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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모범생서 백신낙제생 추락, 차이잉원 최대 정치 위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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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대만 타이베이의 수퍼마켓 입구에서 1일 직원이 손님의 체온을 측정하고 있다. 대만은 지난달 15일부터 하루 확진자가 급속도로 증가해 방역 위기를 맞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대만 타이베이의 수퍼마켓 입구에서 1일 직원이 손님의 체온을 측정하고 있다. 대만은 지난달 15일부터 하루 확진자가 급속도로 증가해 방역 위기를 맞고 있다. [로이터=연합뉴스]

“모두의 불안함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냉정함을 유지하길 부탁드립니다.”

대만 누적 확진 보름새 7000명 급증 #백신 접종률 1.8% 세계 최하위권 #병상·백신·진단약·물·전기 부족 #5무 정권 비판 속 총통 지지율 급락

지난달 31일 오후 차이잉원(蔡英文·65) 대만 총통이 코로나19 방역과 백신 문제와 관련해 긴급 연설을 자청했다. 차이 총통은 연설 중 “주식 투기, 부당이익 의혹을 조사했지만 공무원의 주식 문제는 없었다”며 백신 관련주 투기 의혹까지 해명했다.

차이잉원

차이잉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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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야생 표범’으로 불리며 인기 고공행진을 계속하던 차이 총통이 집권 6년 만에 ‘백신 낙제생’으로 전락하며 최대 정치 위기를 맞고 있다. 대만 중앙통신사에 따르면 대만은 지난달 14일까지 누적 확진자 165명, 사망자 12명(모두 대만 정부 기준)으로 대표적 방역 모범국이었다. 그러다가 불과 보름이 지난 1일 현재 누적 확진자 7647명, 사망자 137명으로 상황이 급변했다.

백신 접종자는 1일까지 41만8210명(접종률 1.78%)으로 세계 최하위권이다. 대만 질병통제센터(CDC)에 따르면 코로나 검사자도 지난달 30일까지 78만4046명에 불과하다. 여기에 오랜 가뭄으로 인한 물 부족, 과격한 탈원전 정책으로 5·13 대정전과 5·17 정전까지 발생하면서 차이 정부를 향해 병상·백신·진단약·물·전기가 없는 ‘5무 정권’이라는 비난이 쏟아진다.

이에 따라 차이 총통 5월 지지도는 45.7%로 4월 54.4%에서 10%포인트 가까이 하락했다. 여론조사기구인 대만민의기금회 조사 결과다. 반대는 29.9%에서 41.3%로 급증했다. ‘철벽 방역’을 보여줬던 지난해 5월의 지지도 71.2%와 비교하면 ‘추락’ 수준이다. 집권 민진당 지지도도 4월 33.3%에서 5월 23.2%로 떨어졌다.

차이 총통은 사과하느라 바쁘다. 지난달 17일 페이스북에서 정전 사고를 사과한 데 이어 26일엔 중국의 화이자 백신 구매 방해를 알리며 백신 사과문을 올렸지만 여론을 달래진 못했다.

대만 코로나19 확진자 증가 추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대만 코로나19 확진자 증가 추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야당은 총공세에 나섰다. 지난 대선에서 국민당 대선 경선에 참여했던 궈타이밍(郭台銘·71) 폭스콘 회장은 화이자 백신 500만 회분을 정부를 대신해 구매하겠다고 밝혔다. 역시 2020년 국민당 경선 후보였던 장야중(張亞中·67) 쑨원(孫文)학교 총장은 지난달 29일 쩡녠(曾念) 베이징 양안 동방문화센터 대표를 통해 화이자와 중국산 시노팜 백신 각각 500만 회분을 확보했다고 발표했다. 중국이 백신을 제공하며 차이 총통 흔들기에 나선 셈이다.

중국은 이를 틈타 정치 공세에 나섰다. 자오리젠(趙立堅)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달 28일 “양안 통일이 곧 지역과 세계 평화 안정을 수호하는 가장 아름다운 답안”이라고 말했다. 홍콩 명보는 1일 이에 대해 “양안이 통일되지 않으면 대만해협에 평화는 없다”는 의미의 강경한 발언이라고 풀이했다.

차이잉원 정부의 위기는 스스로 자초했다는 지적이다. 방역 성공에 안주해 후속 대책 마련에 총력으로 나서지 않다가 백신 대란을 불렀다는 비판이 거세다. 차이 총통은 방역 위기, 백신 위기를 극복하지 못할 경우 임기를 3년여 남기고 조기 레임덕에 들어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문흥호 한양대 국제학부 교수는 “차이잉원 정부는 홍콩 시위로 재집권에 성공했고, 코로나 덕에 고공 지지율을 유지할 수 있었다”며 “하지만 진짜 실력은 부족했다. 지금부터 대미·대중 정책을 어떻게 냉철하게 조정해 대응할지가 관건”이라고 말했다.

베이징=신경진 특파원 shin.kyung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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