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 에너지 주도권 한국이 쥐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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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 에너지와 관련된 것이라 외국과 공동 연구를 하지 않았습니다."

수소 연료 저장 물질의 구조를 설계해 물리학계 최고 권위 학술지인 '피지컬 리뷰 레터' 4일자에 논문을 게재한 서울대 임지순(물리천문학부) 교수. 그는 4일 본지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미래 세계 경제를 좌우할 에너지 주도권을 한국이 쥐도록 하기 위해 이 연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렇다고 이번 연구로 수소자동차 실용화가 바로 이뤄지게 된 것은 아니다.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고 조심스러운 반응도 보였다. 이제 물질을 설계해 합성을 한 단계이지 실제 저장장치를 만든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또 수소자동차가 실용화되려면 저장장치 말고 엔진 등 다른 분야의 기술도 함께 개발돼야 한다고 임 교수는 덧붙였다.

그는 "논문 발표 시기를 놓고 고민이 많았다"고 털어놨다. 논문은 물질을 설계한 내용만 담고 있다. 그런데 설계 결과를 너무 빨리 발표하면 물질을 합성하는 기술이 뛰어난 외국 연구진이 먼저 합성물질을 만들어낼 수도 있었다. 반대로 무작정 발표를 미루자니 외국 연구진이 비슷한 결과를 먼저 발표해 특허를 선점할 위험이 있었다. 그래서 설계가 끝나고 합성까지 성공한 단계에서 논문을 제출했다.

임 교수는 "논문을 본 미국 신재생에너지연구소 연구 책임자 등이 축하 e-메일을 보냈다"고 전했다. 초전도체 등 특수 물질 연구에서 세계적 권위자인 임 교수는 이번 연구를 2004년 하반기 시작했다. 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년을 국내에서 보내면서 "다음 7년 동안 무엇을 연구할까"를 고민하다 이 분야를 택했다. 그는 "신물질 연구라는 점에서 종전 연구 분야와 비슷한 점이 있고, 미래 경제에 가장 큰 파급 효과를 가져올 에너지 분야여서 선택했다"고 했다. 성균관대 나노튜브 및 나노복합구조연구센터(CNNC)와 함께 정부의 BK21 사업의 연구비 지원을 받았다.

임 교수가 박사 과정을 지도하고 있는 이훈경(30).최운이(29) 연구원이 이번 연구에 참여했다. 임 교수 등은 1년여 동안 1000여 종의 물질을 설계해 수퍼컴퓨터로 성질을 계산한 끝에 신물질을 찾아냈다.

임 교수는 "두 연구원이 주도적으로 신물질 아이디어를 냈다"고 공을 제자들에게 돌렸다. 물질 합성은 지난해 말 시작해 최근 성공했다. 이는 제3의 국내 연구진이 했다. 현재 합성한 물질의 수소연료 저장 능력을 확인하고 있다. 임 교수는 "외국에 합성 관련 정보가 새나갈 수도 있어 성능을 확인할 때까지 물질을 합성한 연구진을 밝히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 임지순 교수는=차세대 반도체 원료로 주목받고 있는 탄소 나노튜브 연구 분야에 세계적 권위자로 통한다. 1998년 탄소 나노튜브를 다발로 묶으면 반도체 성질을 띤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밝혀냈다. 지금까지 탄소 나노튜브 관련 논문 40여 편을 써 이 중 3편을 사이언스와 네이처지에 게재했다. 2000년에는 미 버클리대와 공동으로 탄소 나노소자를 십자형으로 포개면 트랜지스터 작용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최근에는 삼성전자 등과 손잡고 탄소 나노튜브를 이용한 차세대 디스플레이 개발 등에 주력해 왔다. 임 교수는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UC버클리대와 매사추세츠공대(MIT)에서 반도체 물리학으로 박사와 박사후 과정을 마쳤다. 미국 벨연구소 연구원을 거쳐 86년부터 서울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권혁주.임장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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