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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참 DJ 김미숙, "늘 곁에 있는 가구 같은 방송 만들고 싶다"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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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김미숙 씨가 11일 여의도 KBS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혁재 기자

배우 김미숙 씨가 11일 여의도 KBS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혁재 기자

"'이종환의 디스크쇼'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프로는 KBS 2FM의 '김미숙의 인기가요'…탤런트 김미숙(27)의 감칠맛 나는 진행이 독특한 인기를 얻고 있다." (동아일보 1986년 6월 6일)

당대 최고의 DJ와 경쟁을 벌이던 20대 여배우는 1986년 MBC가 창사 25주년을 맞아 진행한 여론조사에서도 김기덕, 이종환, 김광한 등 쟁쟁한 전문 MC들에 이어 '가장 좋아하는 DJ' 4위에 오르며 어깨를 나란히 했다.
김미숙씨는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사랑의 굴레' 등의 드라마를 통해 1980~90년대 '결혼하고 싶은 여성' 1위에 오르며 '남심 저격'의 대표적 배우로 유명했지만, 방송가에서는 DJ 섭외가 치열한 방송인이기도 하다. 차분한 중저음 목소리,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우아한 분위기와 담백한 입담으로 청취자를 사로잡은 그는 KBS·MBC·SBS를 넘나들며 9차례에 걸쳐 라디오 DJ를 맡았다. 배우로서는 최다 프로그램 경력이다.

덕분에 60대가 된 지금도 활동은 여전하다. 3년 전부터는 KBS 1FM 오전 9~11시에 진행하는 '김미숙의 가정음악'을 진행 중이다. 1982년부터 라디오를 맡았으니 현역 최고참 DJ이기도 한 김씨를 11일 만나 영상 시대의 라디오 매체와 '가정음악'에 대해 물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배우 김미숙 씨가 11일 여의도 KBS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혁재 기자

배우 김미숙 씨가 11일 여의도 KBS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혁재 기자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선호도가 높다. 비결이 뭔가.
=글쎄, 이전 프로그램의 호응도가 좋아서일까(웃음) 일단 DJ로서 초반에 트레이닝을 제대로 받았다. 첫 DJ로 나선 것이 KBS '일요일 아침입니다'인데 일요일 오전 5시간 동안 하는 생방송이었다. 24~25세에 그렇게 1년 반을 보내니까 제대로 훈련이 됐다. 처음부터 유명한 프로그램을 맡았으면 실수도 많고, 여기저기서 말이 나왔을 텐데 사람들이 잘 안 듣는 시간대에 제대로 다져질 수 있었던 거다. 그렇게 출발할 수 있었던 것이 행운이었다. 한 번은 그 무렵 이종환씨를 MBC에서 우연히 만났는데, "방송 참 잘한다"고 칭찬해주셨던 게 기억이 난다.

-DJ 경력은 40년 가까운데 강석·김혜영처럼 한 프로그램을 오래 하지는 않았다.
=연기 활동을 계속하다 보니 스케줄을 조정하는 문제가 있었다. 라디오를 계속 맡고 싶어도 드라마 촬영 시간하고 맞물리는데 DJ를 고집하면 제작진에게 민폐가 된다. 또 3년 정도 하면 자리를 양보하는 게 미덕이라는 생각도 있었다. 라디오 DJ를 하고 싶어하는 분들이 많지 않나. 그런데 정작 내 후임으로 오신 분들은 20년 가까이 하셨다. (웃음)

'김미숙의 가정음악'은 클래식 방송이다. 1995년에도 같은 프로그램을 맡았다. 클래식 애호가로 공연장을 부지런히 찾던 그녀는 당시 한 공연장에서 배동순 KBS 라디오 부장의 눈에 띄어 클래식 DJ로 픽업됐다. 좋아하는 음악가를 물어보니 주저 없이 "베토벤"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슈베르트나 슈만 같은 서정적인 곡을 좋아할 줄 알았다.
=슈만이나 슈베르트 같은 낭만적인 곡보다는 슬퍼도 당당하고 외로워도 당당한 베토벤의 작품이 좋다. 삶의 에너지가 느껴지는 사람이다.

-차분한 목소리와 진행이 트레이드 마크다. 잘 다투지도 않을 것 같다.
=남들과 언성을 높이거나 싸워본 기억이 없다. 그럴 일이 별로 없었다. 욕을 들어본 적도, 해본 적도 없는데 한 번은 라디오 공개방송에 초대된 적이 있다. 그때 노무현 전 대통령도 변호사로 출연하셨는데. 운전할 때 험하게 위협을 당하면 어떻게 하냐고 묻기에 정말 화가 나면 "저 아저씨가…"라고 말한다고 하니 다들 웃었던 기억이 난다.

배우 김미숙 씨가 11일 여의도 KBS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혁재 기자

배우 김미숙 씨가 11일 여의도 KBS 라디오 스튜디오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권혁재 기자

-부부싸움도 안 하나?
=부부 관계는 조금 다르다. 우리는 평생 안 싸우고 살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 살다 보니 성격 차이도 있고 생각도 다르고 일에 접근하는 방법도 달라서 애를 먹었다.(웃음) 결국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평화로워졌다. 그래도 가족 문제로 구설수에 오르지 않게 해준 남편에게 고맙고, 아이들도 잘 자라줘서 고맙다.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애들에게 "요즘 어떤 세상인지 알지? 잘못 일탈하면 엄마도 어찌할 수 없을 정도로 너희들이 힘들게 될 수 있으니 항상 조심하고 주의하라"고 강조했다.

-DJ를 두 번 맡게 된 '가정음악'은 어떤 프로그램인가.
=오전 9~11시는 어떤 이에게는 사무실에서 분주하게 왔다갔다 할 시간이고 어떤 이에게는 식구들이 나간 뒤 조용하게 갖는 자기만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들이 바쁘게 일하고 휴식하는 그 시간에 나를 드러내지 않고 동반자처럼 조용히 곁에 있고 싶다. 그런 취지로 만들고 있다. 에릭 사티라는 음악가가 "음악은 가구 같은 존재"라고 말한 적이 있다더라. 있는 듯 없는 듯, 남의 일이나 대화를 멈추게 하는 존재가 되고 싶지 않다.

-40년 가까이 라디오와 함께 해왔다. 영상 시대에 라디오가 갖는 가치는 무엇일까.
=다들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며 쉴 새 없이 영상과 접촉하는 것 같다.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게 중요한 디지털과 영상의 시대이지만 가끔은 눈을 감고 무언가를 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을까. 라디오는 소리를 통해 세상을 상상하고 그려보면서 여유를 찾는 시간을 가질 수 있게 해준다. 그러면서 나와 주변에 대해서도 배려하고 생각하게 해주는 것 같다. 청취자들이 여전히 라디오를 찾는 이유가 그런 그리움이 아닐까.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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