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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거 인멸 시간 주는 '소잃고 외양간 고치기' 수사…곳곳에 허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국방부 검찰단이 8일 성추행 피해 여성 부사관 사망 사건 관련, 부대 관계자들을 줄줄이 소환해 조사를 벌였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영안실에서 성추행 피해 신고 후 극단적 선택을 한 이모 공군 중사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다. 뉴스1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국군수도병원 장례식장 영안실에서 성추행 피해 신고 후 극단적 선택을 한 이모 공군 중사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다. 뉴스1

이날 소환된 공군 제20전투비행단 소속 준위와 상사는 지난 3월 2일 피해자 이모 중사가 성추행을 당한 뒤 이를  신고하자 회유ㆍ은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함께 조사를 받는 하사는 성추행 사건이 벌어진 차량의 운전자다. 그는 군사경찰 조사에서 피해 상황을 전혀 알지 못했다고 진술했다. 그러나, 차량 블랙박스엔 성추행 당시의 정황이 녹음됐다.

군 검찰은 이들을 참고인 신분으로 불렀지만, 조사 과정에서 형사 입건한 뒤 피의자 신분으로 전환했다. 이들의 휴대전화를 확보해 디지털 포렌식을 벌일 예정이다. 구속영장 청구 여부도 검토 중이다.

군 검찰은 또 이날 공군본부 군사경찰단과 제20전투비행단 군사경찰대대를 압수수색했다.

부승찬 국방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군검찰의 수사 대상에 서욱 국방부 장관이 포함되느냐’라는 질문에 “일단 성역 없이 수사하고 있다”면서 “관련 여부가 나와 봐야 하겠지만, 그 원칙하에 지금 수사에 임하고 있다”고 답했다. 앞서 국방부는 지난 4일 사의를 표명한 이성용 공군참모총장에 대해서도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성역 없이 수사한다는 원칙”이라고 밝혔다.

이 중사는 선임 부사관에게 성추행당한 사실을 알렸지만, 군이 오히려 은폐하려 하자 지난달 22일 극단적 선택을 했다.

군 검찰이 성추행 사건 발생 석 달이 지난 뒤 수사에 박차를 가한 모양새다. 하지만,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식 수사라는 비판이 군 안팎에서 들린다. 게다가 수사 과정에서 곳곳에 허점을 보인다는 지적도 나온다.

군 검찰은 이날 외에도 7일엔 제20전투비행단을, 지난 4일엔 공군본부 군사경찰단과 제15특수임무비행단을 각각 압수수색했다. 제20전투비행단은 성추행 사건이 일어난 부대며, 제15전투비행단은 피해자 이 중사가 전출한 부대다. 그런데, 군의 업무용 PC엔 파일을 파기하는 프로그램이 깔려있다. 이 프로그램으로 문서 사건 관련 문서 파일을 삭제하면 되살릴 수 없다고 한다.

핵심 부대를 뒤늦게 압수수색한 것도 모자라 관련자가 증거를 없앨 수 있는 시간까지 줬다는 논란을 자초했다. 국방부 관계자는 “법률 검토를 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고 말했다. 그러나 부장검사 출신의 변호사는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관련자가 증거를 인멸하는 것을 막기 위해 압수수색은 동시다발적으로 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며 “군검찰의 수사는 밀행성 원칙에 어긋난다”고 비판했다.

또, 늑장ㆍ부실 수사 의혹의 대상인 공군 검찰에 대한 압수수색은 아직 이뤄지지 않고 있다.

앞서 공군 검찰은 이 중사를 성추행한 혐의를 받고 있는장모 중사(구속)의 휴대전화에 대한 압수수색도 늦장 집행했다. 압수수색 영장을 지난달 27일 발부받고도 집행을 미뤘다. 대신 이 중사가 지난달 31일 공군 검찰에 출석했을 때 그 휴대전화를 임의제출 형식으로 받았다.

군 법무관 출신의 변호사는 “공군 검찰이 장 중사 사건을 중대하다고 봤으면 바로 집행했을 것”이라며 “그만큼 안이하게 생각했다는 방증”이라고 말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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