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초대형 예산안 계류시킨 민주당 보수의원…바이든도 눈치본다

중앙일보

입력 2021.06.04 15:34

업데이트 2021.06.04 21:38

조 맨친 민주당 상원의원. [AP=연합뉴스]

조 맨친 민주당 상원의원. [AP=연합뉴스]

"털사 연설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그에게 인내심을 잃은 것처럼 보였다" -더타임스

50대 50 동률 美상원서 '키맨'된 조 맨친
바이든 역점 법안 줄줄이 계류시켜
바이든, 결국 인프라 예산 타협안 제시

초대형 인프라 투자 예산안을 밀어붙이고 있는 조 바이든(78) 미국 대통령이 넘어야 할 가장 큰 산은 공화당이 아닌 민주당 내부에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 등 다수 매체들이 3일(현지시간) 조명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우선순위에 둔 입법안들이 상원에 줄줄이 계류된 배후에 민주당의 한 70대 의원이 있다는 얘기다. 워싱턴 정가에서는 대통령보다 힘이 센 또 다른 '조'가 있다는 평가(가디언)도 나온다.

조 맨친(73·웨스트버지니아) 민주당 상원의원의 얘기다. 민주당과 공화당 의석 비율이 50대 50으로 나눠진 미 상원에서 양당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법안을 통과시키려면 단 한 사람의 이탈표도 나와서는 안 된다. 그는 바이든 대통령이 밀어붙이고 있는 법안들을 자신의 중도적 정치 성향에 비춰 깐깐한 눈으로 바라보며 쉽사리 통과의 길을 열어주지 않고 있다. 그는 스스로를 '온건한 보수주의자'라고 소개한다. '초당파적인 의원', '민주당 내에서 가장 보수적인 성향의 의원'이란 게 미 정가의 평가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런 상황에 대한 아쉬움을 지난 1일 오클라호마주(州) 털사 인종 대학살 100주기 연설 도중 토로했다. 그는 "TV에 나오는 사람들이 '바이든은 일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면서 "바이든은 하원에서 4표의 과반(민주당) 의석만 가지고 있고, 상원에서는 동률(민주당과 공화당 의석수)인데 민주당 의원 2명(맨친, 키어스틴 시너마 의원)이 공화당 동료들과 함께 더 많이 투표했다"고 말했다.

WP는 바이든 대통령이 대중 앞에서 여당 의원을 공격하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전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일(현지시간) 오클라호마주(州) 털사 인종학살 사건 100주기를 맞아 현지를 찾아 연설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지난 1일(현지시간) 오클라호마주(州) 털사 인종학살 사건 100주기를 맞아 현지를 찾아 연설을 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맨친은 최저임금 인상, 선거법 개편, 신원조회 확대 법안 제정, 법인세율 인상 등 바이든 대통령의 주요 입법 과제에 반대하고 있다. 공화당이 민주당 법안 통과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방법인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폐지하자는 민주당 내 주장에도 반대하고 있다.

이런 맨친 의원이 인프라 예산안 세부사항을 반대하면서 바이든 대통령도 예산안을 강행처리하는 대신 공화당과 타협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당초 2조2500억달러 규모의 예산안을 내놓으면서 세원을 확보하기 위해 법인세율을 21%에서 28%로 상향하는 방안을 발표했던 그였다. 하지만 재정 건전성과 기업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공화당의 반대와 법인세율 28%는 너무 과하다는 맨친 의원 등의 의견을 고려해 예산안 규모를 1조7000억 달러로 낮춰서 공화당에 타협안을 내밀었다. 법인세 28% 상향 대신 모든 기업이 최소 15%의 법인세를 내도록 하는 방안을 새로 내놨다.

상원에서 여야 협상이 무산되면 민주당은 예산조정절차(reconciliation)를 동원해 강행 처리를 시도할 수도 있다. 공화당이 필리버스터 카드를 쓰면 법안 통과를 위해 60석의 표가 필요하지만, 예산조정절차로 처리하면 표결에서 과반수만 얻어도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다. 앞서 민주당은 1조9000억달러 규모의 코로나19 지원 예산도 이 절차를 통해 단독으로 통과시켰다. 민주당과 공화당이 각각 찬성 50표, 반대 50표를 던진 상태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1표를 행사했다. 하지만 이런 식으로 처리할 경우 당내 반란표가 한표도 나와서는 안 된다.

맨친 의원은 지난달 7일 WP 기고문을 통해 인프라 투자 예산안을 예산조정절차로 처리하는 것을 반대한다고 일찌감치 밝힌 바 있다.
더구나 남은 올 한해 민주당이 이 절차를 쓸 수 있는 횟수는 1번 남았다는 상원 사무처장의 유권해석도 나온 상태다. 민주당은 인프라 예산 외에도 바이든 대통령의 미국 가족계획 예산안(1조7000억 달러 규모)도 처리해야 한다.

조 맨친 민주당 상원의원.[AP통신=연합뉴스]

조 맨친 민주당 상원의원.[AP통신=연합뉴스]

맨친 의원은 이 외에도 공화당의 '투표권 제한법' 저지를 위한 민주당의 선거법안 통과에도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고 있어 정가의 눈이 그에게 쏠리고 있다고 WP는 전했다. 그는 민주당이 밀어붙이는 선거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이유 중 하나로 "초당적 동의가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투표권 제한법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지난해 우편투표의 투명성에 문제를 제기한 데 따라 공화당 의원들이 만든 법안이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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