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 특수통 축출하자 공안통 떴다···편가르기 인사의 역설?

중앙일보

입력 2021.06.29 05:00

업데이트 2021.06.29 09:45

적(敵)의 적은 친구일까. 법무부가 지난 25일 단행한 역대 최대 규모의 검찰 고검검사(중간간부)급 인사에서는 공안부 출신 검사들의 이름이 요직에 다시 중용되는 현상이 벌어졌다. 법조계에선 “'네 편 아니면 내 편'이라는 식으로 정권 초반 국정농단·적폐수사 때 중용했던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비롯한 특수통을 몰아내는 과정에서 문재인 정부 출범 후 한직으로 밀려났던 공안 검사들이 반사 효과를 본 것 아니냐”는 반응이 나온다.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에 발탁된 정진우(49·사법연수원 29기) 의정부지검 차장검사가 대표적이다. 서울중앙지검 1차장검사는 현 정부 출범 전까진 검사장이 보임하던 전국 검찰청 최선임 차장검사다. 정 차장검사는 2013년 10월 ‘공안통’ 이정회 당시 수원지검 형사1부장이 윤석열 당시 여주지청장에 이어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팀장에 임명되면서 수사팀원으로 합류한 이력이 있다. 이후 2016년 1월엔 법무부 공안기획과장을 지냈다.

검찰 중간간부 인사에서 공안검사 출신으로 약진한 정진우 서울중앙지검 1차장(왼쪽부터), 진재선 3차장, 서인선 대검찰청 대변인 내정자. [중앙포토]

검찰 중간간부 인사에서 공안검사 출신으로 약진한 정진우 서울중앙지검 1차장(왼쪽부터), 진재선 3차장, 서인선 대검찰청 대변인 내정자. [중앙포토]

법무부는 지난 25일 역대 최대 규모의 중간간부(고검검사급) 승진·전보인사를 단행했다. 사진은 인사 당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의 모습. 뉴스1

법무부는 지난 25일 역대 최대 규모의 중간간부(고검검사급) 승진·전보인사를 단행했다. 사진은 인사 당일 서울 서초동 대검찰청의 모습. 뉴스1

서울중앙지검 공안수사(공공수사 1·2부)를 지휘하는 신임 3차장으로 승진한 진재선(47·연수원 30기) 서산지청장도 윤 전 총장의 국정원 댓글사건 수사팀 주임 검사 출신으로 중앙지검 공안2부장을 지냈다.

법무부 공안기획과장 출신으론 이번에 대검찰청 대변인으로 부임하는 서인선(47·31기) 서울북부지검 형사5부장이 있다. 서 부장검사는 2003년 여성으론 처음으로 공안부에 배치(서울지검 공안2부), 당시 ‘여성 1호 공안검사’란 수식어가 붙기도 했다. 최근에도 대전지검 공공수사부장, 서울북부지검에서 노동범죄를 전담하는 형사5부장으로 근무했다. 대검 정책기획과장으로 보임하는 권상대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장도 서 부장검사에 이어 법무부 공공형사과장(옛 공안기획과장)으로 일한 공안 검사다.

최근 공공수사·공공형사부 등으로 명칭을 바꾼 공안부는 특수부와 함께 검찰을 이끄는 엘리트 검사들의 양축으로 평가받았다. 이명박 정부 시절 한상대 검찰총장, 박근혜 정부 시절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 황교안 법무부 장관 등이 대표적인 공안통이었다. ‘특수통’ 김수남 전 검찰총장도 수원지검장 시절 공안 분야인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 수사를 지휘해 주목받기도 했다. 2013년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 수사, 채동욱 전 검찰총장의 혼외자 의혹 당시엔 특수부와 공안부 검사 사이 알력 다툼이나 갈등설이 불거지기도 했다.

2014년 11월 25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51회 국무회의에 앞서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왼쪽)과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은 대표적인 공안통 검사 출신이다. 청와대사진기자단

2014년 11월 25일 청와대에서 박근혜 대통령 주재로 열린 제51회 국무회의에 앞서 김기춘 대통령비서실장(왼쪽)과 황교안 법무부 장관이 얘기를 나누고 있다. 두 사람은 대표적인 공안통 검사 출신이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정부 출범 직후부터 분위기는 확연히 달라졌다. 소위 ‘잘 나가던’ 공안 검사들은 586(80년대 학번, 60년대생) 학생운동권이 권력을 잡은 현 정부에서 인사 때마다 고배를 마셨기 때문이다. 현재 전국 검사장 중 이수권(53·26기) 부산지검장, 배용원(53·27기) 서울북부지검장이 공안통으로 분류되는 정도다.

특수통인 윤석열 전 총장은 현 정부 출범과 함께 서울중앙지검장에 오른 뒤 주요 공안 수사를 지휘하는 당시 2차장검사에 특수부 후배 박찬호(55·26기) 광주지검장을 앉혔다. 정권 교체의 기폭제가 됐던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특검 수사팀에 파견됐던 특수부 출신 수사 검사들도 대거 요직에 진출했다.

그러나 이들도 2019년 청와대의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 수사와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 이후 현 여권의 눈 밖에 나면서 이후 인사에서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한동훈(48·27기) 사법연수원 부원장은 2년째 법무연수원에 이어 사법연수원이란 검사·판사 교육기관에서 사실상 유배생활을 하고 있고, 지난해 ‘상갓집 파동’으로 좌천된 양석조(28·29기) 대전고검 검사는 이번 인사에서도 대전고검 인권보호관으로 잔류하며 지방 고검에서만 만 2년을 채우게 됐다.

2019년 9월 25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인천 영종도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서 열린 제29차 마약류퇴치국제협력회의에 참석해 개회식을 마친 후 이동하고 있다. 오른쪽은 조국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를 총괄한 한동훈 당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뉴스1

2019년 9월 25일 윤석열 당시 검찰총장이 인천 영종도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서 열린 제29차 마약류퇴치국제협력회의에 참석해 개회식을 마친 후 이동하고 있다. 오른쪽은 조국 법무부 장관 일가 수사를 총괄한 한동훈 당시 대검 반부패강력부장. 뉴스1

윤 전 총장이 검찰총장에 취임한 직후 서울중앙지검 1, 2, 3, 4차장검사였다가 지난해 1월 일제히 지방으로 보내졌던 신자용(49·28기) 부산동부지청장, 신봉수(51·29기) 평택지청장, 송경호(51·29기) 여주지청장, 한석리(52·28기) 대구서부지청장도 각각 서울고검 송무부장, 서울고검 검사, 수원고검 검사, 법무연수원 총괄교수 등으로 전보됐다.

국정농단 특검 파견 검사들의 운명은 엇갈렸다. 31기에선 고형곤(51) 대구지검 반부패수사부장, 김태은(49) 대구지검 형사1부장, 김창진(46) 부산동부지청 형사1부장이 각각 포항지청장, 경주지청장, 진주지청장 등으로 다시 지방을 떠돌게 됐다.

다만, 32기에선 박주성(43) 제주지검 형사2부장, 김영철(48) 서울중앙지검 특별공판2팀장, 이복현(49) 대전지검 형사3부장, 조상원(48) 서울중앙지검 형사12부장, 배문기(48) 청주지검 형사2부장이 각각 대검 법과학분석과장, 서울중앙지검 공판5부장, 서울북부지검 형사2부장, 금융부실책임조사본부 파견, 인천지검 형사1부장 등으로 수도권에 남거나 복귀했다. 막내급이었던 문지석(44·36기) 서울서부지검 검사는 부부장으로 승진했다.

한 검찰 관계자는 “수십 년간 쌓은 경력과 능력에 따른 인사가 아니라 ‘편 가르기’ 인사를 거듭하다보니 나타나는 기현상”이라고 분석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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