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차별금지법 어떻길래···이재명 "尹대답 먼저" 이준석 "이르다"

중앙일보

입력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지난달 31일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 권인숙 의원, 정의당 장혜영 의원과 공동으로 ‘차별금지법과 평등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31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고 있다. 오종택 기자

차별금지법제정연대는 지난달 31일 더불어민주당 이상민 의원, 권인숙 의원, 정의당 장혜영 의원과 공동으로 ‘차별금지법과 평등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31일 국회 본청 앞 계단에서 열고 있다. 오종택 기자

차별금지법을 둘러싼 국회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차별금지법 제정에 관한 청원’이 14일 국회 소관위원회 회부 기준인 10만명 동의를 채운 데 이어, 16일엔 이상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유사한 내용의 ‘평등에 관한 법률’(평등법) 제정안을 발의했다. 평등법 발의엔 이 법을 심사하는 국회 법사위의 여당 간사 박주민 의원을 포함한 범여권 의원 24명(민주당 23명, 열린민주당 1명)이 동참했다.

여권의 일부 대선 후보들도 차별금지법 제정 논의에 힘을 싣고 있다. 평등법 공동 발의자인 민주당 박용진 의원은 16일 법안 발의 기자회견에서 “마침내 오늘이 왔구나, 이런 생각”이라며 “새로운 대한민국으로 가기 위해서는 어려움이 있더라도 가야 된다”고 말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도 17일 “차별과 배제를 이대로 두고서는 더 좋은 세상, 인권 선진국으로 한 걸음도 나아갈 수 없다. 민주당은 이번에 발의된 법안을 당론으로 채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5년 된 묵은 법안…이번엔 다르다?

차별금지법이 처음 국회에 제출된 건 노무현 정부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국가인권위 권고에 따라 정부 입법으로 2007년 12월에 국회에 제출된 게 차별금지법의 시작이었다. 이후 17~20대 국회에서 차별금지법은 의원 입법으로 수차례 발의됐지만, 단 한 차례도 심사되지 않은 채 모두 폐기됐다. “성적지향, 성별 정체성에 따라 차별하지 아니한다”는 내용이 동성애에 반대하는 종교계 반발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성전환 수술을 한 뒤 강제 전역한 변희수 전 하사의 사망 소식 이후 차별금지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3월 서울 여의도 국회 내 정의당 대표실 앞에 마련된 변 전 하사의 추모공간 모습. 오종택 기자

성전환 수술을 한 뒤 강제 전역한 변희수 전 하사의 사망 소식 이후 차별금지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3월 서울 여의도 국회 내 정의당 대표실 앞에 마련된 변 전 하사의 추모공간 모습. 오종택 기자

하지만 21대 국회에서 이 법을 추진하는 의원들은 “이제는 다를 것”(박주민)이라고 자신하고 있다. 사회 전반의 인식이 바뀌었고, 특히 군 복무 중 성전환 수술을 받고 강제 전역당한 변희수(23) 전 하사가 지난 3월 숨진 채 발견된 이후로 여론이 바뀌었다는 것이다. 또 평등법의 경우 국가인권위가 아닌 법원에 시정명령권을 부여하고 형사처벌 조항을 없애, 차별금지법보다 갈등 요소가 완화됐다는 평가도 받는다. “이미 기독교 신도 내부에서도 찬성비율이 높다”(권인숙)는 주장까지 나온다.

이제 시선은 법안 심사의 결정권을 가진 민주당과 국민의힘 지도부로 향한다. 1년 전 차별금지법을 발의한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평등과 존엄의 가치를 우리 사회에 확립할 차별금지법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요청”이라며 “차별금지법 제정 당론 결정과 조속한 논의 시작을 촉구한다”고 거듭 양당 지도부를 압박했다.

이준석 “입법은 시기상조”…이재명도 ‘답변 회피’

차별금지법에 대해 양당 지도부는 여전히 미온적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고,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아직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사진은 양당 대표가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첫 만남을 갖는 모습. 오종택 기자

차별금지법에 대해 양당 지도부는 여전히 미온적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는 "시기상조"라는 입장이고, 송영길 민주당 대표는 아직 뚜렷한 입장을 밝히지 않았다. 사진은 양당 대표가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첫 만남을 갖는 모습. 오종택 기자

하지만 양당 지도부는 아직 소극적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신임 당 대표가 먼저 차별금지법에 대해 “시기상조”라고 밝혔다. 이 대표는 17일 BBS 라디오에 출연해  “아직 사회적으로 합의가 충분하지 않고, 대한민국 국민 중 상당수가 아직 우려하고 있다면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설명했다.

이 대표의 발언에 평등법 발의를 주도한 민주당 의원들은 “눈치 보기에 급급하며 툭 하면 시기상조 운운하는 것은 많이 보아 온 구태”(이상민), “얼마나 더 논의해야 하는 것인지 말씀해 달라”(박주민)며 불편한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 하지만 174석의 거대 여당 민주당 지도부의 입장도 모호한 상태다.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이제 막 법이 발의된 상태라 법사위에서 먼저 논의해야 할 것”이라고만 답했다.

차별금지법(평등법)이 워낙 민감한 이슈이기 때문에, 여권 대선 주자들 상당수도 어정쩡한 입장을 보인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지난달 출판기념회에서 “차별금지법에 원칙적으로 찬성한다”면서도 “사회 일각에 우려가 있다면 그 우려까지 수용하면서 최소화하는 방향에서 합의처리 되도록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재명 경기지사는 지난 15일 관련 질문을 받고 “차별금지법에 대해 의견이 없는 건 아닌데,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먼저 대답한 다음에 제가 하는 것을 생각해보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오현석 기자 oh.hyunseok1@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