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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로면 집단면역 실패…'백신 기근' 아프리카에 세계가 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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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인구 2억1400만명의 나이지리아의 코로나19 백신 접종률은 0.1%다. 변이 바이러스의 발원지로 대유행이 여전히 진행 중인 남아프리카공화국 역시 접종률은 2%에 못 미친다. 그나마 이들 나라는 접종을 시작하기라도 했다. 아프리카 대륙에서 아직 백신을 구경조차 못 한 나라도 탄자니아, 차드 등 5곳에 이른다.

11일(현지시간) 영국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백신 10억 회분을 기부하겠다는 합의가 나오면서 선진국과 개도국 간 '백신 디바이드'가 완화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현재 가장 심각한 '백신 기근'에 시달리는 지역이 인구 13억의 아프리카 대륙이다. 대부분의 국가가 자력으로 백신을 확보하기 어려운 탓에 외부 지원에 기대고 있지만, 상황은 녹록지 않다.

2020년 4월 30일 소말리아 모가디슈에서 코로나19로 숨진 노인을 매장하는 모습. [AP=뉴시스]

2020년 4월 30일 소말리아 모가디슈에서 코로나19로 숨진 노인을 매장하는 모습. [AP=뉴시스]

백신 기근…경제난에 정정 불안까지

국제 통계사이트 '아워월드인데이터'에 따르면 아프리카 대륙의 1차 접종률은 아직도 전체 인구의 2%를 밑돈다. 2차 접종까지 완료한 인구는 전체의 0.6%에 불과하다. 반면, 코로나19 확진자는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아프리카 대륙에선 그간 500만 건의 코로나19 확진 사례가 나왔다.

10일(현지시간) 세계보건기구(WHO)는 현재 아프리카 국가들 중 90%가 자국 백신 접종 목표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그렇다고 목표가 높았던 건 아니다. 오는 9월까지 인구 10%에 최소한 한 번의 백신을 접종하려 했다.

아프리카 케냐에서 의료진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위해 기다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아프리카 케냐에서 의료진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접종을 위해 기다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런 상황에 국민의 불신이 커지며 그렇지 않아도 불안정한 정국은 더욱 혼란해지고 있다.

안보 위기를 맞고 있는 나이지리아의 무함마두 부하리 정권이 대표적이다. 북부를 근거지로 한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보코하람’에 합류하는 이들이 늘면서 세력을 커지고 있다. 극단주의 이슬람 세력은 근방의 부르키나파소, 카메룬, 차드, 코트디부아르, 말리, 니제르까지 빠르게 번져가는 중이다. 최근 서아프리카 지역이 새로운 ‘해적의 바다’로 떠오르고 있는 것도 코로나19와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는 “백신 부족이 계속되면 경제 봉쇄로 삶의 희망을 잃는 아프리카인들이 계속 늘어날 것”이라면서 “실제로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면서 아프리카 지역에서 활동하는 테러 집단의 규모도 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3월 소말리아 모가디슈 공항에 코백스를 통해 지원되는 코로나19 백신이 도착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지난 3월 소말리아 모가디슈 공항에 코백스를 통해 지원되는 코로나19 백신이 도착하고 있다. [AP=연합뉴스]

기약없는코백스 백신 

상황이 이처럼 악화한 건 국제 백신 공동구매·배분 프로그램 '코백스'(COVAX)가 삐걱거리면서다.

리처드 미히고 WHO 아프리카 백신 프로그램 담당자는 지난 4일 독일 공영방송 도이치벨레(DW)와의 인터뷰에서 “5월 말까지 코백스를 통해 아프리카에 제공되기로 했던 백신 6600만 개 중 1900만 개만 배송됐다”고 밝혔다.

당초 코백스는 협상력이나 자본력이 약한 아프리카 국가에 '백신 젖줄'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다. 문제는 코백스에 공급될 예정이었던 백신의 상당량이 인도에서 만들어질 예정이었다는 것이다. 지난 3월 25일 인도는 자국에서 발생한 코로나19 대규모 확진 사태로 백신 수출을 제한했다. 이에 따라 올해 초 처음으로 코백스 백신을 받았던 아프리카 국가들에는 지난 3월을 기점으로 배송이 중단됐다. 이에 WHO는 6월 말까지 1억9000만 회분의 백신이 부족할 것으로 보고 있다.

공급 일정이 불확실해지면서 백신을 일부 확보한 아프리카 국가들도 접종 시작을 주저하고 있다. 이미 1차 접종 대상을 정해둔 상황에서 2차 접종이 가능할지가 확실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국가들은 확보한 선량을 우선 대도시에서의 코로나19 확산을 방지하기 위해 집중하고 있다. 우간다의 경우 농촌 지역의 접종분을 회수한 상황이다.

지금까지 아프리카 대륙에 보내진 코백스 백신은 4900만명분으로 51개 국가가 나눠 받았다. WHO에 따르면 보츠와나, 르완다, 나미비아, 토고 등 10개국이 이미 코백스 백신을 소진했다.

"아프리카 방치하면 집단면역 불가능"

10일(현지시간) 보리스 존슨(왼쪽) 영국 총리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G7 회의가 열리는 영국 콘월 카비스베이에서 만나 대화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10일(현지시간) 보리스 존슨(왼쪽) 영국 총리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G7 회의가 열리는 영국 콘월 카비스베이에서 만나 대화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문제는 이런 심각한 '백신 디바이드'를 방치할 경우 세계적 수준의 '코로나 집단면역'도 달성하기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코로나19의 종식을 위해선 변이 발생을 최대한 억제해야 한다. 이를 위해 바이러스의 복제 빈도 자체를 줄이는 것이 해법이다. 하지만 대규모 확진이 발생하는 지역이 남아있는 이상 언제 다른 유형의 변이 바이러스가 등장할지 모른다.

실제로 영국발 변이(B.1.1.7) '알파', 남아공발 변이(B.1.351) '베타', 브라질발 변이(P.1)는 '감마', 인도발 변이(B.1.617.2)는 '델타'는 모두 코로나19 확진자가 집중된 지역에서 나왔다.

옌스 슈판 독일 보건장관이 “전 세계가 안전하기 전까진 우리도 안전할 수 없다”고 말한 이유다. 결국 부국들도 한발 늦게나마 '십시일반'에 나서기 시작했다. 10일 AP 통신에 따르면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는 G7 정상회의를 하루 앞두고 “정상들이 최소 10억 회분의 백신을 세계에 공급하는 내용에 합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이날 “우리는 글로벌 파트너들과 협력해 전 세계가 이 전염병 대유행에서 빠져나오는 것을 도울 것”이라며 92개 저소득 국가와 아프리카연합(AU)에 5억 회분을 제공할 것이라고 밝혔다.

압달라 지라바 나이로비 인구보건연구센터 역학학자는 보이스오브아메리카(VOA)와의 인터뷰에서 "백신 지원 이외에도 아프리카의 백신 유통이나 접종 의료 체계에 대한 지원도 시급하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인도 수도 뉴델리의 코로나19 시신 화장장에서 친척의 죽음을 슬퍼하는 남성. 연합뉴스

지난 4월 인도 수도 뉴델리의 코로나19 시신 화장장에서 친척의 죽음을 슬퍼하는 남성. 연합뉴스

김홍범 기자 kim.hongbu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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