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오래]푸치니 ‘토스카’에 어른거리는 반 고흐의 그림자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한형철의 오페라, 미술을 만나다(8)

1900년 푸치니가 발표한 ‘토스카’는 혼돈의 시기 로마를 배경으로 육체를 탐하는 파렴치한 인물에 의해 비극을 맞이하는 여인의 죽음을 다룬 오페라랍니다. 탄탄한 연극적 구성에, 극 중 오페라가수인 토스카와 화가인 카바라도시 커플의 ‘예술에 살고 사랑에 살고’와 ‘별은 빛나고’ 등 아름다운 아리아가 흐르는 이 오페라에 대한 관객의 사랑은 열렬하지요.

막이 오르면 카바라도시가 성당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데, 왕당파에 저항해 투옥되었다가 탈옥한 친구가 나타나고 카바라도시는 그를 숨겨주려 자신의 별장으로 같이 갑니다.

검찰 총수인 스카르피아는 탈옥범이 카바라도시의 도움으로 도피한 것을 눈치채고는 그의 애인 토스카의 질투를 유발하도록 꾀를 냅니다. 애인을 만나러 온 그녀에게 성당에 떨어진 후작 부인의 부채를 보여주고, 카바라도시가 그 부인과 함께 사라졌다며 토스카가 의심하게 하지요. 토스카는 성화를 그리고 있어야 할 애인이 보이질 않자 의심을 하게 되고 결국 스카르피아가 파놓은 함정에 빠집니다. 그녀는 분노하며 카바라도시의 별장으로 달려가지요.

미사가 열리는 경건한 성당에서 신성한 합창을 배경으로, 스카르피아는 그동안 흠모하던 토스카를 차지할 애욕을 불태웁니다. 토스카를 이용하여 반역자도 처단하고 그 후에는 토스카마저 차지하겠다는 간계를 드러낸 것이지요. 엄숙한 성당에서 드러낸 스카르피아의 음모와 추악한 욕정! 그런 그를 신께서 용서할 리는 없겠지요.

경건한 찬송이 울려 퍼지는 성당에서 간계를! [사진 Flickr]

경건한 찬송이 울려 퍼지는 성당에서 간계를! [사진 Flickr]

결국 탈옥범을 은닉시킨 혐의로 카바라도시가 끌려오고, 스카르피아는 옆방에서 그를 고문하며 토스카를 심문합니다. 애인이 고문을 받는 비명소리가 들려오는 상황에서 사실을 모른다면 몰라도 알고 있는 것을 끝내 감추기는 너무나 힘든 일이기에, 결국 토스카는 탈옥범이 숨은 곳을 실토합니다.

고문이 끝나고 피범벅이 된 카바라도시가 끌려오자 토스카가 그를 위로합니다. 그때 로마의 왕당파가 공화파를 지원하는 나폴레옹에게 마렝고에서 대패했다는 소식이 전해집니다. 이에 카바라도시가 ‘공화정 만세’를 부르며 환호하고, 이에 분노한 스카르피아는 그를 사형시키라고 명하고, 그는 감옥에 투옥되지요.

카바라도시를 살리려는 토스카와 스카르피아의 애욕이 치열하게 부딪힙니다. 그 와중에 밖에서는 사형집행 대기를 알리는 북소리가 들려오네요. 사랑하는 이를 살리기 위해, 결국 토스카는 그에게 굴복하고 말지요. 스카르피아는 카바라도시를 거짓 처형하라고 지시하며 토스카를 안심시킵니다.

그리고 그녀를 품으려고 달려드는 스카르피아! 그의 가슴을 토스카는 식탁 위의 칼로 찌르지요, “이것이 토스카의 키스다!”라면서. 통행증을 챙겨 들고 애인이 갇힌 감옥으로 달려갑니다.

한편 감옥에서 처형 대기중인 카바라도시는 토스카와의 추억을 회상하며 아리아 ‘별은 빛나고’를 부릅니다.

토스카가 감옥으로 찾아와 거짓 처형하기로 했으니 연극 잘하라고 계획을 알려줍니다. 산탄젤로 성의 옥상에서 사형이 집행됩니다. 일제히 사격하자 카바라도시는 푹~ 쓰러지지요. 토스카는 애인의 죽는 연기가 멋지다고 감탄까지 합니다. 군인들이 모두 사라지고 토스카는 그에게 달려가 어서 도망가자고 하지만, 애당초 연극 같은 것은 없었습니다. 모두가 스카르피아의 속임수였던 것이지요.

그녀는 자신을 끝까지 속인 스카르피아에게 치를 떨며 분노를 터트리지만, 성 밑에서는 그가 살해된 것을 안 군인들이 토스카를 잡으러 달려옵니다. 토스카는 스카르피아를 저주하며 성벽 아래로 몸을 던지고 맙니다.

오페라 ‘토스카’에서 카바라도시는 처형당하기 전, 마지막 아리아 ‘별은 빛나고’를 부릅니다. 그리고 여기, 죽을 때까지 별을 그린 화가가 있습니다. 자신의 그림을 믿었고 희망을 잃지 않고자 했지만, 인생 자체가 고통과 절망의 연속이었던 화가 반 고흐! 그의 삶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그는 경제적으로 항상 어려움을 겪었고, 심지어는 빈민 급식소에서 무료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지요.

별이 빛나는 밤(1889), 반 고흐.

별이 빛나는 밤(1889), 반 고흐.

스스로 귀를 자른 뒤 정신병원에 입원했던 시기에 그린 그의 작품 ‘별이 빛나는 밤’은 매우 환상적이고 역동적인 별을 표현하고 있답니다. 파랑과 주황, 노랑 그리고 하얀색의 구름은 하늘을 몽환적으로 날고 있고, 샛노란 달이 희망적으로 그려져 있으며, 열 한 개의 별은 각자 스스로를 뽐내듯이 하양, 노랑, 주황과 초록 및 파란색으로 빛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달과 별빛을 머금은 하늘이 파도처럼 마을로 흘러 내려옵니다. 물감 살 돈이 부족했음에도 그는 자신의 별에게 노란 물감을 두텁게 칠해주곤 했지요.

발 디딘 지상에서 구원이라 할 하늘에 닿은 것은 그가 이집트의 오벨리스크처럼 선이 아름답다고 찬미했던 사이프러스 나무와 가여운 이들의 안식처인 교회의 첨탑뿐입니다. 아쉽게도 오벨리스크는 죽음을 상징하기도 하며, 교회에는 구원이 사라진 듯 불이 꺼져 있군요. 20대에 전도사를 하기도 했던 반 고흐는 노동을 하며 힘든 삶을 이어가던 많은 사람에게 교회가 더 따스한 불을 지펴주기를 소망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죽음과 희망을 동시에, 그리고 역설의 미학을 보여주는 것 같네요.

어떤 이는 고흐가 강렬한 노란색을 그리기 위해 독한 술 압생트를 마셨으며 그 후유증 때문에 노랗게 그렸다는 주장도 하는데,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베토벤이 귀가 멀어가면서도 음악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던 것과 같이, 고흐는 몸과 마음이 아프면서도 그림에 대한 뜨거운 열정과 희망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에게 노란색은 바로 포기할 수 없는 ‘희망’을 의미하는 것이지요.

오페라 해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