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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오페라‘몽유병 여인’서 만나는 자연주의 미술

중앙일보

입력

[더,오래] 한형철의 오페라, 미술을 만나다(6)

우리나라 관광객이 스위스를 처음 방문할 때의 반응은 한결같습니다. 국경을 넘어 처음 그 풍광을 마주하면, 거의 모든 사람의 입에서 “아~!” 라는 탄성이 나오지요. 눈 시릴 정도로 파란 하늘, 폐부 깊숙이 빨아들이고픈 맑은 공기 그리고 눈 닿는 곳마다 작품 사진이 되는 풍경.

1831년 벨리니가 발표한 ‘몽유병의 여인’은 바로 스위스의 평화로운 마을을 배경으로, 사람들이 오해나 질투로 인해 갈등을 겪지만 마침내 진정한 사랑을 얻는다는 이야기입니다. 우리의 감동은 뻔한 스토리 때문이 아니라, 그 고통과 사랑의 마음을 더 극적으로 꾸며주는 아름다운 음악 덕분에 더욱 커지지요.

1831년 벨리니가 발표한 ‘몽유병의 여인’은 바로 스위스의 평화로운 마을을 배경으로, 사람들이 오해나 질투로 인해 갈등을 겪지만 마침내 진정한 사랑을 얻는다는 이야기다. [사진 pixabay]

1831년 벨리니가 발표한 ‘몽유병의 여인’은 바로 스위스의 평화로운 마을을 배경으로, 사람들이 오해나 질투로 인해 갈등을 겪지만 마침내 진정한 사랑을 얻는다는 이야기다. [사진 pixabay]

막이 오르면 몽유병을 앓고 있는 아미나와 젊은 지주인 엘비노가 결혼하기 전날,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축가를 부르고 있습니다. 아미나가 나타나 사람들에게 인사를 하고 사랑의 찬가를 부릅니다. 날씨까지 화창하니 사랑에 빠진 이에게는 더없이 좋지요! 그녀는 사랑과 행복에 벅찬 가슴으로 아름답게 노래합니다. 이때 엘비노가 나타나 아미나에게 반지를 끼워주고 제비꽃도 선물하지요.

사람들 앞에 마차가 서고 품위 있는 신사가 내려 추억에 어린 듯 물레방앗간과 우물, 숲 등을 바라봅니다. 이 신사가 어릴 적에 성을 떠난 영주의 아들임을 아직은 아무도 모르고 있답니다. 해가 저물자 마을 사람들은 신사에게 밤이면 무서운 유령이 나타난다며 서둘러 집으로들 갑니다.

신사가 리사의 여관에 기거하며 침실에서 쉬고 있는데, 그가 영주의 아들 로돌포 백작임을 눈치챈 리사는 그에게 은근히 추파를 던집니다. 예쁜 그녀가 싫지 않은 백작도 호감을 표시하며 애정행각을 벌이는데, 인기척이 나자 리사는 당황하며 스카프를 흘리고 방을 빠져나가지요.

그곳에 새하얀 잠옷을 입고 잠에 빠진 상태의 아미나가 엘비노를 찾으며 들어옵니다. 백작은 마을 사람들이 말한 유령의 정체가, 몽유병을 앓고 있는 아미나임을 간파하지요. 그녀가 백작의 소파에서 잠이 드는 것을 보고, 백작은 살그머니 방에서 나가주었지요.

아침에 뒤늦게 백작의 신분을 알게 된 마을 사람들이 인사차 그의 숙소로 몰려옵니다. 엘비노는 그녀가 백작의 침실에서 자고 있는 현장을 확인하고는 분개합니다.

'이 꽃도 나처럼 시들어 버렸구나' .[사진 Wikimedia Commons]

'이 꽃도 나처럼 시들어 버렸구나' .[사진 Wikimedia Commons]

눈을 뜬 아미나는 당황스러워 말을 잇지 못하지요. 왜 자기가 여기 있는지를 알 수 없으니까요. 그녀는 자신의 결백과 사랑이 변함없음을 호소합니다. 허나, 사랑에 대한 믿음이 부서졌다며 분노하는 엘비노. 그는 아미나의 손에서 반지를 빼앗아 버리지요. 그녀는 큰 충격을 받아 쓰러지고, 사람들은 그녀가 죽을지도 모른다며 걱정합니다.

엘비노가 홧김에 리사에게 청혼하고 그들이 결혼하려는 순간, 백작이 나타나 아미나가 몽유병자라고 설명하고 그녀의 결백을 증명해줍니다. 그러나 엘비노는 그녀의 부정한 현장을 직접 보았다며 믿으려 하지 않네요. 다른 주민이 리사가 백작의 침실에 떨어뜨린 스카프를 내보이며 그녀의 행실을 폭로합니다. 백작도 그 사실을 확인해주므로, 리사는 할 말이 없어졌지요.

그때 흰 잠옷을 입은 아미나가 물레방앗간 창문에 나타나, 자면서 지붕 끝을 걸어갑니다. 매우 위태롭습니다. 사람들이 걱정의 탄식을 쏟아내지요. 잠든 상태의 그녀는 엘비노가 준 꽃을 꺼내며 아리아 ‘아! 믿을 수 없어라’를 부릅니다.

아! 믿을 수 없어라, 향기로운 꽃이여
네가 이렇게 빨리 시들 줄은
단 하루 만에 끝나버린 사랑처럼
너도 시들어 버렸구나…

그 모습에 모두 아미나의 병을 알게 되고, 엘비노는 그녀의 진심을 믿게 됩니다. 그는 아직 잠결인 그녀의 손가락에 반지를 도로 끼워주지요. 잠에서 깬 그녀는 엘비노가 오해를 풀었음을 알게 됩니다. 모두가 기쁘게 합창으로 화답하는 가운데 막이 내려집니다.

오페라 ‘몽유병의 여인’은 스위스의 한 마을의 자연을 배경으로 사랑과 오해, 그리고 실성의 아리아가 펼쳐집니다. 알프스의 푸른 산을 끼고 파란 하늘과 흰 구름을 안은 채 물레방앗간과 우물, 숲 등의 자연은 자연스레 사람들의 사랑과 오해도 품어 주지요.

회화에서 자연은 오랫동안 주체라기보다는 보조역할이었고 배경으로 그려졌습니다. 19세기에 들어와서야 순수한 자연 그 자체를 그리는 화가가 나타났고, 우리는 그들을 자연주의 화가라 부른답니다. 그들 중에서 밀레의 작품을 만나 보자구요.

‘이삭 줍는 사람들’(1857), 밀레.

‘이삭 줍는 사람들’(1857), 밀레.

추수 후 땅 위에 떨어진 이삭을 주워 먹는 이들은 하층민 중 가장 어려운 사람이었습니다. 위 그림은 그렇게 살아야만 했던 비참한 극빈층 여인의 모습을 그린 작품이랍니다. 밀레는 그들의 왼쪽 머리 위로부터 찬란한 금빛을 비춰줌으로써 그들을 숭고하게 그렸지요. 추수 후에 땅에 떨어진 이삭을 깊숙이 허리 굽혀 줍는 아낙들. 구도상으로도 안정적이고 조화를 이루는 이 그림 속에서, 그들의 모습은 마치 신의 뜻에 따라 묵묵히 자신의 소임을 다하는 사도의 모습처럼 경건하기까지 하답니다.

화가는 당시 만연한 신분별 빈부 격차에 대한 사회고발도 잊지 않았습니다. 이삭 줍는 아낙들 뒤로, 저~ 멀리 곡식더미가 하늘을 찌를 듯이 쌓여있고 수많은 인부가 일하고 있습니다. 오른쪽에는 지주의 집사로 보이는 사람이 말을 탄 채 그들을 감시하고 있고요. 그의 지시에 따라 수확물을 마차로 옮기는 장면도 보이는데, 감시자의 뒤로는 수확물을 꽉 채울 커다란 창고가 줄지어 서 있답니다. 이런 격차는 신의 뜻에 반하는 것이겠지요. 밀레가 아낙들의 두건과 옷 색깔에 자유·평등·인간애를 뜻하는 삼색, 즉 파랑· 흰색·빨강을 칠한 것은 세상이 조금 더 따뜻해지기를 바라는 그의 기원을 담은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답니다.

오페라 해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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