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강정현 기자
발레리나 김지영(28)씨. 4년 전 네덜란드 국립발레단(Dutch National Ballet)에 입단한 그녀가 주역으로 성큼 성장해 가고 있다. 5월 고전 발레의 대표적 레퍼토리인 '백조의 호수' 공연 때 세 차례나 주인공으로 무대에 섰다. 발레단 10여명의 솔리스트(2등급)중 그녀만이 유일한 주역이었다. "내년엔 수석 무용수로 뽑힐 것 같다"는 말도 조심스럽게 꺼냈다. 강수진(슈투트가르트 발레단)에 이어 두 번째로 해외 유명 발레단의 수석 무용수가 된다는 말이다.
1968년에 창단한 네덜란드 국립발레단은 90여명의 단원을 보유한, 유럽에서 열 손가락안에 드는 명문이다. 특히 세계적인 안무가 한스 반 마넨을 배출하는 등 클래식과 현대 발레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무용 칼럼니스트 장인주씨는 "해외에 진출한 국내 발레리나들은 신체적 한계 등으로 대부분 현대 발레를 한다. 고전 발레 작품의 주역을 맡았다는 것은 실력.연기력.감성 등 모든 면에서 인정받았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1998년 김용걸(파리 오페라 발레단)과 함께 파리 콩쿠르 금상 수상, 2002년 네덜란드 국립발레단 입단과 동시에 그랑 수제(3등급) 발탁 등 탄탄대로를 걷던 그녀에게도 어려움이 있었다. 2002년 가을 연습 도중 오른 발목을 심하게 삔 것. 후유증으로 2년 뒤에 수술을 받아야 했다. "2년간 제대로 토슈즈를 신지 못했죠. 이렇게 발레 인생을 접는가보다 싶었어요. 그래도 요즘 주변에서 '상체 표현이 풍부하다'란 말을 듣는 걸 보면 그때의 좌절이 저의 내면을 깊게 해 준 것 같아요."
김지영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이는 국립발레단 수석 무용수 김주원(29). 국립발레단에서 같이 활동하던 90년대 후반 발레 애호가들 사이에 '지영파' '주원파'로 갈릴 만큼 둘은 팽팽한 라이벌이다. 김주원의 '브누아 드 라 당스' 수상이 자극이 됐을 터. "어릴 땐 신경전도 벌이고, 시샘도 많았어요. 돌아보면 라이벌만큼 좋은 약도 드물죠. 끊임없이 긴장시키고 발전시키게 하니깐요." 한 명은 국내에서, 한 명은 해외에서. 김지영이란 이름 앞에 '세계적'이란 수식어가 붙을 날이 멀지 않아 보였다.
최민우 기자 <minwoo@joongang.co.kr>
사진=강정현 기자 <cogit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