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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재자 딸→퍼스트레이디→첫 女대통령? 한국 빼닮은 페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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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와 경기 침체로 혼란을 거듭한 페루의 새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6일(현지시간) 시작됐다. 게이코 후지모리(46)와 페드로 카스티요(51)가 접전을 펼치고 있다. AFP=연합뉴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와 경기 침체로 혼란을 거듭한 페루의 새 대통령을 뽑는 선거가 6일(현지시간) 시작됐다. 게이코 후지모리(46)와 페드로 카스티요(51)가 접전을 펼치고 있다. AFP=연합뉴스

10대에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전직 대통령의 딸 vs 빈농 가정에서 태어난 전직 초등교사.

출신과 이념이 정반대인 두 후보가 맞붙은 페루의 대통령 선거 결선투표가 6일(현지시간) 시작됐다. 두 후보는 우파 민중권력당의 게이코 후지모리(46)와 좌파 자유페루당의 페드로 카스티요(51)다. 인구 대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망자 숫자가 전 세계 1위를 기록하는 등 큰 혼란을 겪고 있는 페루의 민심도 극단으로 양분된 상태다.

이날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투표 종료 직후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발표한 출구 조사 결과에서 후지모리가 50.3%, 카스티요가 49.7%를 기록했다. 오차범위는 ±3%포인트로, 최종 결과가 발표될 때까지 두 후보의 접전은 치열할 것으로 전망된다.

게이코 후지모리는 전직 페루 대통령 알베르토 후지모리의 장녀다. '독재자의 딸'이라는 별칭이 그를 늘 따라다닌다. AP=연합뉴스

게이코 후지모리는 전직 페루 대통령 알베르토 후지모리의 장녀다. '독재자의 딸'이라는 별칭이 그를 늘 따라다닌다. AP=연합뉴스

근소한 차로 앞서고 있는 게이코 후지모리는 보수 기득권 정치인이 모인 민중권력당의 대표이다. 그는 일본 출신 이민자 2세인 전직 페루 대통령 알베르토 후지모리(83)의 장녀다. 아버지 알베르토는 2차 세계대전 전 페루에 이민 온 부모님 아래서 자라 라틴아메리카에서 사상 처음으로 대통령이 된 아시아계 인물이다. 그는 프랑스와 미국에서 수학한 뒤 교수 생활을 하다가 전국대학총장연합회 회장이 된 것을 계기로 정계에 뛰어들었다.

1990년 대통령에 당선됐지만, 빈부 격차와 실업률 등 경제 문제로 민심을 잃을 위기에 처하자 군부를 동원해 국회를 해산시키는 등 철권통치를 이어갔다. 이후 개헌을 강행하며 10년 장기집권 했고, 2010년 민간인 학살과 부패 등의 혐의로 징역 25년형을 선고 받고 투옥 중이다.

아시아계로는 최초로 남미 대통령이 된 알베르토 후지모리. 그는 민간인 학살 등의 혐의로 징역 25년형을 선고 받고 투옥 중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아시아계로는 최초로 남미 대통령이 된 알베르토 후지모리. 그는 민간인 학살 등의 혐의로 징역 25년형을 선고 받고 투옥 중이다. 로이터=연합뉴스

이 때문에 딸인 게이코에겐 ‘독재자의 딸’이라는 꼬리표가 늘 따라다녔다. 아버지 후광 덕에 정치인이 됐지만, 반대로 아버지의 인권 범죄 등으로 반감을 사기도 한 셈이다. 게이코는 94년 부모가 이혼한 이후 어머니를 대신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수행했다. 그 덕에 후지모리 지지자들은 그에게 열광했다. 2005년 아버지가 체포된 뒤 추종 세력의 힘을 받아 국회의원이 됐고, 지난 2011년과 2016년엔 대선에도 출마했지만 떨어져 세 번째 대권 도전에 나섰다.

그에 맞서는 카스티요는 극과 극이다. 카스티요는 페루 북부의 한 농촌에서 태어나 25년 동안 초등교사로 산 평범한 빈농의 자식이다. 그가 정치에 발을 들인 건 지난 2017년, 페루 교사 총파업 시위를 주도하면서다. 이번 대선 초반엔 유력 후보로 거론되지 않았지만, 지역균형 발전 등을 공약으로 제시하면서 상대적으로 가난한 도시에서 큰 표를 받아 단숨에 결선 후보에 올랐다. 블룸버그통신은 “카스티요의 부상은 라틴 아메리카를 휩쓸고 있는 정치적 격변의 결과”라며 “지난해 경제성장률이 -11%로 추락한 데다, 부의 재분배도 고르지 되지 않으면서 민심이 이반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페루의 가난한 농부 집안에서 태어난 페드로 카스티요. 초등교사 출신인 그는 지역균형 발전 등의 공약으로 단숨에 유력 대통령 후보로 떠올랐다. 로이터=연합뉴스

페루의 가난한 농부 집안에서 태어난 페드로 카스티요. 초등교사 출신인 그는 지역균형 발전 등의 공약으로 단숨에 유력 대통령 후보로 떠올랐다. 로이터=연합뉴스

하지만 카스티요의 대선 공약을 두고 호불호도 심하게 갈린다. 그는 최고 사법기관을 철폐하고 석유·가스·수력 등 주요 에너지 사업을 국유화하겠다는 경제 개혁안을 내놨다. 국가가 과도하게 개입해 베네수엘라 등 남미의 많은 국가가 겪고 있는 경기 침체에 빠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현지 언론에 따르면, 두 후보가 엎치락뒤치락하는 만큼 첫 개표 결과 역시 이날 밤늦게나 나올 것으로 보인다. 당선자는 오는 7월부터 5년간 집권하게 된다. 로이터는 “두 후보 모두 뚜렷한 우위를 점하지 못하는 이유는 수십 년 간의 부패와 불안정으로 인한 정치 계급에 대한 불신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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