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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용 공참총장 사의, 문 대통령 80분 만에 수용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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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39호 03면

이성용 공군 참모총장이 4일 성추행 피해 부사관 사망 사건에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 총장이 사의를 밝힌 지 1시간20분 만에 사의를 수용했다.

성추행 피해 여군 사망 파문 확산 #청와대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서욱 국방장관 경질 관측도 제기 #군검찰, 공군본부 등 압수수색 #국방부 “무고 땐 징계” 지침 논란

이 총장은 이날 오후 입장문을 내고 “일련의 상황에 대해 무거운 책임을 통감한다”며 물러나겠다는 뜻을 밝혔다. 이 총장은 “국민 여러분께 심려를 끼친 데 대해 사과드린다”며 “무엇보다 고인에게 깊은 애도를 표하며 유족들께 진심 어린 위로의 뜻을 전한다”고 덧붙였다.

충남 지역 50여 개 시민단체와 정의당 충남도당 당원들이 4일 충남 서산시 공군 20전투비행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군 부사관 성추행 피해자 사망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한 뒤 전투비행단 정문에 국화를 꽂으며 고인을 애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충남 지역 50여 개 시민단체와 정의당 충남도당 당원들이 4일 충남 서산시 공군 20전투비행단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공군 부사관 성추행 피해자 사망 사건에 대한 철저한 수사를 촉구한 뒤 전투비행단 정문에 국화를 꽂으며 고인을 애도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로써 이 총장은 지난해 9월 23일 제38대 공군총장으로 취임한 지 8개월여 만에 불명예 퇴진하게 됐다. 재임 기간도 255일로 ‘역대 최단명 총장’ 기록을 세우게 됐다. 재임 기간이 가장 짧았던 공군 참모총장은 이양호 제21대 총장으로 재임 기간은 262일이었다. 이날 이 총장의 사의 표명과 즉각 수용이 전날 문 대통령의 엄정 수사 지시 후 하루 만에 일사천리로 진행되자 군 안팎에선 사실상 경질 인사라는 해석이 나왔다.

하지만 이 총장의 사의가 수용됐다고 해서 사표까지 수리된 것은 아니다. 이와 관련,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문 대통령의 사의 즉각 수용 사실을 브리핑하며 “사표 수리와 관련한 절차는 최대한 신속하게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군 참모총장은 임면권자인 대통령이 일종의 사표인 전역 지원서를 수리해야 전역 절차가 마무리된다. 이 총장은 이날 국방부에 전역 지원서를 제출했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이성용

이성용

전역 지원서가 아직 수리되지 않은 것은 부사관 사망 사건과 관련한 보고·조치 과정에서 이 총장이 책임져야 할 부분이 있는지 조사해야 하기 때문이다. 국방부와 군 검경은 전날 합동수사단을 꾸리고 공군 성추행 의혹을 원점에서 다시 수사하기로 했다. 군 지휘부가 어떻게 보고받고 조치했는지도 수사 대상에 포함돼 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는 “고위 공직자가 사표를 제출할 경우 재직 중 부정·비리와 관련된 사항이 없는지 관련 기관의 조사가 진행되는 게 먼저”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히 이 건은 이 총장 본인이 조사나 수사를 받아야 할 사항이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절차를 모두 거친 뒤 이 총장의 전역 지원서가 청와대로 넘어오는 게 통상적인 절차라는 설명이다.

청와대는 그동안 고위 공직자의 비위 행위가 있을 때 사표까지 수리한 뒤 이를 공식 발표하곤 했다. 택시 기사 폭행 사건으로 수사를 받는 이용구 전 법무부 차관의 경우에도 전날 문 대통령이 사표를 수리한 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이를 공개했다.

이런 관례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이날 이 총장의 사의 수용을 먼저 발표한 것은 이번 사건에 대한 문 대통령의 엄중 처리 의지를 보여주기 위함으로 풀이된다. 청와대 관계자도 “보고·조치 과정의 문제를 조사한 뒤 전역 지원서를 수리하려면 최소한 일주일은 걸린다”며 “문 대통령이 먼저 사의를 수용함으로써 책임을 엄하게 묻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이 총장의 사의 표명 이후 군 주변에선 서욱 국방부 장관도 경질 대상에 포함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됐다. 문 대통령이 지난 3일 “최고 상급자까지 보고와 조치 과정 등 지휘 라인 문제도 살펴보고 엄중하게 처리하라”고 지시한 만큼 경질 폭이 더욱 커질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이에 대해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이날 “현시점에서 경질 문제를 언급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도 “최고 지휘 라인 누구도 예외일 수 없다. 사건 보고와 이후 조치 과정 등을 살펴본 뒤 문제가 있다면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엄정하게 처리할 것”이라며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국방부 검찰단은 이날 충남 계룡대 공군본부 군사경찰단과 제15특수임무비행단 군사경찰대대 등에 대해 동시 다발적인 압수수색을 벌였다. 지난 1일 공군에서 사건을 이관받은 지 사흘 만에 전격 압수수색에 나서는 등 수사에 속도를 내는 모습이다. 검찰단은 지난 3월 초 성추행 피해 부사관이 소속 부대인 제20전투비행단에 피해 사실을 신고한 뒤 군사경찰이 사건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공군의 초동 수사 부실과 늑장 보고 의혹 등을 입증하기 위한 증거를 확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한편 군 당국이 이번 사건과 관련해 군내 성폭력 특별 신고를 독려하면서 “무고형 고발은 상관 명예훼손죄를 적용해 엄중히 처벌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것으로 확인돼 논란이 일고 있다. 현장에서도 “사실상 신고하지 말라는 것 아니냐”는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국방부는 이번 사건의 파문이 확산되자 오는 16일까지 성폭력 특별 신고 기간을 운영한다는 지침을 지난 3일 일선 부대에 하달했다. 복수의 현장 지휘관들에 따르면 여기에는 장병 기본권 보장과 군 기강 확립을 강조하는 별도의 지침이 포함됐는데, 이 지침에는 “무고형 고발은 엄중히 징계하고 특히 상관에 대한 무고는 군형법상 상관 명예훼손죄를 적용해 처벌할 것”이란 단서가 달렸다.

이와 관련해 법조계에서는 군 성폭력 사건의 경우 가해자가 직속 상관이거나 더 높은 계급의 지휘관인 경우가 대부분인 현실에서 이번 지침은 군대 조직의 이 같은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것이란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김지진 변호사는 “무고죄 처벌과 상관 명예훼손죄를 거론한 것 자체만으로도 성폭력 피해자에게는 무언의 압박이 될 것”이라며 “사실상 피해자에게 신고하면 불이익을 주겠다는 말이나 마찬가지”라고 우려를 나타냈다.

논란이 확산되자 군 관계자는 “무고죄 관련 언급은 기존에 수차례 통보했던 성폭력 관련 지침에도 거론됐던 사항으로 이번 사건과는 무관하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성폭력에 대한 군 당국의 안이한 시각이 이번 지침에서 또다시 드러났다는 게 군 안팎의 공통된 지적이다.

윤성민·박용한·정혜정 기자 yoon.sung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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