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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송합니다’ 줄어드는 문과 공채…“지금이라도 코딩할까”

중앙일보

입력

“기다렸던 채용 공고였는데 사실상 문과생은 안 뽑겠다는 내용이더라. 하반기에 희망을 걸고 있는데 어떨지 모르겠다.”

서울 서대문구의 한 대학에 다니는 A(27)씨는 상반기 채용 공고들을 확인하며 답답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경영학 복수전공을 장점으로 삼아 금융권 취업을 준비하는 그는 지난 17일 지원서를 마감한 한 시중은행에는 자기소개서조차 내지 못했다.

은행 채용 공고. [홈페이지 캡쳐]

은행 채용 공고. [홈페이지 캡쳐]

그 은행은 IT와 데이터 부문에서만 신입 행원을 모집했기 때문이다. 다른 두 직군은 온라인 코딩테스트를 보고 사실상 관련 전공자가 아니면 지원이 어려웠다. 문과에서 지원 가능한 경영관리 전문가의 경우 경력직만 모집했다.

“‘문송하다’는 현실이었다”

다른 은행들의 상황도 비슷하다. IT 디지털 인력 채용은 이전보다 늘리고, 디지털 ICT 분야에 한정해 채용을 진행한 곳도 있다. 카카오뱅크, 토스뱅크 등 인터넷전문은행들이 주목받고 시중 은행은 매년 점포와 대면 인력을 줄여가는 추세인 것도 인문계 졸업생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A씨는 “‘문송하다(문과여서 죄송하다)’는 상투적인 말이 내 현실이 됐다”고 했다.

금융권이 아닌 기업들도 인문계 취업준비생들에게는 ‘좁은 문’이다. 코로나19 로 경기가 어려워 고용 상황이 이전보다 얼어붙어 문과생들이 기업 공개채용에 성공하기가 어렵다는 호소가 나온다.

500대 기업 2분기 채용 동향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고용정보원]

500대 기업 2분기 채용 동향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고용정보원]

한국고용정보원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채용 계획이 있는 매출 상위 500대 기업 중 신입사원을 뽑는 곳은 62.4%다. 이중 신입 공채는 39.1%였다. 2019년 현대차와 LG는 정기공채를 폐지했고, 롯데그룹은 올해 수시채용으로 전환했다.

“문과 취업문 상대적으로 더 좁아져” 

서울의 한 대학 취업·진로 업무 담당자는 “공개채용에서 수시채용으로 바뀌는 과도기로 문과 학생들의 취업이 상대적으로 더 좁아지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23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용인미르스타디움에서 열린 '2021 상반기 용인시 일자리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취업상담을 받고 있다. [뉴스1]

23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용인미르스타디움에서 열린 '2021 상반기 용인시 일자리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취업상담을 받고 있다. [뉴스1]

김영달 건국대 취업지원센터장은 “재작년과 작년 모두 이공계 위주 채용이 이뤄졌다. 정부 인력양성 및 투자가 IT 등 이공계에 몰리고 인력 수요 자체도 훨씬 많다”면서 “인문계 학생들은 재학 중 복수전공이나 인턴십 등 다양한 경험을 하도록 지원하고, 인문대나 상경 전공 하나를 한다면 나머지는 다른 걸 하도록 유도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코딩 배울까’…정부 “25년까지 41만명 양성” 

인문계 취업준비생들 사이에선 “지금이라도 코딩을 배워야 하나”는 고민이 크다. 김 센터장은 “IT에 관심 있는 미취업자들은 코딩, AI 엔지니어링 등 정부지원 양성사업에 연결해주고 있다. 본인이 무엇을 하고 싶은지 알고 찾아가는 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했다.

[사진 코드스테이츠]

[사진 코드스테이츠]

코딩교육기관을 찾는 비전공자들은 늘어나고 관련 시장은 커지는 추세다. 지난 9일 홍남기 부총리 등이 방문한 비전공 청년 대상 코딩 교육기관인 ‘코드스테이츠’는 누적 수강생 규모가 2020년 연말 기준으로 전년 대비 5배가 늘었고 매출은 두 배가 늘었다고 한다. 2016년 이후 약 2000명의 학생이 프로그램을 활용했다. 수강생의 지방 거주 비율도 88%다.

이외에도 ‘패스트캠퍼스’ 등 다양한 코딩교육 기관들이 프로그램을 내놓고 있다. 정부는 지난 9일 2025년까지 소프트웨어(SW) 인재 41만3000명을 양성하는 인재 양성 계획을 발표했다.

“연봉 2000만원 시작이 현실, 무턱대고 진입하면 후회”  

23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용인미르스타디움에서 열린 '2021 상반기 용인시 일자리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취업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23일 오후 경기도 용인시 처인구 용인미르스타디움에서 열린 '2021 상반기 용인시 일자리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취업정보를 살펴보고 있다. [뉴스1]

하지만, 섣불리 진로 계획을 바꾸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는 문과 출신 IT 실무자들의 지적도 있다. 서울의 한 대학에서 행정학을 전공한 뒤 국비 지원 교육을 거쳐 6년 차 개발자가 된 B(34)씨는 “초봉 6000만원이 넘는 ‘네카라쿠배’(네이버·카카오·라인·쿠팡·배달의민족) 개발자들은 대부분 최상위권 대학 컴퓨터 공학과 출신으로 일부에 불과하다. 대부분 연봉 2000만 원대에서 시작하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비전공자는 이전에 무엇을 했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출발선에서는 고졸이나 다름없다. 더 많이 공부해야 하고 내가 얼마나 이 업계에 관심과 열정이 있느냐가 중요하다. 장밋빛 미래라고 여겨 무턱대고 진입하면 후회한다”고 조언했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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