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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기소 백운규·채희봉 '배임' 뺐다…"靑 책임론 고리 끊기"

중앙일보

입력

월성 1호기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9일 대전지방법원으로부터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대전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뉴스1

월성 1호기 원전 경제성 평가 조작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는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9일 대전지방법원으로부터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대전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뉴스1

월성 원전 1호기 경제성 평가조작 의혹을 받는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채희봉 전 청와대 산업정책비서관(현 한국가스공사 사장), 정재훈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법정에 서게 됐다. 다만 수사팀은 백 전 장관의 배임 교사 혐의까지 있다고 봤지만, 김오수 검찰총장이 직권으로 검찰 수사심의위원회(수심위) 소집을 결정해 판단을 미뤘다. 백 전 장관과 채희봉 전 비서관에겐 배임 혐의를 제외한 걸 두고 청와대 탈원전 정책 전반에 대한 책임론을 회피하려는 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김오수, 백운규 배임 교사 적용 제동  

대전지검 형사5부(부장검사 이상현)는 이날 백 전 장관과 채 전 비서관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업무방해 혐의로, 정 사장을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업무방해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 이들은 2018년 월성 1호기 조기 폐쇄를 위해 경제성 평가에 부당하게 관여하고 한수원 이사회를 압박해 ‘즉시 가동 중단’을 의결하도록 한 혐의를 받는다.

백 전 장관은 채 전 비서관과 공모해 2017년 11월 한수원이 월성 1호기 조기폐쇄 의향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하게 한 혐의(직권남용, 업무방해)를 받는다. 백 전 장관은 산업부 공무원이 2018년 4월 ‘월성 1호기를 2년 반 동안 한시적으로 가동할 필요가 있다’는 보고를 올리자, “너 죽을래? 즉시 가동 중단으로 보고서를 다시 써서 보고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사장은 백 전 장관의 월성1호기 즉시 가동 중단 지시에 따라 경제성 평가 결과를 조작하고, 조작된 평가 결과를 2018년 6월 한수원 이사회에 제출해 이사회를 기망한 혐의(특경가법상 배임, 업무방해)를 받는다. 검찰은 정 사장의 경제성 평가 조작 등으로 월성 1호기가 폐쇄돼 한수원이 1481억원에 달하는 손해를 입었다고 봤다.

채 전 비서관은 오는 2022년 11월까지 운영이 보장된 월성원전을 조기폐쇄하기 위해 대규모 손실이 예상된다는 한수원 의사를 무시한 채 즉시 가동을 중단하도록 한 혐의다. 이 과정에서 지난 2017년 11월 월성 1호기 조기폐쇄 의향을 담은 ‘설비현황조사표’를 한수원 측이 제출하도록 하고, 이사회 의결을 이끌어냈다는 것이 검찰의 판단이다.

김오수 검찰총장. 김경록 기자

김오수 검찰총장. 김경록 기자

이 사건을 수사 중인 대전지검은 검찰 중간간부 인사 전날인 지난 24일 부장검사 회의를 열고 백 전 장관과 정 사장, 채 전 비서관을 직권남용 혐의로 기소하고, 특히 백 전 장관과 정 사장에게는 업무상 배임 혐의도 적용해야 한다’는 결론을 만장일치로 도출했다.

그러나 엿새 만에 백 전 장관이 정 사장에게 배임·업무방해를 교사한 혐의는 공소사실에서 빠졌다. 대신 김오수 총장이 직권으로 수심위를 열어 기소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검찰이 아닌 일반 시민으로 구성된 수사심의위에 백 전 장관의 기소·불기소 여부를 물어보자는 것이다.

국가 향한 민사 손해배상 길 열릴까

이처럼 검찰 수뇌부가 부장검사들이 만장일치로 뜻을 모은 ‘배임 기소’를 틀어막는 것을 두고 “검찰이 아닌 정권 방패가 되려 총장을 맡은 것이냐”란 비판이 줄잇는다. 백 전 장관에 대한 배임교사가 적용될 경우 향후 탈원전 정책에 대한 국가상대 민사 손해배상 소송이 속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검장 출신 변호사는 “백 전 장관이 포함되면 한수원 차원이 아니라 정부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소송이 가능해진다”며 “한수원을 관장하는 산업부의 배임 책임이 분명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짚었다. 다만 소송 주체는 “주가 하락에 따라 손실을 본 한전 주주가 될 공산이 크다”며 “전기요금을 내는 국민들까지 인과관계가 연결되기 어렵다” 고 봤다.

당초 월성 1호기는 개·보수에 7000억원이 투입돼 수명이 2022년 11월까지 연장됐지만, 문재인 정부는 2018년 조기 폐쇄를 관철했다. 한수원은 한국전력의 자회사이며, 한전 지분의 40%가량은 민간 주주들이 보유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부산 기장군 장안읍 해안에 있는 고리원전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017년 부산 기장군 장안읍 해안에 있는 고리원전 고리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조기 폐쇄 결정은 2018년 4월 2일 문재인 대통령이 “월성 1호기 가동 중단은 언제 결정하느냐”고 주변 참모들에게 말한 이후 본격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문 대통령이 신현수 전 민정수석 카드를 버린 것도 검찰의 백운규 전 장관 구속영장 청구를 막지 못한 것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는 말도 나돌았다. 지난 2017년 6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부산 기장의 고리 1호기 영구정지 선포식에서 탈원전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탈원전 피해 및 국토파괴 대책특위’에서 “문재인 정권이 맹목적 판단으로 탈원전이라는 운전대를 잡고 잘못된 길에 접어들어 폭주를 계속하고 있다”며 “빨리 유턴하는 것이 가장 손쉬운 해결책이고 피해를 줄일 수 있는 길”이라고 비판했다.

김수민·강광우 기자 kim.sumin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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