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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수엘라 거덜낸 좌파 대통령, 바이든에 '유화 제스쳐' 이유는

중앙일보

입력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향해 유화적 제스쳐를 취하고 있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니콜라스 마두로 베네수엘라 대통령이 최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을 향해 유화적 제스쳐를 취하고 있다고 외신들이 보도했다. 로이터=연합뉴스

2,797,500볼리바르.  

블룸버그 통신이 물가상승률을 나타내기 위해 사용하는 지표 ‘카페 콘 레체’로 계산한 베네수엘라의 커피 한 잔 값이다. 돈이 휴짓조각이 돼버린 초인플레이션 상태로, 베네수엘라 경제가 얼마나 붕괴했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지표 중 하나다. 극심한 경제난에 최근 6년간 베네수엘라를 떠나 난민이 된 인원은 550만명이 넘었고, 인구의 3분의 1이 식량난에 허덕이고 있다. 자국 내 조사에 따르면, 빈곤율은 극빈국인 아이티보다도 높은 실정이다.

세계 원유매장량 1위로 한때 석유수출국기구(OPEC) 창립국이기도 했던 ‘좌파 부국’ 베네수엘라가 몰락한 배경의 중심엔 니콜라스 마두로(59) 현 대통령이 있다. 그런데 반미 정서를 활용해 포퓰리즘적 독재 정치를 해온 그가, 최근 조 바이든 대통령을 향해 유화적인 제스쳐를 연이어 보내고 있다. 외신들은 최악의 경제 상황에서 미국의 제재 완화를 끌어내 돌파구를 찾으려는 의도로 분석했다.

“바이든, 트럼프 때와는 다를 거란 기대”

이코노미스트는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제재 완화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AFP=연합뉴스

이코노미스트는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조 바이든 미국 행정부의 제재 완화 가능성을 기대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AFP=연합뉴스

1일(현지시간)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베네수엘라의 스트롱맨(강경 지도자)인 마두로 대통령이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모색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어 “야당과 회담을 재개하겠다고 선언하는 등 미국이 원하는 대로 양보함으로써 제재 축소를 설득하겠단 취지”라고 분석했다.

미국은 마두로가 취임한 2013년 이후 야당 탄압, 반정부 시위대 무력 진압, 부정 선거 등을 이유로 베네수엘라에 대한 경제적 제재 수위를 꾸준히 높여왔다. 특히 유럽연합(EU) 등 서방의 협공이 오랫동안 이어지면서 마두로는 국제적으로 고립무원 상태였다.

 니콜라스 마두로(오른쪽) 대통령이 데이비드 비즐리(왼쪽) 유엔(UN) 세계식량기구(WFP) 사무총장과 파견소 설립을 위한 서명을 하고 있는 모습. 미국이 오랫동안 요구해왔던 일이다. AFP=연합뉴스

니콜라스 마두로(오른쪽) 대통령이 데이비드 비즐리(왼쪽) 유엔(UN) 세계식량기구(WFP) 사무총장과 파견소 설립을 위한 서명을 하고 있는 모습. 미국이 오랫동안 요구해왔던 일이다. AFP=연합뉴스

실제로 AFP통신 등에 따르면, 마두로 대통령은 지난달 “EU 등의 중재 하에 모든 야권 관계자들과 만날 준비가 돼 있다”고 선언했다. 지난 4월엔 베네수엘라에 유엔(UN) 세계식량계획(WFP) 파견소를 세우라는 미국 정부의 오랜 요구에도 응했다. 이외에도 양국 간 대립을 끝내기 위해 노력해온 노르웨이 측 인사들과도 접촉했다고 한다.

마두로 대통령이 화해 모드에 나선 건, 단순히 미국이 베네수엘라의 돈줄을 옥죄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다. 이코노미스트는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때와 달리 바이든 정부는 자신을 축출하진 않을 거란 기대가 마두로 대통령에게 깔려있다고 봤다.

마두로 대통령을 부인하며 임시 대통령을 자처하고 나선 후안 과이도 베네수엘라 국회의장. 미국 등은 그를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마두로 대통령을 부인하며 임시 대통령을 자처하고 나선 후안 과이도 베네수엘라 국회의장. 미국 등은 그를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으로 인정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베네수엘라 침공을 제안하고, 마두로를 대신해 ‘임시 대통령’을 자처한 후안 과이도(38) 국회의장을 베네수엘라의 대통령으로 인정했다. 바이든 정부 역시,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이 마두로가 아닌 과이도 의장과 먼저 통화하는 등 비슷한 기조를 이어가고 있지만, 과거보단 관계 개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이다.

버스 운전기사 출신의 ‘차베스 아들’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마두로는 그의 포퓰리즘적 좌파 이념인 '차비스모'를 계승했다. AFP=연합뉴스

우고 차베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마두로는 그의 포퓰리즘적 좌파 이념인 '차비스모'를 계승했다. AFP=연합뉴스

젊은 시절 버스 운전기사였던 마두로는 노동조합 지도자로 두각을 발휘했다. 1998년 군인 출신인 우고 차베스가 창당한 ‘제5공화국’에 합류하면서 정계에 입문했다. 이어 베네수엘라 내무장관, 국회의장, 부통령으로 일하며 ‘차베스의 정치적 아들’이란 별칭을 얻기도 했다.

1999년부터 집권한 차베스 전 대통령이 암으로 사망하자 2013년 마두로가 대권을 이었다. 그는 ‘차비스모(차베스의 포퓰리즘적 좌파 이념)’ 노선을 계승했다. 차베스 전 대통령은 석유로 벌어들인 돈을 빈민층 무상 교육과 의료 복지 등에 썼는데, 마두로 역시 비슷한 정책을 이어갔다. 하지만 2014년 국제 유가가 급락하고, 부채를 갚기 위해 화폐를 무한정으로 찍어내면서 생긴 인플레이션 때문에 베네수엘라의 경제는 완전히 무너졌다. 마두로는 2018년 재선에 성공했지만, 당시 야당 인사를 압박하고 선거 날짜를 멋대로 바꾼 부정선거 덕분이라는 비난을 들어야 했다.

김선미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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