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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롬비아 고속도로에 中 한자 간판? 이곳에서 무슨 일이

중앙일보

입력

“콜롬비아에서 특이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더 디플로맷)

중국 자본이 들어간 콜롬비아 고속도로 건설 현장. 한자 간판이 보인다. [엘콜롬비아노 홈페이지 캡처]

중국 자본이 들어간 콜롬비아 고속도로 건설 현장. 한자 간판이 보인다. [엘콜롬비아노 홈페이지 캡처]

최근 콜롬비아의 고속도로 건설 현장에선 종종 한자로 쓰인 간판이나 현수막이 보인다. 중국도 아니고 중국과 여러모로 깊이 엮여있는 동남아시아도 아니고, 태평양 건너 중남미 국가에서 왜 한자 간판이 자주 보이는 걸까.

미국 외교전문지 더 디플로맷은 최근 부쩍 밀착하고 있는 콜롬비아와 중국 관계를 다루며 “중국과 콜롬비아의 교류가 크게 증가했다는 사실은 거의 모든 분야에서 볼 수 있다”고 보도했다.

지난 2019년 만난 이반 두케 콜롬비아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EPA=연합뉴스]

지난 2019년 만난 이반 두케 콜롬비아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EPA=연합뉴스]

고속도로 건설에 막대한 중국 자본이 들어가는 등 경제적 지원ㆍ협력은 물론이고 문화적인 교류도 크게 늘었다. TV에선 중국 관련 다큐멘터리, 중국의 사극 드라마 등을 쉽게 볼 수 있다. 심지어 고위 관료들은 중국의 인권 문제에 대해 긍정적으로 언급할 정도다.

콜롬비아와 중국의 밀착에 국제사회가 주목하는 이유는, 이 나라가 ‘친미’ 국가 중에서도 대표적인 곳이라서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미국의 라틴아메리카 정책에서 핵심이 되는 나라”라고 꼽은 국가이기도 하다. 중남미 대륙을 ‘뒷마당’으로 여겨온 미국 입장에선 가장 오랫동안 친미 노선을 유지해온 콜롬비아가 중국과 가까워지는 모습이 불편할 수밖에 없다.

중국 백신을 들여온 콜롬비아 [AFP=연합뉴스]

중국 백신을 들여온 콜롬비아 [AFP=연합뉴스]

◇ 코로나19 의료ㆍ방역 물심양면 지원한 중국

뭐니 뭐니 해도 중국과 콜롬비아가 가장 밀착한 분야는 의료ㆍ방역 부문이다.

콜롬비아는 코로나19로 가장 큰 피해를 입은 나라 중 하나다. 현재까지 총 사망자 수가 8만 명에 육박한다. 길고 엄격한 봉쇄 정책이 시행됐지만 그 대가는 혹독했다. 지난해 GDP는 6.8%나 감소했고 빈곤율은 약 7%가량 증가해 42.5%에 달한다. 실업률은 15.9%(지난 2월 기준)를 기록했다. 전염병보다 가난이 더 두려운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온 탓에 더 이상 봉쇄 정책도 통하지 않는다.

사면초가에 빠진 이반 두케 대통령에 손을 내민 곳이 바로 중국이다.

150만 달러에 달하는 인공호흡기, 진단키트, 마스크 등 의료장비는 물론 식량까지 보냈다. 말 그대로 전폭적인 지원이었다. 현재 콜롬비아가 수급한 백신의 약 77%는 중국의 시노백 백신이다.

콜롬비아에서 들여온 중국 백신 [로이터=연합뉴스]

콜롬비아에서 들여온 중국 백신 [로이터=연합뉴스]

그러니 중국과의 관계가 끈끈해지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이제 우리는 중국과 전략적 파트너이자 친구가 됐다”(콜롬비아 외무장관)는 말이 내부에서 나온다. ‘진해진 우정’을 바탕으로 중국은 철도ㆍ광산ㆍ통신 네트워크 등 전분야에서 협력을 더욱 적극적으로 밀어붙이고 있다.

◇ ‘친미’와 ‘친중’ 사이 경제적 이익 고민하는 중남미

그렇다면 이 나라는 미국에 완전히 등을 돌린 것일까. 적어도 콜롬비아 정부가 ‘의도적으로’ 미국을 멀리하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워낙 오래된 관계인 데다 지리적으로 가까워서다. 다만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실리를 두고 고민이 깊은 것으로 보인다.

비즈니스인사이더는 “콜롬비아를 비롯한 중남미 지도자들은 미국과 중국의 경쟁을 자국 이익에 활용하고 싶어 한다"라며 이 나라가 중국의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더욱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최근 콜롬비아에서 격하게 일고 있는 반정부 시위 [AFP=연합뉴스]

최근 콜롬비아에서 격하게 일고 있는 반정부 시위 [AFP=연합뉴스]

당분간 중국과 콜롬비아의 관계가 깊어지는 것을 막기 힘들 것이란 분석이다.

콜롬비아의 칼럼니스트 호세 모스케라는 중남미 경제매거진 아메리카에코노미아에 기고한 글에서 “두케 정부가 워싱턴에서 베이징으로 시선을 옮긴 것은 여러모로 의미심장하다”며 “멕시코에서 칠레에 이르는 남미 태평양 연안의 인프라 개발은 우리의 경제적 이익을 위해 매우 중요할 것”이라고 썼다.

콜롬비아가 중국의 '러브콜'을 잘 활용해 중남미 대륙에서 경제적 이득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주장이다. “오랫동안 미국 편에 굳게 서 있던 나라가 중국의 글로벌 프로젝트에 참여하는 쉽지 않은 결정"(더 디플로맷)을 내린 이유일 터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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