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의 숨결’ 가장 오래된 한글 금속활자 600점 쏟아졌다

중앙일보

입력 2021.06.30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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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서울 인사동 땅속 항아리에서 나온 한글 금속활자 600여 점 중 일부. [사진 문화재청]

서울 인사동 땅속 항아리에서 나온 한글 금속활자 600여 점 중 일부. [사진 문화재청]

ㅱ, ㆆ, ㆅ …. 훈민정음 창제 초창기인 15세기에 중국 한자를 표준음에 가깝게 발음하기 위해 쓰인 한글 자음이다. 일명 동국정운식 표기 한글이다. 『동국정운』(1448·세종30)은 세종(재위 1418~1450)이 훈민정음에 반대하는 양반들을 설득하려고 본보기로 펴낸 책이다. 훈민정음을 본격 선보인 『석보상절』 『월인천강지곡』 등에도 이들 표기가 나타난다. 다만 그간 책으로만 전해져 왔다.

15세기만 쓰인 ㅱ 활자 등 첫 발견
세종 당시 추정 한문활자도 포함
인사동 땅속서 1600여 점 발굴

‘직지심체요절’은 인쇄본만 보존
서양보다 앞서는 실물 금속활자

세종 때 추정 천문시계 일성정시의
자동물시계 부속품 주전도 출토

15세기에 한정해 쓰인 동국정운식 한글 활자가 실물로 처음 발견됐다. 형태상 세조 즉위년(1455년)에 주조한 ‘을해자(乙亥字)’로 보인다. 이를 포함, 조선 전기 금속활자 1600여 점이 서울 인사동(공평동) 땅속 항아리 안에서 나왔다. 한자(1000여 점)와 한글(600여 점)의 다양한 형태·크기를 아우른다. 조선 세종 시기 과학기술의 성과인 물시계·천문시계 등 금속 유물도 무더기로 나왔다. 문화재청은 29일 수도문물연구원이 조사해 온 공평동 유적의 발굴 성과를 발표했다.

특히 금속활자 무더기 발굴은 조선 전기 인쇄·출판·서지학사를 다시 쓸 수 있는 중요 성과로 보인다. 자문에 참여한 백두현 경북대 교수(국문학)는 “세조가 아버지 뜻을 받들어 불경을 한글로 해석한 『능엄경언해』(1461)와 일치하는 활자들이 다수 나왔다”고 했다.

한문 금속활자 ‘갑인자’ 확인 땐 구텐베르크보다 앞서

서울 인사동(공평동) 땅속에서 출토된 조선 전기 금속활자 1600여 점이 29일 공개됐다. [연합뉴스]

서울 인사동(공평동) 땅속에서 출토된 조선 전기 금속활자 1600여 점이 29일 공개됐다. [연합뉴스]

이들 활자가 세조가 즉위한 해 만든 을해자(乙亥字)란 얘기다. 을해자는 현재 전해지는 가장 이른 시기의 조선 금속활자로 이전까진 국립중앙박물관(이하 중박)이 소장한 한글 30여 자뿐이었다. 크기가 모두 소자(小字)다. 이번엔 대자(大字), 중자(中字), 소자, 특소자까지 나왔다.

‘하며’ ‘하고’ 등 어조사 표기 때 쓴 연주활자(連鑄活字)도 10여 점 나왔다. 연주활자란 두 글자를 하나의 활자에 표기하는 것으로. 당시엔 한문 사이에 자주 쓰는 한글 토씨를 인쇄 편의상 한번에 주조했다. 16세기까지 쓰인 주격조사 ‘l(이)’ 활자도 처음 출토됐다. 훈민정음 창제 당시 표기 방식이 활자 실물로 대거 확인된 건 처음이다.

“기록으로 전해지던 과학 유물 실체 확인”

나아가 한문 금속활자 중 일부(현재까지 8점)가 세종 때(1434년) 만들어진 ‘갑인자(甲寅字)’일 가능성도 있다. 옥영정 한국학중앙연구원 고문헌관리학 교수는 “『자치통감』(1436년) 인쇄본과 상당히 유사하다”며 이들이 1434년 제작된 ‘초주갑인자’일 가능성을 제시했다. 을해자보다 21년 앞선, “가장 완벽한 형태로 칭송받는”(이승철 유네스코 국제기록유산센터 팀장) 갑인자 추정 활자의 첫 등장이다. 실제라면 세계 최초 금속활자 인쇄본(『직지심체요절』)을 가진 우리나라가 구텐베르크 성경(1455년)에 앞서는 확실한 실물 활자까지 갖게 된다. 특히 이 갑인자 추정 활자들은 현재 규장각에 소장된 미확인 활자 100여 점과도 유사해 관련 연구를 급진전시킬 수 있다.

신중론도 나온다. 금속활자 전문가인 이재정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은 “활자 형태만으로 예단하기 이르고, 향후 각종 인쇄본과 대조해 가며 치밀한 연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선 전기 금속활자 발굴

조선 전기 금속활자 발굴

앞서 전해진 조선 금속활자는 조선왕실에서 조선총독부를 거쳐 박물관과 규장각 등으로 나누어진 것들이다. 땅속에서 금속활자가 대거 출토된 것도 처음이다. 출토 지역은 현재의 종로2가 사거리의 북서쪽으로 지명상 인사동이다. 발굴을 담당한 오경택 수도문물연구원장은 “이 일대는 조선 한양도성의 중심부에 해당하는데 조선시대 유물이 떡시루처럼 층층이 쌓여 있다. 이 중 16세기에 해당하는 층위에서 유물들이 나왔다”고 했다. 금이 간 항아리가 발견돼 진흙을 걷어내니 금속활자와 다른 유물 파편이 쏟아졌다고 한다.

유물들은 물시계 부속품으로 추정되는 동제품, 천문시계 부품, 조선시대 화포인 총통(銃筒), 동종(銅鐘) 등 모두 금속제다. 특히 세종~중종 때 제작된 자동 물시계의 부속품 주전(籌箭)으로 보이는 동제품들이 잘게 잘린 상태로 나왔다. 1438년(세종 20년)에 제작된 흠경각 옥루이거나 1536년(중종 31년) 창덕궁의 새로 설치한 보루각의 자격루로 추정되는 유물이다.

15세기에 중국 한자를 표준음에 가깝게 표기하기 위해 쓰였던 동국정운식 한글 활자. 왼쪽부터 차례로 ㅱ, ㆆ, ㆅ 이 보인다. [사진 문화재청]

15세기에 중국 한자를 표준음에 가깝게 표기하기 위해 쓰였던 동국정운식 한글 활자. 왼쪽부터 차례로 ㅱ, ㆆ, ㆅ 이 보인다. [사진 문화재청]

천문시계인 ‘일성정시의’ 부품도 나왔다. 낮에는 해시계로 사용되고 밤에는 해를 이용할 수 없는 단점을 보완해 별자리를 이용해 시간을 가늠한 장치다. 1437년(세종 19년) 세종이 4개의 일성정시의를 만든 것으로 나오는데 이 중 하나로 보인다. 이용삼(천문우주학) 충북대 교수는 “기록으로만 전해온 조선시대 과학 유물의 실체를 확인하게 한 귀한 유물”이라고 감격했다.

이들은 모두 일반인이 접할 수 없는 궁궐·왕실에서나 소유·사용이 가능했던 것들이다. 그럼에도 출토된 곳은 관가 건물이 아니라 시전(市廛)과 관련된 중인들이 거주하던 건물로 보이는 점도 이채롭다. 유물 가운데 화포인 소승자총통은 제작연도가 1588년으로 확인된다. 이후 유물을 한꺼번에 묻은 것으로 보인다.

조선시대 유물 떡시루처럼 층층이

오경택 원장은 “발굴된 유물이 모두 일부러 조각낸 상태라서 나중에 ‘재료 재활용’을 염두에 둔 것 같다”면서 “아마도 임진왜란 등으로 피란을 가며 급하게 파묻었다가 되찾지 못한 게 아닌가 한다”고 말했다. 출토 유물들은 현재 1차 정리만 마친 상태로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이관해 보관 중이다. 문화재청은 “보존 처리와 분석 과정을 거쳐 분야별 연구가 진행된다면 조선시대 전기, 특히 세종 연간의 과학기술 이해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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