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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수의 반란···대선 270일전, '이준석'이란 파격을 선택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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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의 세대 지체 현상을 뒤엎은 보수 유권자들의 반란, 정권 교체를 원하는 보수층의 전략적 선택. 이른바 ‘2030세대’ 국회의원마저 드문(21대 총선 기준 300명 중 13명, 4.3%) 한국 정치의 현실에서 85년생 정치인 이준석(36)이 11일 제1야당의 대표가 됐다. 보수 성향 유권자들은 270일 남은 내년 3월 대선을 지휘할 2년 임기의 선장 역할을 그에게 맡겼다.  ‘확고한 뜻을 세운다’(而立ㆍ이립)는 30세는 지났지만 ‘유혹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40세(不惑ㆍ불혹)는 안 된, 청년 정치인을 대표로 세우는 파격이었다.

이날 열린 국민의힘 전당대회에서 이준석 대표는 일반 국민 여론조사와 당원투표를 합해 9만3392표(43.8%)를 얻었다. 7만9151표(37.1%)에 그친 나경원 후보를 6.7%포인트 차이로 앞섰다. 이 대표는 반영률 70%인 당원 투표에서 37.4%의 지지로 나 후보(40.9%)에 3.5%포인트 뒤졌지만, 일반 여론조사에서 과반(58.7%) 득표로 28.2%에 머문 나 후보를 두 배 이상 앞섰다. 비등비등했던 당심에 비해 여론의 지지가 압도적이었다. 결국 당 대표 경선 중반부터 불기 시작한 ‘이준석 바람’이 승패를 갈랐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당기를 흔들고 있다. 오종택 기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1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국민의힘 당사에서 열린 전당대회에서 당기를 흔들고 있다. 오종택 기자

당 대표 수락 연설에서 “나경원ㆍ조경태ㆍ주호영ㆍ홍문표 후보님께 모두 감사 올리고 큰 박수 부탁드리겠다. 여러분은 저를 당대표로 만들어주셨다”며 말문을 연 이 대표는 “우리의 지상 과제는 대선 승리”라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어 “다양한 대선주자 및 그 지지자들과 공존할 수 있는 당을 만들 것”이라며 “내가 지지하는 대선주자가 당의 후보가 되고, 문재인 정부에 맞서 싸우는 총사령관이 되기를 바란다면, 다른 주자를 낮추는 방향으로 그것을 달성할 수 없다”고 단언했다. 그러면서 “상대가 낮게 가면 더 높게 갈 것을 지향해야 하고, 상대가 높게 가면 그보다 높아지기 위한 노력을 하는 것이 우리의 경쟁 원칙”이라고 덧붙였다.
이 대목은 “When they go low, we go high(그들이 저급할 때, 우리는 품위 있게 가자)”라고 했던 버락 오바마 미국 전 대통령의 부인 미셸 오바마의 2020년 민주당 전당대회 연설을 인용한 것으로 보인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1일 오전 당 전당대회에서 당선자 발표 직후 나경원 후보와 악수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11일 오전 당 전당대회에서 당선자 발표 직후 나경원 후보와 악수하고 있다. 오종택 기자

이날 같이 선출된 최고위원에는 조수진ㆍ배현진ㆍ김재원ㆍ정미경 후보(득표순)가 당선됐다. 면면에서 보듯 여풍(女風)이 거셌다. 별도 트랙으로 뽑은 청년 최고위원에는 31세인 김용태 후보가 당선됐다. 제1야당의 지도부가 그간의 정치권, 특히 보수당 내에서 비주류로 꼽혀 왔던 청년과 여성 중심으로 채워진 셈이다.

정치권 안팎에선 이번 국민의힘 전당대회 결과를 놓고 “이준석 개인에 대한 지지라기보단, 변화에 대한 열망이 반영된 것”(이재묵 한국외대 정치학 교수)이란 반응이 많다. 한 마디로, 이준석 당 대표 선출 밑바탕에 흐르는 이른바 ‘이준석 현상’을 짚어봐야 한다는 의미다. "이준석이 이긴 것이 아니라 '이준석 현상'이 이겼다"는 말이 야당 내부에서 나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이기도 한 성일종 의원은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정권을 되찾아오기 위해선 안정을 논할 단계가 아니다. 더 파격적으로, 더 확실하게 바뀌라는 야당 지지층의 민심이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성 의원의 진단.

“4ㆍ7 보궐선거 때 오세훈 후보가 당선될 때부터 흐름이 있었다. 내부적으로는 당시 오 후보가 나경원, 나아가 안철수를 이길 거라 생각이나 했나. 사람을 통해 혁신하자는 것, 이게 민심의 흐름이었다. 대선을 앞두고 지역 확장과 세대 확장이 무엇보다 중요한데, 이준석 대표를 통해 세대 확장의 주춧돌을 놓은 것이다.”

2030으로의 세대 확장이란 거부할 수 없는 흐름에 이준석과 '이준석 현상'이 올라탔다는 뜻이다.

2030 공략의 중요성은 수치로도 확인된다. 여론조사업체 한국갤럽의 6월 둘째 주(8~10일) 조사에 따르면 20대의 여야 지지율(민주당 22%, 국민의힘 17%)은 박빙이지만, 지지 정당이 없는 무당층이 45%나 됐다. 30대도 양당 지지층(민주당 34%, 국민의힘 19%)보다 무당층(36%)의 비율이 더 높다. 여론조사 전문가인 에스티아이 이준호 대표는 “당 대표로서의 이준석이 어떤 행보를 보이느냐에 따라 그동안 보수에 대한 지지를 유보해왔던 2030의 여론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른바 '이준석 현상'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며, 대선을 앞두고 결코 물러설 수 없는 2030 민심이란 전쟁터에서 여야간 격돌이 더 격렬해 질 수 밖에 없다는 게 그의 진단이다.

이 대표의 역할에 따라 이른바 ‘청년 정치’의 큰 물줄기가 바뀔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김형준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는 “2012년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여성 정치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었다가 무너진 경험이 있지 않나”며 “이 대표가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는지 아닌지에 따라 청년 정치가 더 빛을 발할지 망가질지 판가름날 것”이라고 말했다.

권호 기자, 김보담 인턴기자 gnom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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