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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부냐 아이스크림이냐, 순두부젤라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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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두부젤라토와 인절미젤라토. 손민호 기자

순두부젤라토와 인절미젤라토. 손민호 기자

초당 순두부는 강원도 강릉의 대표 음식이다. 강릉에서 순두부를 먹어본 사람은 많지만, 내력까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순두부에 밴 사연도 곡진하다.

초당(草堂)은 강릉 부사를 지낸 허엽(1517∼1580)의 아호다. 강릉 부사 시절 초당은 관청 뜰의 우물물로 두부를 만들어 먹었다. 끓인 콩물을 응고시켜 두부로 만들려면 간수를 넣어야 하는데, 강릉에서는 소금이 귀했다. 초당은 바닷물을 길어와 간수로 썼다. 초당 두부가 탄생한 비화다.

한국전쟁 직후 지금의 초당동에는 피란민이 모여 살았다. 먹고살 게 마땅치 않았던 피란민이 만들어 팔았던 게 두부다. 예전처럼 바닷물로 간수를 썼다. 초당 두부는 1970년대 이후 상업화됐다. 초당 순두부 마을의 원조로 통하는 ‘초당할머니순두부’가 1979년 영업을 시작했다.

여행기자에게 초당 순두부는, 오랜 세월 하얗거나 빨간 순두부찌개와 모두부 한쪽이었다. 요즘 젊은 세대는 아니다. 전혀 다른 방식으로 초당 순두부를 즐긴다. 자극적인 맛의 짬뽕 순두부와 한상 거하게 나오는 순두부전골 정식이 더 인기다. 강릉시 강근선 관광과장에 따르면 초당에만 현재 서른 곳이 넘는 순두부 집이 모여 있다.

요즘엔 순두부젤라토가 초당 순두부 마을을 평정하는 분위기다. 인스타그램에 관련 게시물이 6만 개가 넘는다. 순두부젤라토를 맨 처음 개발한 ‘초당소나무집’을 찾아갔다. 어머니 최문선(61)씨 가게에서 아들 김범준(32)씨가 2017년 만든 게 시초라고 한다. 독일로 축구 유학을 갔다왔던 아들이 어머니의 순두부로 젤라토를 만들고 있었다.

김씨에 따르면 순두부젤라토는 평창올림픽 이후 젊은 세대가 강릉을 찾으면서 인기가 폭발했다. 코로나 사태에도 오히려 손님이 더 늘었다. 하루 4000개가 팔린 날도 있었단다. 지금 초당동에는 젤라토를 파는 순두부집이 열 곳이 넘는다.

애초의 초당 순두부는 한이 서린 음식이다. 정쟁에서 밀려 대관령 너머까지 쫓겨온 초당이 만들어 먹었고, 전쟁에서 남편을 잃은 아낙들이 만들어 팔았던 음식이다. 이제는 아니다. 순두부젤라토 먹으려고 긴 줄을 선 젊은 세대의 얼굴은 하나같이 밝았다. 음식에 밴 사연 따위는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젤라토 한입 떠먹다가 격세지감을 실감했다. 순두부젤라토가 정말 고소했다.

손민호 레저팀장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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