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토양에 부족한 셀레늄, 이것으로 채워요

중앙일보

입력 2021.06.24 19:22

업데이트 2021.06.25 12:40

‘숲의 천장’이라 불리는 나무가 있다. 브라질 아마존강 유역에서 자라는데 높이가 무려 40~60m, 직경은 1~3m에 달한다. 이 나무는 최소 40년 이상 자라야 열매를 맺는다. 불혹을 넘어 결실을 맺는 것이 인간의 삶과 닮은 듯하지만 사실 이 나무는 무려 500년에서 1000년을 산다. 인간의 이해 너머에 있는 자연의 삶이다. 비와 더위를 이겨내고, 해충을 물리치는 고된 작업을 40년이나 한 후에야 만들어지는 열매는 대체 얼마나 귀할까.

브라질너트에는 인체 방어 물질이라고 불리는 셀레늄이 풍부하다. 하지만 하루 4알 이상 먹으면 셀레늄 독성으로 복통, 설사 등을 일으킬 수 있다. [사진 픽사베이]

브라질너트에는 인체 방어 물질이라고 불리는 셀레늄이 풍부하다. 하지만 하루 4알 이상 먹으면 셀레늄 독성으로 복통, 설사 등을 일으킬 수 있다. [사진 픽사베이]

나무의 열매는 오리코(ourico)라고 한다. 오리코는 450여 일간 나무에 달려있다 떨어진다. 단단한 껍질에 둘러싸여 있어 땅에 떨어져도 짐승이 쉽게 열지 못한다고 한다. 또 인위적인 재배나 경작도 어렵다. 인간이든 동물이든 자연의 선물을 그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이 나무는 베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아마존 원주민들은 수백 년 전부터 이 귀한 자연의 선물을 먹어왔다고 한다. 그리고 최근에는 아마존에서 약 18000㎞나 떨어져 있는 우리도 이 열매를 구할 수 있게 됐다. 바로 '브라질너트'이다. 그런데, 내가 브라질너트에 관심을 가진 이유는 따로 있다. 1000년을 산다는 나무의 특별함도, 재배할 수 없어 더 귀하다는 희귀성도 아니다. 원자번호 34번의 원소인 셀레늄(selenium, Se) 때문이다. 아니 정확히는 셀레늄 때문도 아니다.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진료를 시작하면서 거의 매일 만나게 되는 감기나 구내염, 포진 등으로 병원을 찾는 환자들 때문이었다.

감기나 구내염, 포진 같은 질환은 스트레스가 많거나 피곤할 때면 어김없이 찾아온다. 인체의 방어력, 즉 면역력이 떨어지면 바이러스나 세균으로 인한 질환이 생기기 쉽기 때문이다. 감기나 몸살도 괴롭지만, 대상포진의 고통은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다. 상대적으로 덜 심각한 구내염이나 입술 포진도 고달프긴 마찬가지다. 한 번 생기면 밥을 먹기가 어렵고, 재발도 잦다. 이들 질환의 공통점은 치료를 미루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감기나 구내염은 약을 먹으면 불편함을 줄이거나 경과를 단축할 수 있다. 포진은 약을 쓰지 않으면 합병증을 초래할 수 있으니 신속히 의원을 찾아야 한다. 처방 약을 먹으면 질환으로 인한 합병증을 막을 수 있고 점차 증세가 호전된다.
하지만 매일 출근을 하고, 아이를 돌보는 바쁜 현대인들에게는 약을 먹으며 낫기를 기다리는 시간이 너무 길게 느껴진다. 며칠 끙끙 앓으며 푹 쉴 수 있는 시간을 갖는 것조차 사치일 수 있으니 더 빨리 나을 방법을 고민하게 된다. 이런 환자들을 보며 나 역시 경과를 조금이라도 단축할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다 찾은 게 바로 ‘셀레늄’이었다. 감기나 구내염 환자, 또는 포진 환자들에게 셀레늄이 들어있는 영양제나 주사를 추가로 처방하니 회복이 좀 더 빠르고, 환자들의 만족도가 높았기 때문이다.

브라질너트. 40~60m까지 자란다. [사진=픽사베이]

브라질너트. 40~60m까지 자란다. [사진=픽사베이]

셀레늄이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1957년의 일이다. 미국 국립암연구소의 K.슈바르츠 박사가 ‘쥐를 대상으로 한 간경화 방지를 위한 실험’에서 셀레늄이 사람과 동물의 성장과 번식에 필수 영양소라는 사실을 밝혀내면서부터다. 그전까지는 유해 미량원소 정도로 취급됐던 셀레늄이 슈바르츠 박사의 실험을 통해 재조명되었다.
셀레늄은 항염, 항암 효능이 있다. 셀레늄의 항산화 작용은 세포막을 손상하는 활성산소를 제거해 신체 조직의 노화와 변성을 막아 주거나, 그 속도를 지연시키는 데 도움을 주며, 인체의 면역 기능을 증진하여 암, 간 질환, 신장병, 관절염 등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 사용된다. 또한 해독 기능도 있어 중금속 해독 용도로 사용하기도 한다.

2015년 발행된 미국 영양학회지의 한 연구결과에 따르면, 셀레늄이 부족하면 바이러스나 세균의 감염 위험이 더 높은 것으로 밝혀졌다. 감염됐을 때 셀레늄을 보충 요법으로 사용하는 것이 도움된다고 보고하고 있다. 2021년 호주의 한 저널에서도 비슷한 연구결과를 발표했는데, 셀레늄 결핍은 세포와 조직에 대한 산화 스트레스와 관련된 질병을 악화시킨다는 내용이다. 반면 셀레늄을 충분히 보충하면 바이러스 감염에 대한 면역력이 향상되고 항산화 방어력이 증가한다고 보고하였다.

실제로 인체의 방어 물질이라고 할 수 있는 셀레늄이 결핍되면 활성 산소의 피해를 받아 내장 기능이 저하될 수 있으며, 근육통이나 심장질환의 일종인 심근증 등이 나타날 수 있다. 임신 말기에 셀레늄이 결핍되면 유산, 조산, 사산의 우려가 있다. 신생아는 셀레늄을 모체에서 공급받지 못하면 성장과 발달에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 한국인은 특히 서양인보다 셀레늄 섭취량이 부족하다. 한반도의 토양에 셀레늄 함량이 적기 때문에 식물을 통한 섭취가 미미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셀레늄을 보충하기 위해 약을 먹거나 주사를 맞는 방법밖에 없을까? 음식으로 섭취할 수는 없을까? 이런 의문으로 셀레늄이 함유된 음식을 찾다가 만난 것이 바로 브라질너트였다. 셀레늄은 동물의 간(肝)과 육류, 생선, 곡류, 달걀 등에도 들어있지만, 그 함량이 가장 많은 식품 1위는 단연 브라질너트다. 미국 농무부(USDA)에서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음식 100g당 셀레늄 함량은 굴이 77㎍(마이크로그램), 참치 90.6㎍, 브라질너트가 무려 1817㎍인 것으로 나타났다.

먹는 방법은 다른 견과류와 마찬가지로 생으로 씹어 먹거나 잘게 부숴서 샐러드나 요거트에 뿌려 먹으면 된다. 브라질너트에는 셀레늄뿐만 아니라 식이섬유도 풍부해 변비 예방에 좋다. 비타민B와 C가 들어있어 시력 회복, 피부 개선, 면역력 강화, 염증 완화에도 도움을 준다.

다른 견과류와 다른 점이 있다면 심심풀이 땅콩처럼 자주 먹거나 한 줌씩 먹어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세계보건기구가 정한 셀레늄의 하루 섭취 권장량은 성인 기준으로 50~200㎍이다. 브라질너트 한 알(4g)에는 무려 약 76.68㎍의 셀레늄이 들어있다. 한두 알만 먹어도 하루 권장량에 해당한다. 너무 많이 섭취할 경우 독성이 나타날 수 있다. 셀레늄 독성의 가장 흔한 증상은 머리카락과 손톱이 부스러지거나 복통, 설사, 구토 등 위장 장애, 피부 발진, 피로감, 탈모, 정신 불안 등의 신경계 증상이다. 또한 브라질너트는 칼로리가 높은 편이라 과량복용 시 다이어트에는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하루 4알 이상은 먹지 않는 것이 좋다.

윤수정
가정의학과 전문의로 환자들의 주치의이자 멘토 역할을 하고 있다. 주 관심사가 건강이다 보니 건강한 음식과 식이요법에 대해 끊임없이 연구하고 있다. 압구정로데오에서 SR의원을 운영중이며 고려대학교 의료원 가정의학과 외래 교수로 재직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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