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 Review] 세계경제가 시한폭탄 깔고 앉았다고?

중앙일보

입력 2021.06.10 00:04

업데이트 2021.06.10 0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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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국제 유가가 강세를 이어가고 있다. 8일(현지시간) 미국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 원유(WTI)는 전날보다 1.2% 상승한 배럴당 70.05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WTI가 배럴당 70달러를 넘은 건 2018년 10월 이후 2년 8개월 만이다. 영국 런던ICE선물거래소에서 브렌트유는 지난 1일 배럴당 70.25달러로 오르며 2년여 만에 최고가를 기록했다.

코로나로 시든 경기 살리기 위해
각국이 쏟아낸 유동성 흘러넘쳐
석유·원자재·곡물값 일제히 상승
40년 전 최악 인플레 공포 데자뷔

Fed, 2년 뒤에야 금리인상 가능성
“너무 늦어”“지나친 우려” 엇갈려

제롬 파월 Fed 의장

제롬 파월 Fed 의장

다른 원자재 가격도 강세다. 자동차·가전제품 등 다양한 산업에서 쓰는 구리 가격은 지난달 초 10년 만에 최고를 기록했다. 중국 칭다오항에서 철광석 가격은 지난달 12일 t당 237.58달러로 역대 최고였다. 칭다오항은 세계에서 철광석 물동량이 가장 많은 항구다. 철광석 가격은 3년 전만 해도 t당 평균 69.65달러에 머물렀다. 옥수수·대두·밀 등 주요 곡물 가격도 지난달 8년 만에 최고였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원유·원자재·곡물 같은 상품 가격이 일제히 상승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이라고 전했다.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가격 상승은 소비자 물가의 전반적인 상승세로 이어질 수 있다. 제품의 생산·유통·판매 등 단계별로 생산자의 비용이 올라가기 때문이다.

지난 4월 미국의 소비자 물가는 1년 전보다 4.2% 상승했다. 월간 상승 폭으로는 2008년 9월(4.9%) 이후 최고였다. 뉴욕 월가의 전문가들은 미국 노동부가 10일 발표하는 지난달 소비자 물가 상승률이 4.7% 수준에 이를 것으로 보고 있다. 국내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지난 4월(전년 동월 대비 2.3%)에 이어 지난달(2.6%)에도 2%를 넘어섰다. 특히 지난달에는 석유류(23.3%)와 농·축·수산물(12.1%)의 상승 폭이 컸다.

미국 소비자 물가 지수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미국노동부]

미국 소비자 물가 지수 그래픽 이미지. [자료제공=미국노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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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세계 경제는 각국 정부의 대규모 재정 지출과 오일쇼크 등 악재가 겹치며 매우 높은 수준의 인플레이션을 경험했다. 71년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당시)이 더는 달러를 금으로 바꿔주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달러 가치는 급락하고 물가는 급등했다. 베트남 전쟁으로 재정적자가 심각했던 미국이 달러의 금본위제를 포기하면서 발생한 충격을 ‘닉슨 쇼크’라고 부른다. 이후 미국의 물가상승률은 두 자릿수를 넘어섰다.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가 기준금리를 연 20%대까지 끌어올리면서 물가는 겨우 안정을 찾았다. 대신 고금리 정책의 여파로 주택시장에선 집값이 하락하고 고용시장에선 일자리가 줄어드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선 최근 국제 유가와 원자재 가격 상승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지난해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침체한 경기를 되살리기 위해 천문학적인 돈을 풀었다. 시중에 넘쳐나는 돈이 경기 회복 흐름과 만나면 물가 상승 폭은 커질 수 있다.

주요 물가 상승률

주요 물가 상승률

과거 Fed는 과도한 물가 상승을 억제하는 ‘인플레 파이터’ 역할을 자임했다. 하지만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고비로 달라진 모습을 보인다. 시중에 돈을 풀어야 할 때는 신속하고 과감한 행동에 나서지만 긴축으로 돌아설 때는 조심스럽게 움직이는 모습이다. 지난해 Fed는 평균 물가목표제를 제시하기도 했다. 일정한 기간에 평균적인 물가 수준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것을 정책 목표로 한다는 얘기다. 일시적으로 물가가 많이 오르는 일이 생겨도 섣불리 기준금리를 올리거나 하지는 않겠다는 뜻이 담겨 있다. 성급하게 통화정책을 긴축으로 돌렸을 때 자칫 경기 회복세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우려하는 분위기다.

인플레이션을 우려하는 목소리는 곳곳에서 나온다. 독일 도이체방크는 지난 7일 보고서에서 “Fed를 비롯한 각국 중앙은행의 대응이 늦어져 세계 경제와 금융시장에 상당한 후폭풍이 있을 것”이라며 “세계 경제가 ‘시한폭탄’을 깔고 앉아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Fed가 2023년에 기준금리를 인상한다면 너무 늦은 대응”이라고 덧붙였다. 독일 금융회사인 알리안츠의 모하메드 엘 에리언 선임 고문은 “역사적으로 Fed가 뒤늦게 대응하면 경기 침체가 뒤따랐다”고 말했다. Fed가 선제적으로 기준금리를 올려야 할 타이밍을 놓치고 뒤늦게 큰 폭으로 금리를 올렸던 게 경기 침체로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다른 시각도 있다. 미국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현재 인플레이션 우려는 과민 반응일 수 있다. 이미 금융시장은 인플레이션 우려를 반영하고 있는 것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잘못된 통화정책에 따른 나쁜 인플레이션이 아니라 경제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생기는 좋은 인플레이션일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Fed는 오는 15~16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를 열고 통화정책 방향을 논의한다. 금융시장에선 Fed가 시중에 돈을 푸는 속도를 늦추는 ‘테이퍼링’(자산매입 축소)을 언급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미국 CNBC 방송은 “지난 몇 주 동안 Fed 관계자들의 발언으로 볼 때 이번 FOMC에서 테이퍼링을 논의할 것으로 보인다”며 “Fed가 올해 말이나 내년 초 자산매입 축소를 시행할 수 있다”고 보도했다.

이승호 금융팀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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