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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비즈니스 현장에 묻다

“국가 안보와 국격이 우주 산업에 달려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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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최준호 기자 중앙일보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겸 논설위원
신현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가 2018년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된 누리호 시험발사체를 배경으로 섰다. 시험발사체에는 한화가 참여한 75t 로켓엔진 1기가 장착됐다. 우상조 기자

신현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가 2018년 나로우주센터에서 발사된 누리호 시험발사체를 배경으로 섰다. 시험발사체에는 한화가 참여한 75t 로켓엔진 1기가 장착됐다. 우상조 기자

비즈니스 현장에 묻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신현우 대표 

한국에서도 우주산업이 꽃 필 수 있을까. 옛 소련이 인류 최초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린 게 60여 년 전인 1957년. 미국 우주비행사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것도 50여 년 전인 1969년. 이제 과학소설(SF)은 현실이 되어가고 있다. 지구~달 거리의 최소 147배 이상 떨어진 붉은 행성 화성의 땅엔 미국과 중국의 탐사로버들이 돌아다니며 사진과 영상을 보내온다. 앞으로 3년 뒤, 2024년을 목표로 한 유인 달 기지 구축계획 아르테미스 프로젝트에 세계 12개국이 참여하고 있다. 한국은 오는 10월 자력 개발한 우주로켓 누리호의 첫 발사가 예정돼 있다. 반세기를 훌쩍 넘은 뒤에야 우주 강국들을 먼발치에서 따라가는 말 그대로 ‘걸음마’다.  KAIST의 우리별 1호(1992년)를 필두로 한 30년 위성개발의 역사를 그나마 위안 삼아야 하는 마당이다.

최근 우주 자체의 경제가치 주목 # 해외선 스타 CEO들 앞다퉈 개발 # 한화, 우주산업 몸집 불리기 나서 #“우주는 파괴적 혁신 가능한 분야”

 21세기 들어 인류는 민간 우주시대를 뜻하는 ‘뉴 스페이스’(New Space)의 시대에 진입했다. 위성은 이미 민간기업의 몫, 발사체 또한 미국 스페이스X를 비롯한 세계 주요국 민간기업들이 경쟁에 나서고 있다. 우주가 산업의 영역으로 들어섰다는 얘기다. 늦었지만, 한국에도 뉴 스페이스의 싹이 트고 있다. 대표적 기업이 한화다. 한화그룹은 지난 3월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등 그룹 내 4개 우주 관련 기업을 묶은 ‘스페이스허브 팀’을 발족했다. 김승연(69) 회장의 장남 김동관(38) 한화솔루션 사장이 팀장이 돼 스페이스허브 팀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한화그룹 우주산업의 리더기업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다. 스페이스허브 팀은 직제상 에어로스페이스의 한 사업부문이다. 지난 4일 오후 서울 장교동 한화그룹 사옥에서 신현우(57)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를 만났다.

용홍택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왼쪽)이 지난 2일 경남 창원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사업장을 방문해 신현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이사로부터 누리호 1단부의 75톤급 엔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용홍택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제1차관(왼쪽)이 지난 2일 경남 창원의 한화에어로스페이스 창원사업장을 방문해 신현우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대표이사로부터 누리호 1단부의 75톤급 엔진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사진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우주 관련 분야는 뭔가.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국내 유일의 항공ㆍ우주 엔진 회사다. 우주 발사체에서 엔진이 차지하는 비중은 원가 기준 50%가 넘는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는 2004년 나로호 개발 착수 때부터 우주 강국을 위한 첫 디딤돌이 될 발사체 개발 사업부터 핵심적인 역할을 해왔다. 올 10월 발사를 앞둔 한국형 발사체 누리호의 액체로켓 75t 엔진과 7t 엔진도 항공우주연구원과 같이 개발해왔다. 액체로켓 엔진은 짧은 연소 시간 동안 고온ㆍ고압ㆍ극저온 등 극한의 환경을 동시에 견뎌야 하기 때문에 연소 안정화, 내열 합금 기술, 극저온 물질 취급 기술 등을 복합 적용해야 하는 최첨단 기술의 집약체다. 소수 선진국만 보유하고 있는 안보기술이지만, 그간 순수 국내 자력기술로 개발을 성공적으로 완료했다. ”

(※액체 우주로켓 엔진기술은 그간 항공우주연구원이 독자 개발, 설계해서 30개 민간기업에 부품제조를 맡겨왔다. 한화는 액체로켓의 핵심부품인 터보 펌프의 자체 생산뿐 아니라 엔진 전체조립도 담당하고 있다. )

회사 전체 매출(2020년) 중 우주 관련 산업은 아직 미미한데.
지난해 5조3000억원 매출(연결 기준) 중 우주 관련은 2200억원이다. 이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다. 이제 본격적인 시작이다. 누리호 발사 성공을 바탕으로 앞으로 인공위성이 계속 올라가면 액체로켓 엔진도 계속 만들어야 한다. 그땐 한화에어로스페이스 매출도 크게 올라갈 것이다. 우리 회사뿐 아니라 한국의 우주 산업은 아직은 정부 주도 하의 공공재 성격이 크다. 여기에 그간 발사체 거리 제약 등의 규제 때문에 다른 국가들에 비해 시작이 늦어졌다. 2019년 기준 국내 우주산업은 약 3조 2000억원 규모로 전체 우주시장 규모의 1% 수준이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일론 머스크, 제프 베저스 등 스타 CEO들이 앞다퉈 나서며 우주 산업이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과거 우주 사업이 그 나라의 기술과 국가적 자긍심을 높이는 수단이었다면 이제는 우주 자체의 경제적 가치에 주목하는 추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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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룹 전체로는 어떤가.
자회사 한화시스템은 위성에 탑재되는 영상레이더와 전자광학ㆍ적외선 분야에서 뛰어난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 통신단말기 사업도 있다. 특히 지난해 6월에는 영국 위성 안테나 전문기업인 페이저 솔루션을 인수해 지상체 분야까지 사업영역을 확장했다. 지난달에는 미국의 전자식 빔 조향 안테나(ESA)기술 기업인 카이메타와의 전략적 파트너십이 미 정부의 투자승인을 받는 성과도 있었다. 위성 우주사업에서 앞으로 최근 가장 빠른 성장세가 예상되는 저궤도 위성통신 및 에어 모빌리티 시장을 공략할 수 있는 유리한 거점을 확보하게 될 것으로 기대한다. 올 초에 지분 30%를 인수한 국내 유일 위성시스템 기업인 쎄트렉아이도 있다. 쎄트렉아이는 위성 제작뿐 아니라 인공지능을 활용한 영상 분석 등 서비스 중심의 다양한 미래사업으로 영역을 넓히며 지구관측 솔루션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한화는 로켓에 들어가는 고체연료 기술을 확보한 국내 유일의 기업이다. 이번 한·미 미사일 지침 종료로 고체연료를 탑재한 우주 발사체 개발이 활발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렇게 되면 한화그룹은 액체연료와 고체연료 로켓을 동시에 개발하는 기술을 가진 국내 유일 기업일 뿐 아니라 국내에서 유일하게 우주사업 수직계열화를 갖추는 셈이다.  
스페이스허브 팀 발족과 KAIST 공동연구 등 발걸음이 바빠 보인다.  
지금까지 한화는 다양한 우주 사업 포트폴리오에도 불구하고 사업 간 시너지는 아쉬운 점이 있었다. 흩어져 있는 각 계열사의 강점을 모아 시너지를 창출하고 국내외 파트너들과 전략적 협력관계를 구축해 우주 사업의 청사진을 그리는 것이 스페이스허브 팀의 역할이 될 것이다. 한화와 KAIST가 협조하기로 한 우주연구센터 설립은 국내 우주 관련 산학 협력으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첫 연구 프로젝트는 저궤도 위성통신 기술 개발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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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이스허브팀의 10년, 20년, 30년 뒤의 비전이 있다면.
향후 10년 비전이라면 우주 사업의 큰 두 축인 발사체와 위성 분야에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최초의 민간 우주 종합 체계업체가 되는 것이다. 우주산업은 미래의 필수 사회간접자본이 될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지 못하면 배타적 지위를 구축한 우주 선진국들에 의존할 수밖에 없게 되고 결국 시대에 뒤처지게 될 것이다. 앞으로 이런 분야의 게임 체인저가 될 수 있는 신기술을 가진 스타트업에 대한 지분 투자와 해외 선도업체와의 전략적 제휴도 계속 추진할 계획이다. 20년쯤 뒤엔 본격적인 우주 개발과 파생 기술을 활용한 신사업을 전개한다는 비전을 가지고 있다. 우주여행ㆍ우주화물 등 아직 실감이 가지 않지만 이미 멀지 않은 현실이다. 30년 뒤엔 우주산업을 통해 인류의 지속가능성에 기여하는 기업이 되고자 한다.
스페이스허브팀의 팀장이 김승연 회장의 장남 김동관 대표다. 김 대표의 우주산업에 대한 생각이 궁금하다.
김 대표의 기본적인 생각은 우주 산업은 국가안보와 국격 제고 관점, 그리고 산업기회 측면에서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바라봐야 하는 산업이라는 것이다. 최근 위성 발달 등으로 인한 방위 산업 헤게모니의 전환 속에서 우주 공간은 비대칭 전력을 만들 수 있는 공간으로, 앞으로 갈수록 중요성이 커질 전망이다.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자력으로 발사체와 위성을 운용하는 7번째 국가다. 전 세계가 앞다퉈 우주개발에 나서고 있는 이때,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현재 보유한 사업 역량을 키워가지 않으면 선발주자들과의 격차는 더 벌어지고 후발주자들에게는 따라잡힐 우려도 있다. 김 대표는 더 늦기 전에 누군가는 앞장서서 국내 우주산업의 프레임을 제시해야 한다는 각오로 우주사업 참여를 결정했다. 향후 중장기적인 관점을 가지고 다양한 신규사업 모델을 검토해 새로운 미래 먹거리로 키울 계획이다. 
2018년 공개한 50㎝급 해상도를 가진 쎄트렉아이의 차세대 관측위성 스페이스아이X. 우주상황을 가정한 진공챔버 실험을 하고 있다. [사진 쎄트렉아이]

2018년 공개한 50㎝급 해상도를 가진 쎄트렉아이의 차세대 관측위성 스페이스아이X. 우주상황을 가정한 진공챔버 실험을 하고 있다. [사진 쎄트렉아이]

한국이 우주산업으로 뻗어 나가기엔 역사도 너무 짧고, 지정학적 위치도 열악하다. 무모한 도전 아닌가.    
중동의 우주 불모지였던 아랍에미리트(UAE)는 세계 5번째로 화성 궤도 진입국이 됐다. 우리 쎄트렉아이로부터 인공위성 제작기술을 배운 뒤 겨우 10년 만이다. 인구 60만 룩셈부르크도 적극적인 정부의 투자 유치에 힘입어 유망 스타트 업들이 몰려드는 우주 선진국이 됐다. 기업 간의 공급망 관리(Supply Chain Management) 관계에서도 신생기업 블루 오리진이 원청사가 되고 거꾸로 기존 록히드마틴ㆍ보잉 등이 협력사로 참여하는 등 관계 역전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있다. 우주는 이제 막 본격적으로 형성되고 있는 시장이기 때문에 아직 기술 표준이 존재하지 않아서 파괴적 혁신이 얼마든지 가능한 분야다.  
우주는 산업이기 이전에 정치의 영역이 강하다. 예를 들어 미국은 국제무기거래규정(ITAR) 등을 통해 자국의 기술이 들어간 인공위성이나 우주탐사선을 한국 우주로켓에 실어 쏘아 올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있다. 여기엔 어떻게 대처하나.
우주군 창설 등 대규모 정부 프로젝트에 집중해온 트럼프 행정부와 달리 바이든 정부는 지구 관측 위성 운영을 통한 환경 감시 등 정치적 색채가 상대적으로 옅은 실용 과제 해결에 무게를 둘 것으로 보인다. 앞으로 민간이 주도하는 뉴 스페이스 시대 우주 시장에서는 미국의 우주 기업들과 양측에게 이익이 되는 협력관계를 구축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지 않을까 희망해 본다. 이러한 전략적 제휴를 위한 노력과 동시에 핵심분야 독자기술 확보도 병행하려고 한다. 이런 측면에서 한화는 정부의 국내 우주 기술 고도화에 적극 협조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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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준호 과학ㆍ미래 전문기자, 논설위원 joonho@joongang.co.kr

신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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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기계공학과 학부를 졸업하고, 곧바로 ㈜한화에 입사했다. 이후 경력의 대부분을 방산부문에서 일했다. 한화 내에서 우주ㆍ항공분야 최고 전문가다.  2015년 한화가 삼성테크윈을 인수해  한화테크윈으로 변신하면서 항공ㆍ방산부문 대표이사에 올랐다.  테크윈은 다시 에어로스페이스로 이름을 바꿨다. 지난해 말부터 국가우주위원회 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