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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된 영웅 위한 다섯 발의 예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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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스리랑카전 선제 결승골을 터뜨리는 장신 공격수 김신욱(맨 오른쪽). [뉴스1]

스리랑카전 선제 결승골을 터뜨리는 장신 공격수 김신욱(맨 오른쪽). [뉴스1]

9일 한국축구대표팀이 스리랑카를 상대로 2022 카타르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H조 5차전을 치른 고양종합운동장. 0-0이던 전반 15분, 김신욱(33·상하이 선화)이 상대 페널티 박스 정면에서 오른발 발리 슈팅으로 선제골을 터뜨렸다. 담담한 표정으로 한국 벤치로 향한 김신욱은 최태욱 코치에게 붉은색 대표팀 홈 유니폼 상의를 건네받아 펼쳐들었다. 등번호 6번. 그리고 ‘S C YOO’라 적힌 영문 이니셜. 췌장암 투병 끝에 7일 세상을 떠난 故 유상철 전 인천 유나이티드 감독을 추모하는 작별의 세리머니였다.

카타르WC예선 스리랑카전 5-0 #故 유상철 추모 분위기 속 쾌승 #김신욱 멀티골, 정상빈 데뷔골 #벤투호 4승1무 H조 선두 질주

유 감독은 한국 축구의 영웅이었다. 2002 한·일 월드컵 4강 신화의 주역으로 평생 축구를 위해 헌신했다. 2019년 11월 췌장암 4기 판정을 받고도 인천 지휘봉을 내려놓지 않을 정도로 축구만 생각했다. 그는 “반드시 건강한 몸으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3년 여 투병 끝에 눈을 감았다.

경기 전 열린 故 유상철 감독 추모 행사. [뉴시스]

경기 전 열린 故 유상철 감독 추모 행사. [뉴시스]

스리랑카전은 시종일관 유 감독 추모 분위기 속에서 열렸다. 출전 선수 모두 검정색 추모 밴드를 오른팔에 착용했다. 킥오프에 앞서 유 감독 헌정 영상을 상영한 뒤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경기장 찾은 4008명의 축구 팬들도 유 감독의 현역 시절 등번호 6번을 기려 전반 초반 6분간 응원을 멈췄다. 축구대표팀 서포터스 붉은 악마는 경기장 스탠드에 ‘우리의 외침에 투혼으로 답한 그대를 기억합니다. 고 유상철 감독님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글귀를 새긴 현수막을 내걸었다. 유 감독이 마지막으로 지휘봉을 잡은 인천의 서포터스 파랑검정도 ‘그대와 함께한 시간들 잊지 않겠습니다. 감사합니다’라며 고인에게 작별 인사했다. 유 감독의 생전 모습이 담긴 대형 걸개도 관중석에 내걸었다.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39위 한국은 약체 스리랑카(204위)를 상대로 시종일관 일방적인 공격을 퍼부으며 5-0으로 크게 이겼다. 파울루 벤투(52·포르투갈) 감독은 에이스 손흥민(29·토트넘)을 쉬게 하는 대신 김신욱, 황희찬(25·잘츠부르크), 이동경(24·울산) 등 백업 선수 대부분을 기용했다. 5일 예선 4차전 투르크메니스탄전(5-0승)에 나섰던 베스트11 중 남태희(30·알사드)만 남기고 10명을 바꾼 ‘플랜 B’였는데 적중했다. 김신욱은 선제골에 이어 전반 43분 페널티킥 골을 추가하며 ‘스리랑카 킬러’의 면모를 과시했다. 김신욱은 2019년 10월 스리랑카전에서도 4골을 퍼부었다. 전반 22분엔 이동경이 왼발로, 후반 8분엔 황희찬이 오른발로 한 골씩 보탰다. ‘K음바페’(한국판 킬리안 음바페)로 불리는 19살 특급 유망주 정상빈(19·수원 삼성)도 후반 32분 골맛을 봤다. 김신욱과 교체돼 그라운드를 밟은지 불과 5분 만이다. 정상빈의 A매치 데뷔전 데뷔골. 이동경의 슈팅을 골문 앞에서 왼발로 방향만 바꿔 골망을 흔들었다. 올 시즌 K리그1에서 맹활약 중인 송민규(22)와 강상우(28·이상 포항)도 A매치 데뷔전을 치렀다. 한국은 스리랑카와 역대 전적에서 3전 전승(1979년 6-0 승, 2019년 8-0 승)으로 절대 우위를 이어갔다.

4승 1무의 한국(승점 13, 골득실 +20)은 2위 레바논(승점 10, 골득실 +4)에 승점 3점 차로 앞서 H조 선두를 지켰다. 한국은 13일 레바논과 최종전을 남겨두고 있지만, 사실상 조 1위와 최종예선행을 굳혔다. 질 경우 승점이 같아지지만, 골득실에서 레바논에 크게 앞서기 때문이다. 2차 예선에선 승점이 같을 경우 골득실-다득점-페어플레이 점수-추첨 순으로 순위를 가린다. 조 1위(총 8개 조) 팀은 최종 예선에 직행한다. 각조 2위 8개 팀 중 상위 4개 팀도 최종 예선 출전권을 얻는다. 스리랑카전에 나서지 않고 휴식을 취한 대표팀 주장 손흥민은 "경기장에 와준 모든 분들께 감사하다. 코로나19 상황이 좋아져 만원 관중 속에서 경기할 수 있는 날을 기다린다. 마지막 레바논전에도 많은 응원 부탁드린다.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뛰겠다”고 약속했다.

고양=피주영 기자 akap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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