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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신 휴가? 그냥 휴가도 못쓴다, 잔여백신 접종이 씁쓸한 그들

중앙일보

입력

"공무원 친구들은 하루 휴가를 받을 수 있어서 잔여백신 접종에 관심이 많더라. 백신 휴가 없는 회사에 다녀 다음날 상태가 안 좋아도 출근해야 하기 때문에 좀 망설여진다" (30대 직장인 A씨)

 네이버, 카카오톡 앱을 통한 '잔여백신 당일예약' 서비스 시작 첫날인 27일 서울 양천구 홍익병원에서 방문객이 노쇼 백신 현황을 검색하고 있다. [뉴스1]

네이버, 카카오톡 앱을 통한 '잔여백신 당일예약' 서비스 시작 첫날인 27일 서울 양천구 홍익병원에서 방문객이 노쇼 백신 현황을 검색하고 있다. [뉴스1]

27일부터 네이버·카카오를 통해 30세 이상 누구나 아스트라제네가(AZ) 잔여 백신을 당일 접종할 수 있게 됐지만, A씨는 오히려 망설임이 커졌다고 했다. 백신 이상 반응에 대한 걱정 외에도 백신 접종 이후 근무를 어떻게 할 것인지도 따져봐야 하기 때문이다. 공공 부문이나 대기업처럼 백신 휴가가 없는 회사에 다니는 이들의 얘기다. 배달 라이더 등 플랫폼 노동자나 다른 특수고용직 종사자도 마찬가지 처지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백신 접종이 시작된 2월 26일 서울 마포구보건소에서 의료진이 접종에 사용할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백신 접종이 시작된 2월 26일 서울 마포구보건소에서 의료진이 접종에 사용할 아스트라제네카(AZ) 백신을 준비하고 있다. [연합뉴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지난 2월 26일 이후로 백신을 맞은 1만8000명 중 32%가 불편감을 호소했다. 2.7%는 의료기관을 찾았다. 무작위로 뽑은 요양병원 20곳의 접종자 5400명을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전체의 1.4%는 이상 반응으로 하루 정도 연차를 사용했다고 한다.

백신 휴가 권고 수준…'백신 휴가 양극화'

정부는 상반기 공공부문부터 관련 지침을 만들고 고용노동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이 주도해 민간 사업장과 관련 협회에도 협조를 요청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권고 수준에 그치기 때문에 '백신 휴가 양극화' 지적이 나왔다.

현재 금융권이나 일부 대기업 등은 1~2일 백신 휴가를 회사 차원에서 보장하고 있지만, 중소·영세 기업은 백신 휴가가 없는 곳이 대부분이다. 직장인 김모(32)씨는 "아이 때문에 바깥 생활이 많은 제가 먼저 잔여 백신을 맞으려고 한다"면서 "회사가 백신 휴가 도입을 논의하고 있어 추이를 봐서 결정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희연요양병원 한의사가 AZ백신을 맞고 있다. [사진 희연요양병원]

희연요양병원 한의사가 AZ백신을 맞고 있다. [사진 희연요양병원]

병가도 기업 규모 따라 격차

백신 휴가와 비슷한 성격의 병가 휴가의 경우도 기업 규모에 따라 격차가 크다. 2016년 고용노동부 연구용역보고서에 따르면 300인 이상 기업 중 병가 도입비율은 95%, 유급 병가 도입 비율은 65%였다. 기업 규모가 작을수록 병가와 유급 병가 도입 비율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10~29인 회사의 경우 병가와 유급 병가 도입 비율이 각각 63.4%와 44.7%였고, 5~9인 사업장의 경우 각각 62%와 50%에 그쳤다.

AZ 외 선택지 없어 망설이기도

시민들이 26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역광장에 마련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임시 선별검사소에서 검사를 받고 있다. [뉴스1]

시민들이 26일 오전 서울 중구 서울역광장에 마련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임시 선별검사소에서 검사를 받고 있다. [뉴스1]

접종 가능한 잔여 백신이 아스트라제네카(AZ)뿐인 것도 일부 시민들이 망설이는 이유 중 하나다. 공공기관에 다니는 직장인 장모(32)씨는 "하루 휴가를 받을 수 있어 일찍 맞고 싶은데 소수에게라도 부작용이 드러나는 AZ 외에는 선택지가 없어서 고민이다. 또래들이 맞는 상황을 지켜본 뒤 잔여 백신을 맞아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백신 휴가 사용이 가능한 공무원이나 대기업 직장인들 사이에서도 "휴가도 마음대로 못 쓰는데 백신 휴가를 전날 신청해서 쓸 수 있겠냐"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백신예방 접종 확인서 [연합뉴스]

백신예방 접종 확인서 [연합뉴스]

"백신 휴가, 병가 제도화할 필요 있어"  

엄중식 가천대 감염내과 교수는 "코로나19에 효과적인 대응을 위해 백신 휴가 관련해서 국가가 권고 수준이 아니라 보다 강력한 방안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코로나 19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심화시켰다. 질병 예방을 위한 백신이나 병가 문제는 국가가 나서 정리해야지 기업에 촉구할 문제는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병가는 법적 근거가 없어 대기업과 공공부문만 가능한 제도다. 백신 휴가도 마찬가지다. 비용을 국가가 지원해 건강권 격차가 해소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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