 배포한 보도자료 일부. 사진 법무부

법무부가 지난달 15일 "상속권 상실 제도 도입을 골자로 한 민법 일부 개정안(일명 '구하라법')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며 배포한 보도자료 일부. 사진 법무부

서 "자녀가 언제 죽을 줄 알고 소 제기하나" 

이에 대해 서 의원은 "법무부 안은 자녀가 본인이 죽을 것을 예상하고, 그 전에 양육하지 않은 파렴치한 부모를 상대로 상속권 상실 재판을 청구해야 한다는 점에서 서영교 안과 이념적 출발이 다르다"고 말했다.

"과연 자녀가 스스로 언제 죽을 줄 알고 생전에 미리 자신을 키우지 않은 부모를 상대로 소를 제기할 수 있을까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는 주장이다.

그는 "세월호 사고와 천안함 사건으로 안타깝게 목숨을 잃은 사람들의 연금과 위로금 등을 이들을 키우지 않은 생부와 생모가 받아가고 있는 상황은 생각만 해도 슬프다"며 "법사위에서 법무부 안이 아니라 상속 결격 사유를 개정한 서영교 안이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고 했다.

가수 고(故) 구하라씨 친오빠 구호인씨가 지난해 11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구하라법 통과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가수 고(故) 구하라씨 친오빠 구호인씨가 지난해 11월 10일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구하라법 통과 촉구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스1

법무부 "부양의무 모호…법원 판단 거쳐야" 

법무부는 서 의원의 주장에 대해 "두 안 모두 장단점이 있지만, 자녀에 대한 부양의무를 소홀히 한 부모의 상속권을 박탈하자는 내용은 서영교 안과 법무부 안이 똑같다"며 "다만 서 의원은 소송 없이도 부양의무를 소홀히 한 부모의 상속권을 박탈하자는 것이고, 법무부는 상속권은 굉장히 중요한 문제여서 재판을 거쳐야 한다는 입장"이라고 밝혔다.

법무부 관계자는 "부모의 상속권을 박탈하는 방법을 놓고 서영교 안은 부양의무를 제대로 안 한 행위가 있으면 무조건, 즉시, 당연히 상속 결격 사유에 넣어 상속권을 없애자는 것이고, 법무부는 그렇게 하면 누가 부양의무를 소홀히 했는지 모호하고, 입장마다 다를 수 있기 때문에 가정법원의 판단을 받아 상속권 상실 여부를 결정하자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서 의원도 (부모의 상속권 상실에) 가정법원의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해 최초 안을 대폭 수정했다"고 했다.

반면 서 의원은 "법무부 의견을 일부 받아들여 '가정법원은 피상속인의 청구에 따라 상속 결격을 확인할 수 있다'는 조문을 추가해 다시 법안을 발의했지만, 처음 것과 거의 유사하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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