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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베트남 자유시장 한국상품들 "즐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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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호치민·하노이의 길거리에서는 높이 15∼20cm 정도의 낮고 작은 나무조각에 걸터앉아 식사할 수 있는 노점식당들이 많다.
이 노점식당에서 파는 음식은 주로 「퍼」라는 베트남식 국수다.
「퍼」의 가격을 통해 이곳 대중음식 가격 수준이 어느 정도 되는지 대충 알 수 있다.
시클로를 타고 가다 하노이시 항 가이가에 있는 한 노점식당을 찾아들었다.
40대의 아주머니가 커다란 바구니에 국수·당면 등을 담고 있고 그 옆에는 오리고기를 넣어 끓이는 큰 국솥이 놓여있다.
즉석에서 「퍼」를 만들어 주는데 「라우 팜」이라는 냄새나는 풀을 한 움큼 집어넣는다.
이 풀은 베트남 음식에는 어디에나 들어가는 「감초」같은 것인데 한국인들 입맛에는 그다지 맞는 것 같지 않다.
이 「퍼」는 한 그릇에 1천5백동이다. 베트남 사람들은 쌀밥 다음으로 「퍼」를 즐겨 먹는데 대중음식으로 친다면 우리나라의 자장면 정도가 될 것 같다.
1천5백동이라면 1달러를 평균 4천동으로 잡아 약 0.38달러밖에 안 된다.
자장면은 한 그릇에 1천원으로 쳐 달러로 환산하면 1.47달러정도 된다.
베트남과 우리나라 대중음식 가격수준을 비교해 보기 위해 「퍼」와 자장면 값을 따져보면 「퍼」가 자장면보다 4분의1정도나 싼 것을 알 수 있다.
이번엔 베트남사람들의 주식인 쌀의 시장가격을 비교해보자.
베트남은 현재 쌀수급의 완전 자급자족을 달성치 못하고 있으면서도 부족한 외화를 벌어들이기 위해 쌀의 수출상품화를 추진 중에 있다.
따라서 베트남 국내시장에서의 쌀값은 자연히 뛰게 마련이다.
베트남에서 최상품으로 치는 냄새 좋은 흰쌀의 경우 1kg에 1천∼1천1백동 정도니 달러로 환산해 약0.25달러인 셈이다.

<배급과 시장 공존>
우리나라에서도 쌀은 주식인데 서울지방의 평균가격이 현재 일반미 80kg 가마당 9만원으로 잡을 수 있다.
그렇게 치면 kg당 1천1백25원이 되며 달러로는 1.65달러 가량 된다.
베트남 쌀값과 비교해 보면 베트남 쌀이 약 7분의1 정도나 싸다고 추정할 수 있다.
여기서 한가지 밝혀둘 것이 있다.
「퍼」나 쌀의 가격, 그리고 앞으로 언급될 제품가격들은 거의 전부 「자유시장」에서의 가격이라는 점이다.
베트남은 사회주의국가이므로 중앙정부가 「계획」에 따라 물자를 배분하는 「배급가격」 이라는 또 다른 가격이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베트남에는 현재 사회주의경제·자유주의 경제라는 두 가지의 경제가 혼재하고 있는 것이다.
한가지 예를 들어보자.
현재 호치민시 고급공무원의 봉급은 한 달에 5만∼6만동(12.5∼15달러) 수준이다.
하지만 르 로이가에 있는 벤탄 시장에서는 립스틱이 한 개에 1만7천동(4.25달러)씩에 팔리고 있었다.
자본주의 경제의 단순산술로 보면 공무원 한 달 봉급이 립스틱 4개분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베트남에서의 「실상」은 이 같은 단순산술로는 설명될 수 없다.
공무원은 국영기업노동자·군인·재해지역주민 등과 같이 「국가가 의무를 지고 있는 부문」, 즉 「사회주의 경제」의 영역에 속해있다.
따라서 5만∼6만동의 월급을 갖고도 생필품들을 「자유시장」보다 낮은 가격(8분의1∼10분의1정도)으로 「배급시장」에서 구입할 수 있는 것이다.
그 반면 립스틱은 「자유시장」의 영역에 속해있다.
이곳에서는 그러므로 임금수준·가격수준의 단순 상대비교만 갖고는 생활수준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분간하기 어렵다.


중요한 것은 그 사람이 얼마나 돈을 버는가가 아니라 그 사람의 실제 구매력이 얼마나 되는 가인 것이다.
이같이 두개의 경제가 혼재하는 현상은 개혁·개방을 추진중인 대부분의 사회주의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이들 나라에서는 「계획」경제의 본질인데 이를 뒷받침 해줄만한 생산력이 아직 낮은 수준에 있기 때문에 공급부문에서 애로가 생기고 이를 보전하기 위해 자유시장경제를 일부 도입한다는 것이 개혁·개방의 주내용이기 때문이다.
어쨌든 한쪽 측면 만이긴 하지만 「자유시장」의 가격수준을 알아보는 것은 베트남의 인플레문제, 외국제품의 가격경쟁력 문제를 이해하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호치민시에서 대표적인 자유시장인 벤탄시장의 상점들은 이리저리 몰려다니는 사람물결 때문에 걷기도 어려울 지경이다.
많은 사람이 모여드는 곳은 의류점과 포목점.
이곳에서 팔리고 있는 남자용 T셔츠의 경우 2천5백∼4천5백동 수준이다.
달러로 치면 0.7∼1.1달러정도지만 우리나라 남대문시장에서 파는 2천원(약3달러) 짜리 T셔츠에 비해 질도 그리 좋아 보이지 않는다..
포목점에서 팔고 있는 중급정도의 옷감 1m가 4천동(1달러), 호치민 제품 여성용구두 1켤레 1만5천동(3.75달러), 미국수입 매니큐어 1만3천동(3.2달러), 태국수입 어린이용가방 1만8천동(4.5달러) 수준이었다.

<암거래 번창일로>
함니가에는 도깨비시장이 있는데 베트남의 개방화와 함께 번창일로에 있는 암시장이다.
이 암시장의 한 상점에서 양담배 암거래 광경을 보게되었다.
10대 소년 둘이 상점에 들어와 보따리에서 영국제 「555」담배를 쏟아놓는다.
한 소년에게 얼마냐고 물으니 4천동을 내라고 한다.
마침 동을 가진 게 없어 1달러를 주었더니 상점주인과 소년이 서로 옥신각신하는데 상점주인이 동을 줄테니 달러를 팔라는 것이다.
결국 소년은 달러를 움켜쥐고 달아났는데 그 이유가 있었다.
달러당 공정환율이 약 4천동 정도지만 폭등하는 인플레 때문에 동의 구매력이 떨어져 있고 암시장에서의 달러구매력은 높아져 1달러에 5천동 수준이라는 것이다.
암거래한 양담배의 경우 소년이 상점주인에게 판 가격은 3천동이지만 상점주인은 3천5백동에 다시 내다 판다고 한다.
하노이시에서는 돈 수안시장이 가장 큰 자유시장이다.
이곳에서는 좌판 노점상이 우리나라산 고려인삼차를 팔고 있었는데 2g 10개들이 한 박스가 9천동(약2.2달러)이었다.
제2의 자유시장인 항다시장에서는 우리나라 쇠고기맛 라면도 팔리고 있었는데 가격은 1천5백동(0.38달러=약2백58원)으로 국내가격보다 좀 비쌌다.
코카콜라는 캔 하나에 2천7백동(0.7달러=약4백50원)이었으며 시바스리걸 8만6천동(21.5달러), 나폴레옹코냑 6만동(15달러)등의 양주들도 진열해놓고 팔았다. 「12월19일」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자유시장에서는 개고기도 팔고 있었는데 1kg에 6천5백동(1.6달러=약1천1백원) 이었으며 우리나라 두부와 같은 터푸는 2개에 5백동(0.12달러=약85원)에 팔고 있었다.
전자제품의 가격은 좀 비싸다.
일제 내셔널 컬러TV 21인치 짜리는 2백70만동(6백75달러), 소니라디오카세트 36만동(90달러), 내셔널 투도어 냉장고 1백60만동(4백달러) 수준이었는데 진열장에는 어디나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이 같은 가격수준은 우리나라에 비하면 매우 낮은 것이지만 베트남으로서는 폭발적인 인플레상태 하에 있는 것이다.
IMF(국제통화기금)의 베트남경제보고서에 따르면 베트남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85년 91.6%, 86년 4백87.2%, 87년 3백1.3%로 폭등해 왔으며 지난해에도 약 4백%에 달하는 인플레를 기록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SEPZONE은 베트남당국이 호치민시 외곽에 건설키로 한 사이공 수출자유지역이다.
베트남이 외국인의 투자를 유치, 수출지향적 경제발전을 꾀하기 위해 지난 7월4일 각료평의회 6백95호로 결정된 이 SEPZONE은 중국의 심천경제특구를 모델로 한 것으로 오는 92년까지 건설공정의 50%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이라 한다.
SEPZONE의 구엔 레투안 사장은 『공해산업은 이 SEPZONE에 입주할 수 없다. 우리로서는 특히 노동집약적이거나 부가가치가 높은 분야의 생산업체들이 입주해주길 바란다. 이곳의 입주임대료는 아직 결정되지 않았지만 비교적 낮은 수준에서 결정될 것이다. 참고로 베트남에서의 평균 임대료수준은 토지의 경우 1평방m당 연3달러이며 건물은 월2∼3달러 수준이다. 또 공장건설비용은 평방m당 1백20달러, 사무실의 경우는 1백80달러가 든다. 이 SEPZONE에 입주한 경우 계약기간은 30년이며 매년 물가상승률을 고려해 계약을 경신할 수 있다』고 밝혔다.
또 그는 베트남의 동력사정에 대해서는 『현재로서는 충분한 전력이 공급되지 못하고 있으나 이 SEPZONE에 입주하는 외국기업들에 우선 순위로 전력을 공급해줄 보장도 있다. 전기료는 1kw에 시간당 4센트 정도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박영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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