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비신부 죽음···'광주 붕괴참사' 2년전 서울에서도 있었다

중앙일보

입력 2021.06.10 17:55

업데이트 2021.06.11 11:30

광주광역시 동구 학동에서 철거건물 붕괴로 17명의 사상자가 나온 것과 관련, 전문가들은 “2년 전 서울 잠원동에서 발생한 사고와 쌍둥이처럼 닮았다”고 진단했다. 당시에도 현장을 최종 감독·관리하는 감리가 현장에 상주하지 않았던 점, 건물 측면에 토사를 쌓고 아래층에서 상층부를 철거하는 '편법 철거'가 문제가 됐다.

예비신부 사망에도…“편법공사 반복”

광주 동구 학동4 재개발구역 건물붕괴가 일어나기 전 촬영된 철거사진. 건물의 한쪽 측면 하부부터 철거가 진행되는 걸 알 수 있다. [시민 제보]

광주 동구 학동4 재개발구역 건물붕괴가 일어나기 전 촬영된 철거사진. 건물의 한쪽 측면 하부부터 철거가 진행되는 걸 알 수 있다. [시민 제보]

2019년 7월 4일,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선 재건축을 위해 철거 중이던 지상 5층 건물 외벽 30여t이 옆으로 붕괴해 4명이 죽거나 다치는 사고가 발생했다. 특히 당시 사망자였던 20대 여성은 이듬해 결혼을 앞두고 결혼반지를 찾으러 가던 길에 차 안에서 사고를 당해 안타까움을 더했다. 동승자였던 30대 남성 역시 중상을 입었고 60대 여성 2명도 경상을 입었다.

당시와 이번 광주 사고의 가장 눈에 띄는 공통점은 '편법 공사'다. 안형준 건국대 건축공학과 교수는 “두 사고 모두 건물 측면에 토사를 높이 쌓고 건물 측면부터 중장비로 철거한 데다, 상부가 아닌 하부부터 무차별적으로 작업해 건물이 토사 하중을 못 버티고 옆으로 붕괴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안 교수에 따르면 잭 서포트(지지대)를 아래쪽에 설치하고 상부에서부터 한층씩 철거해 내려오는 '탑다운(Top-Down)' 방식이 가장 안전하고 일반적인 방식이다. 상부 철거를 할 땐 토사 위로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크레인으로 중장비를 올리는 것이 더 안전하다. 그러나 광주 학동과 잠원동의 경우 모두 지상에서 측면부터 공사를 하다 건물이 한쪽으로 무너졌다. 안 교수는 “인근에 사람이나 건축물이 전혀 없는 논밭이면 모를까, 도시에서 측면 철거방식을 쓴 건 상식에서 벗어난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종 안전핀' 감리는 현장에 없었다 

지난 2019년 7월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있는 지상 5층, 지하 1층짜리 건물이 철거 작업 도중 붕괴됐다. 이 사고는 광주 재개발지역 건물붕괴 사고와 유사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연합뉴스.

지난 2019년 7월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잠원동에 있는 지상 5층, 지하 1층짜리 건물이 철거 작업 도중 붕괴됐다. 이 사고는 광주 재개발지역 건물붕괴 사고와 유사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연합뉴스.

두 사고 모두 공사를 최종 관리·감독할 감리도 현장에 없었다. 잠원동 사고 조사 결과 감리인은 현장에 상주하지 않고 일주일에 한 번 꼴로 현장에 나갔다. 제대로 된 자격증이 없는 감리자의 친동생이 현장에 나간 점도 드러났다.

광주 학동 사고도 마찬가지였다. 철거작업의 원청업체인 현대산업개발 권순호 대표이사는 10일 광주시청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사고 났을 때 감리자가 없었던 것으로 파악됐다”며 “철거 계획서에 따라 제대로 공사가 될 것이냐 아니냐 판단은 초반에 이뤄지기 때문에 비상주 감리로 계약됐다”고 설명했다.

안 교수는 "공사 과정에 대한 일차적인 책임은 현장 안전관리자가 지지만, 그 현장관리자를 감독하고 만일의 경우 구청에 공사중지를 신청하는 '최종 안전핀'이 감리의 역할"이라며 "안전핀 하나가 빠진 상황에서 공사한 거나 다름없다"고 지적했다.

시공사·감리자·관할지자체 책임 논란

임택 광주 동구청장이 10일 오후 광주 동구청 회의실에서 열린 17명 사상자 발생 학동4구역 붕괴 사고 건물 해체 관련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뉴스1.

임택 광주 동구청장이 10일 오후 광주 동구청 회의실에서 열린 17명 사상자 발생 학동4구역 붕괴 사고 건물 해체 관련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뉴스1.

광주 동구청은 "이번주 중으로 시공사와 감리자를 사법당국에 고발조치 하고 현장 시공사에 대해선 해체계획서 미준수로 처벌할 것"이라고 강경대응을 시사했다. 동구청이 이날 공개한 '건물 해체계획서 주요내용’에 따르면 철거 업체인 ㈜한솔기업은 “잔재물 위로 이동 후 5층에서부터 외부벽, 방벽, 슬라브 순서로 해체한다”며 “3층까지 해체 완료 후 1~2층 해제작업을 진행한다”고 했다.

그러나 시민들이 제보한 영상과 사진을 종합해보면, 굴착기가 건물 4~5층을 그대로 둔 채 3층 이하 저층 구조물을 부수는 모습이 포착됐다. 동구청은 철거 업체가 작업 순서를 지키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이 역시 잠원동 사고 당시 철거업체가 지지대를 설치하지 않고 각 층 계단부터 없앤 것과 흡사하다.

안형준 교수는 “해체 계획서에는 '폐기물을 바로 반출할 수 있도록 잔재물을 정리한다'고 돼있지만 결국 제때 정리하지 않아 하중이 쏠린 것도 건물이 옆으로 쓰러진 원인일 수 있다”고 봤다. 안 교수는 이어 “비용을 최대한 낮춘 하청 업체들이 공사를 수주하는 '최저입찰제' 구조도 문제”라며 “잠원동 사고에서도 하루 30만원인 크레인 대여료를 아끼려고 잔여물을 쌓다 건물이 하중을 못 이겨 사고가 났다”고 지적했다.

광주 재개발지역 붕괴사고의 관할지자체인 광주 동구청이 공개한 '해체 계획서' 요약본. [광주 동구청]

광주 재개발지역 붕괴사고의 관할지자체인 광주 동구청이 공개한 '해체 계획서' 요약본. [광주 동구청]

허정원 기자 heo.jeong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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