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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원전 비용’ 최소 1.4조…전기요금으로 땜질할 길 열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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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동을 정지한 경주 월성 1호기 원전. 연합뉴스

가동을 정지한 경주 월성 1호기 원전. 연합뉴스

문재인 정부 공약인 탈원전 정책에 따라 발생한 손실을 국민이 낸 전기요금으로 메워주는 법안을 12월부터 시행한다. 현 정부 임기를 6개월여 남겨둔 시점에 시행한다는 점에서 탈원전 비용을 다음 정부에 떠넘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산업통상자원부는 1일 이런 내용을 담은 ‘전기사업법 시행령’ 일부 개정안이 국무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개정안은 원자력발전 감축을 위해 발전사업 또는 전원개발사업을 중단한 사업자에 대해 전력산업기반기금(이하 전력기금)으로 비용을 보전할 수 있도록 했다.

전력기금은 준(俊)조세에 가깝다. 국민이 매달 낸 전기요금의 3.7%를 법정부담금으로 부과해 쌓는다. 전력산업 성장 과정에서 필요한 공익사업과 전력 분야 기술 인력 개발을 위한 산업발전 분야에 사용하기 위해 조성한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 탈원전 비용 보전이나 한전공대 설립, 신재생 에너지 지원 사업 등에도 쓰였다. 매년 2조원가량 걷힌다. 지난해 말 기준 여유 재원은 약 4조원에 달한다.

산업부는 개정안을 시행하는 12월 초까지 비용 보전 범위와 절차 등 세부 내용을 담은 하위규정을 마련할 예정이다. 정부의 탈원전 정책에 따라 손실을 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주로 지원받을 전망이다. 한수원은 정부 탈원전 정책에 따라 월성 1호기를 조기 폐쇄했다. 또 삼척의 대진 1ㆍ2호기와 영덕의 천지 1ㆍ2호기는 사업을 중단했다. 신한울 3ㆍ 4호기는 사업을 보류한 상태다.

한무경 국민의힘 의원에 따르면 이들 원전 7기의 손실은 최소 1조4445억원으로 추정된다. 월성 1호기 5652억원, 신한울 3ㆍ4호기 7790억원, 천지 1ㆍ2호기 979억원, 대진 1ㆍ2호기 34억원 등이다. 월성 1호기의 경우 약 7000억 원을 들여 개ㆍ보수했다가 조기 폐쇄해 수천억 원의 세금을 날렸는데 다시 세금으로 메우는 셈이다. 한수원은 우선 신한울 3ㆍ4호기를 제외한 5기 원전에 대해 정부에 손실 보전을 신청할 예정이다.

한수원뿐 아니라 한전과 민간기업, 연구기관 등의 손실까지 고려하면 보전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정부가 공사가 끝난 신한울 1ㆍ2호기에 대한 가동 인가도 계속 미루고 있어 실제 탈원전 비용은 더 늘어날 수 있다.

한수원이 탈원전 비용에 대한 손실 보전을 청구하면 산업부 장관 등의 심사를 거쳐야 한다. 업계에서는 이런 일정을 고려할 때 차기 정부에서 한수원에 대한 기금 지원이 최종 결론 날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가 탈원전 비용을 국민과 기업에 떠넘기는 건 문제가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온기운 숭실대 경제학과 교수는 “탈원전에 따른 비용 부담은 누군가 떠안아야 할 짐이었는데 결국 국민이 지게 됐다”며 “향후 전기요금 인상 등 국민 부담이 더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전력기금에 대한 기업들의 부담이 크다는 점에서 보전비용 출처에 대한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2018년 중소기업중앙회가 중소기업 300곳을 설문한 결과 63%가 ‘지출이 가장 많은 부담금’으로 꼽힌 게 전력기금이다.

그러나 정부는 전기요금 인상과는 무관하다고 선을 그었다. 산업부 관계자는 “2017년 10월 국무회의에서 심의ㆍ의결한 에너지전환 로드맵을 통해 원전의 단계적 감축과 관련해 사업자가 적법하고 정당하게 지출한 비용에 대해 정부가 기금 등 여유재원을 활용해 보전한다는 원칙을 밝혔다”며 “사업자 비용 보전은 이미 조성한 전력기금 지출 한도 내에서 집행하기 때문에 전기요금 인상과 같은 추가적인 국민 부담은 생기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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