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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칠판 덩그러니" 줌 수업 못견디고 창업한 서울대 교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줌(Zoom)은 전쟁이 났는데 칠판 하나 놓고 야외에서 수업하는 것 같았어요. 전쟁통 속에서 실시간 수업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좋았던 거지, 수업이 끝나고 나면 영상 외엔 남는 게 없어 허무했습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 여파로 한 학기 동안 줌으로 수업을 하다 창업에 뛰어든 장대익(50)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교수의 말이다. 장 교수는 회의용으로 만들어진 줌으로는 제대로 된 교육과 학습을 할 수 없다는 생각에 지난해 11월 실시간 화상 수업 플랫폼 스타트업을 차렸다. 창업 후 ‘교수님’이 아닌 ‘네오님’(장 교수의 닉네임)으로 불리는 그를 지난 28일 판교 사무실에서 만났다.

‘타이밍 좋은’ 장 교수의 창업

장대익 교수와 그의 스타트업이 만든 실시간 비대면 교육 플랫폼. 장대익 교수 제공

장대익 교수와 그의 스타트업이 만든 실시간 비대면 교육 플랫폼. 장대익 교수 제공

장 교수는 자신의 창업에 대해 ‘타이밍이 좋았다’고 했다. 그는 10년간 서울대에서 학생을 가르치며 ‘교육’에 대한 고민을 계속 해왔다고 한다. 장 교수는 “대학은 500년 전에 40살 인생 흐름에 맞춰 만들어진 교육 체계”라며 “이제는 졸업하고 살아갈 시간이 훨씬 길고 40~50대에 배울 게 더 많은데 대학은 20대에서 끝나는 게 아쉬웠다”고 말했다.

대부분이 직장인인 40·50세대를 고려해 온라인 기반 교육 시스템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장 교수에게 코로나19는 기회였다. 그는 “이제 사람을 만날 수 없으니 새 온라인 교육 플랫폼이 필요하겠다고 생각했다”며 “어떻게 하면 실시간으로 실감 나는 비대면 화상 수업을 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가을부터 안식년에 들어간 장 교수는 “지난해 10월 교원 창업을 신청했고, 학교 측으로부터 창업을 허가받아 11월에 법인을 차렸다”며 “때마침 안식년이 찾아와 창업에 매진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실감 나는’ 화상 플랫폼…교육형 넷플릭스 꿈

에보클래스 수업 장면. '트랜스버스' 캡처

에보클래스 수업 장면. '트랜스버스' 캡처

그렇게 지난 3월 ‘에보클래스’라는 실시간 화상 수업 플랫폼이 탄생했다. 아직 시험용 플랫폼이라 정식 출시까지는 한 달이 남아 실험을 거듭하고 있다고 한다. 장 교수는 학생이 수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도록 에보클래스에 자동 음성 인식 기능을 추가했다. 이 기능을 통해 화자의 말이 실시간으로 자막 처리되고, 이는 모두 텍스트로 변환돼 데이터로 저장된다. 그는 “교수님 농담까지 받아적는 학생이 A+ 받는다는 말은 뼈아픈 소리”라며 “받아적는 대신 교수와 눈도 마주치고 몰입하고 소통하자는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에보클래스에선 교수가 각 조의 논의 과정도 모니터링할 수 있다. 수업 참여자의 말 빈도에 따라 각각의 화면 크기가 변화하는 식이다. 장 교수는 “수업에서 누구는 말을 많이 하고 누구는 안 하는 경우가 많다”며 “다만 동양에서는 자신의 얼굴이 크게 나오면 부끄러워하고 서양에서는 자랑스러워 하는 등 특성이 다를 것이기 때문에 상황에 맞는 효과에 대해 고민 중”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이어 “서울대에서 1학기에 3000개의 수업이 진행되는데 각자 듣는 수업 외에는 전혀 모른다”며 “데이터가 쌓인 뒤 허용하는 교수님에 한해 당시 강의 영상이 공개되면 다른 학생이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찾을 수 있다. 이를 통해서 각종 콘텐트를 제공하는 넷플릭스 같은 수업 OTT(over the top) 세상이 열리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사무실 와이파이 비밀번호는 ‘다윈 1859’

인간의 진화에 관심이 많다는 장 교수는 사람의 마음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인지과학자이기도 하다. ‘수업의 진화(Evolution of Class)’를 줄여 플랫폼 이름을 ‘에보클래스’로 지은 것도 진화에 대한 그의 끊임없는 관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장 교수의 사무실 와이파이 비밀번호도 ‘darwin 1859’다. 영국의 생물학자이자 진화론자인 찰스 다윈의 『종의 기원』 초판이 1859년에 출간된 것을 의미한다.

장 교수가 창업 전선에 뛰어든 것은 관찰자가 아닌 행위자로서 세상에 참여하고 싶다는 바람에서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수업을 하면서 학생들한테 ‘도전도 하고 실패도 해봐라’고 가르쳤지만 정작 나는 새로운 걸 도전해서 실패해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며 “이제 학자로서 세상을 관찰하고 해석하는 일이 아닌 행위자가 돼 세상을 변화시켜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돌아갈 곳 있어서 창업에 뛰어든 거 아니다”

그는 미팅 때마다 “어차피 돌아갈 곳이 있지 않냐”는 말을 자주 듣는다고 한다. 이에 대해 장 교수는 “제 인생의 목표는 ‘서울대 교수’가 아니다”라며 “그래도 교수를 그만두지 않고 창업을 한 것은 교수로서 교육에 대한 실험과 수업에 대한 고민을 가장 잘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인류를 위한 새로운 학습 플랫폼을 만들고 배움 공동체가 형성되면 이 플랫폼으로 전 세계 교육 격차를 줄이는 게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

정희윤 기자 chung.hee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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