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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포]북한산 떠돌던 양순이, 견생역전 만든 '기적의 카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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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지난 26일 서울시 동대문구 제기동 발라당 입양카페에서 '뉘리 엄마', '숑숑이 엄마'가 된 이선아씨(왼쪽)와 임현주씨가 각자 입양한 유기견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발라당 입양카페]

지난 26일 서울시 동대문구 제기동 발라당 입양카페에서 '뉘리 엄마', '숑숑이 엄마'가 된 이선아씨(왼쪽)와 임현주씨가 각자 입양한 유기견들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발라당 입양카페]

“아직은 식구가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산책할 땐 줄을 짧게 잡고, 차에서 문을 열 때도 꼭 줄을 잡는 게 좋습니다.”

서울 첫 ‘유기동물 입양카페’ 가보니 #안락사 직전까지 갔다 새 가족 만나 #13마리 입양시켜…40마리 보호 중 #“여러 번 찾아와 만나니 마음 열려”

지난 26일 오후 4시 서울 동대문구 제기동의 한 건물 5층. 믹스견 ‘뉘리’를 입양하는 이선아씨에게 동물단체 자원봉사자가 당부했다. 털 색깔이 누리끼리하다고 뉘리라는 이름이 붙은 개는 지난 4월 경기도 포천에서 포획돼 안락사 직전까지 갔다가 이날 새 주인을 만났다. 뉘리는 다소 긴장된 반응을 보이다 이내 새 주인의 품에 살포시 안겼다.

66㎡ 남짓한 공간에서 유기견 10여 마리가 뛰노는 시설은 지난 4월 ‘발라당 입양카페’라는 간판을 달고 문을 열었다. 휴업 중인애견카페가 서울시의 첫 유기동물 입양 카페로 변신했다. 서울시는 민간 동물단체 ‘동물과 함께 행복한 세상’과 협약을 맺고 올 연말까지 시범적으로 도심 속 유기견 입양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시민과 유기동물 간 접점을 최대한 늘려주는 게 목표다.

4월 문 열어 13마리 입양 보내

지난 26일 서울시 동대문구 제기동 발라당 입양카페에서 '뉘리 엄마' 이선아씨(오른쪽)와 '숑숑이 엄마' 임현주씨(왼쪽)가 유기견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 발라당 입양카페]

지난 26일 서울시 동대문구 제기동 발라당 입양카페에서 '뉘리 엄마' 이선아씨(오른쪽)와 '숑숑이 엄마' 임현주씨(왼쪽)가 유기견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다. [사진 발라당 입양카페]

이날은 외부 방문객과 반려견을 데려온 동네 주민 등 10여 명이 유기견들과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비숑 종인 ‘숑숑이’ 역시 이날 입양됐다. 숑숑이 엄마가 된임현주씨는4년 동안 키운 푸들을 부모님 댁에 보내고 숑숑이를 입양하기로 했다. 임씨는 “인스타그램에서 유기견 정보를 찾다 숑숑이 사진을 보고 전화 상담을 받은 뒤 직접 오게 됐다”고 말했다. 유기견 임시보호 경험이 있는 임씨는 “처음에는 모습도 꾀죄죄하고 구석에만 있던 애들이 진심으로 사랑을 주니 예뻐지고 마음을 열더라”고 전했다.

4월 중순 문을 연 이곳에서는 두 달여 동안 13마리의 유기견이 입양됐다. 최미금 동물과 함께 행복한 세상 이사는 “서울시 유기 동물을 위탁 보호하는 경기도 양주시 동물구조관리협회에서 구조한 유기견이나 유기묘(猫)를 데려와 지정 동물병원에 일주일에서 한 달가량 입원시켜 치료한다”며 “그 뒤 소형견은 발라당 카페에서, 대형견이나 특별 관리가 필요한 유기 동물은 단체 자체 보호소에서 돌본다”고 설명했다. 현재 보호하고 있는 유기 동물은 40여 마리로 연말까지 150마리를 데려와 입양 보낼 계획이다.

북한산 떠돌던 ‘양순이’는 귀한 막내딸로

북한산 들개처럼 자라던 유기견도 이곳에서 새 주인을 찾았다. 석 달 전 북한산 향로봉에서 발견돼 안락사를 기다리던 믹스견 ‘양순이’다. 양순이는 지난 6일 아들 셋을 둔 최수원씨에게 입양돼 이 집 막내딸이 됐다. 최 이사는 “양순이가 카페에 올 때 1㎏대였는데 입양 때는 10㎏였다”며 “가족들이 양순이에게 정을 많이 줘 잘 적응하고 있더라”고 뿌듯해했다.

서울 북한산에서 포획된 '양순이'를 입양한 최수원씨 가족. 최씨 가족은 양순이를 막내딸처럼 여긴다며 발라당 입양카페에 자주 소식을 전하고 있다. [사진 발라당 입양카페]

서울 북한산에서 포획된 '양순이'를 입양한 최수원씨 가족. 최씨 가족은 양순이를 막내딸처럼 여긴다며 발라당 입양카페에 자주 소식을 전하고 있다. [사진 발라당 입양카페]

‘뉘리 엄마’ 이씨는 입양을 결정하기 전 여러 번 카페를 찾아 뉘리와 많은 시간을 보냈다. 이씨는 “동물 관련 TV 프로그램을 자주 보면서 반려견에 관심을 두게 됐다”며 “사실 처음에는 한 번 마음의 상처를 입은 유기견을 잘 키울 수 있을까 겁도 났지만 그윽하게 쳐다보는 뉘리 눈빛에 나도 모르게 마음을 열었다”고 말했다. 최 이사는 “많은 유기견이 오히려 두 번째 주인과 애착 관계가 강화돼 잘 적응한다”며 “유기견 입양에 대한 편견을 버려달라”고 했다.

“책임감 없는 유기견 선물? 파양 지름길”

발라당 카페는 유기견 한 마리를 입양 보내기 위해 10명 정도의 신청자를 상담한다. 입양을 보내기 전 최종적으로 집 내부와 강아지 용품 준비 현황 등을 사진으로 확인하고, 입양 후에는 두 달 정도 집중 모니터링을 한다. 최 이사는 “부모님이나 자녀에게 선물하고 싶다는 상담이 많은데 대변 처리, 산책 같은 관리를 제대로 못 하면 파양(罷養)으로 가게 된다”며 “자식처럼 키운다는 책임감을 갖고 데려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아이와 함께 유기견을 보러 온 시민 등 30여 명이 발라당 카페를 찾았다. 전화 상담도 꾸준히 오는 편이다. 발라당 입양카페는 주로 SNS(http://instagram.com/bal_radang)로 유기견 구조와 입양 소식을 알린다. 평일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운영하며 월요일과 공휴일에는 쉰다. 매월 셋째 주 토요일에는 바자회와 산책 행사 등으로 구성된 소규모 입양 파티도 연다.

최은경 기자 choi.eunk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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