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내 책 얼마나 팔렸나' 확인 시스템 놓고 정부·출판계 엇박자

중앙일보

입력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장이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도서판매정보 공유시스템'에 대해 설명했다. [연합뉴스]

윤철호 대한출판문화협회장이 30일 오후 서울 종로구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도서판매정보 공유시스템'에 대해 설명했다. [연합뉴스]

“출판사들이 판매 정보를 저자들과 공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했다. 저자들은 책의 그날그날 판매부수를 확인할 수 있게 된다.”
사단법인 대한출판문화협회(출협) 윤철호 회장은 ‘도서판매정보 공유시스템(공유시스템)’을 7월 1일부터 시범 운영하고, 8월에 정식으로 시작하겠다고 30일 밝혔다. 출판사가 출협의 공유시스템에 가입해 서점에게 받고 있는 판매 정보를 공유하면, 저자가 출판사로부터 공유시스템의 계정을 발급받아 자신의 책이 얼마나 팔렸는지 실시간 보게 된다는 원리다. 출협은 현재 총 3000여곳의 출판사가 소속돼 있다.

대한출판문화협회 "정부 전산망과 별도로 시스템 먼저 연다" 선언

출판사가 인세를 누락하는 사건이 최근 잇따르면서 만든 시스템이다. 윤 회장은 “개발 기간은 한 달. 예산은 1억원 이내”라고 설명했다. 소설가 장강명은 지난달 초 출판사 아작의 판매내역 보고와 인세 지급이 누락됐다고 주장했고, 출판사가 사과했다. 장강명은 출판사의 사과를 받아들이면서 페이스북에 “작가들은 자기 책이 얼마나 팔리는지 출판사에 의존하는 것 외에 알 방법이 없다”고 근본적 문제를 제기했다. 출협은 이날 자료에서 “공유시스템을 통하면 판매 정보뿐 아니라 재고 정보까지 공유할 수 있게 된다”고 했다.

문제는 이미 정부 차원에서 비슷한 시스템이 추진되고 있었다는 점이다. 장강명 또한 위의 페이스북 글에서 “출판사와 서점들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준비 중인 출판유통통합전산망에 가입하실 것을 촉구한다”고 썼다.

'출판유통통합전산망(전산망)'은 9월 오픈할 예정이다. 책의 생산ㆍ유통ㆍ판매 정보를 수집하는 예산 60억 원짜리 시스템이다. 문체부 산하 기관인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김진우 팀장은 “교보문고, 영풍문고, 예스24 등의 대형 유통사가 업데이트하는 판매 데이터를 자동으로 수집하는 방식이며 출판사는 1500여곳이 가입해있다”고 밝혔다.

책의 판매 현황을 수집ㆍ관리한다는 점에서 출협의 공유시스템, 정부 전산망의 목적은 동일하다. 진흥원의 김 팀장은 “진흥계획 수립부터 3년이 걸린 일”이라고 소개했다. 하지만 출협의 윤 회장은 “(전산망이 자리 잡기까지) 우리가 아무것도 안 하고 있을 수는 없다.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라며 공유시스템 출범을 강행했다. 같은 목적의 사업을 두고 정부와 민간이 엇박자를 내게 됐다.

출협의 주장은 크게 둘이다. 판매부수 수집을 정부가 강요해서는 안된다는 것과 저자가 직접 확인하는 기능이 강화돼야 한다는 점이다. 윤 회장은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을 제외하고는 서점과 출판계가 유통정보를 운영하는 것이 상식이자 통례”라며 “문체부 주도의 전산망 추진에 동의하기 힘들다”고 주장했다. 또 “우리의 시스템은 저자에게 판매 정보를 직접 제공한다. 문체부 전산망은 그렇지 않다”고 덧붙였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입장은 다르다. 판매 정보를 제공하는 데에 필요한 법제화 등은 정부 기관이 해결할 수 있는 차원이며, 저자에게 공개하는 시스템 역시 전산망에 추후 들어가게 된다는 주장이다. 진흥원 측은 “애초에 이 사업은 출판계의 요구로 만들어졌다. 유통 선진화에 같이 참여하고, 시스템 내에서 목소리를 내면 되는 일”이라고 했다.

하지만 출협 측은 “공유시스템으로 서점의 참여도에 따라 최소 70%에서 최대 95%까지는 단행본의 판매부수를 공개할 수 있다”며 "정부 전산망은 아직 보지 못했고 9월 오픈 전까지 협조는 불가능하다"고 했다. 윤 회장은 “필요한 경우 정부와 협력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나중에 두 시스템을 통합할 수도 있다”고 전제했지만 비슷한 두 시스템은 결국 한 달 차이로 각각 출범하게 됐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