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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양호 “조세, 복지로 연결돼야”···‘吳안심소득’ 성공의 조건

중앙일보

입력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VIG파트너스 고문)이 20일 서울 중구 서소문 VIG파트너스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변양호 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VIG파트너스 고문)이 20일 서울 중구 서소문 VIG파트너스 사무실에서 중앙일보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김상선 기자.

“안심소득, 조세제도 연결이 과제가 될 것이다.”

변양호(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VIG파트너스 고문이 지난 20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최근 김낙회ㆍ이석준 등 전직 경제관료 5명과 함께 『경제정책 어젠다 2022』란 책을 펴냈다. 노벨경제학상(1976년) 수상자인 밀턴 프리드먼이 제시한 '음소득제(Negative Income Tax)'를 토대로 한국에 ‘부(負·마이너스) 의 소득세’를 도입하자는 내용이다. 복지와 조세를 하나로 묶어, 저소득층에 현금(마이너스 세금)을 지원하는 내용이 골자다. 국민 모두에게 일정 금액을 나눠주는 이재명 경기지사의 기본소득과 대비되는 방안이다.

'부의 소득세' 설계자 변양호 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 인터뷰

부의 소득세는 오세훈 서울시장이 시범사업을 준비 중인 안심소득과도 꼭 닮았다. 안심소득은 박기성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가 만든 용어다. 하지만 『경제정책 어젠다 2022』도 서울시의 주요 참고 자료다. 실제로 오 시장은 주변에 일독을 권하고 있다. 책의 공저자인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은 오 시장이 발족한 자문기구, 서울비전2030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기도 하다. 변 고문은 “소득에 따라 어려운 사람을 돕자는 기본 생각은 같지만, 조세제도와 연결 면에서 부의 소득세와 안심소득은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다음은 변 고문과의 문답(※는 독자의 이해를 돕기 위한 편집자주)

변양호 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VIG파트너스 고문). 김상선 기자.

변양호 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VIG파트너스 고문). 김상선 기자.

전직 경제관료들이 의기투합한 계기가 궁금하다.
“부의 소득세 관련 주장은 꽤 오래 전부터 해왔다. 이걸 구체화하기 위해서 얼마의 돈을 써야 하나, 어떻게 조달해야 하느냐 따져야 했지만, 내게 그런 능력은 없었다. 김낙회 전 관세청장을 만나 책 이야기를 구체화했다. 다른 사람들도 취지에 공감해 순차적으로 참여하게 됐다.”
왜 지금 부의 소득세를 해야 하는가.  
“우리 경제시스템은 자유롭지도 공정하지도 않다. 복지시스템은 아직 낮은 수준인 데다 체계적이지도 않다. 4차 산업혁명으로 새로운 기술이 등장하면, 생산성은 높아지고 일자리도 없어진다. 제품을 만들어도 수요가 준다. 이런 상황에서 프리드먼이 얘기했던 음소득제가 새롭게 조명을 받을 시점이 되지 않았나 생각한다."

안심소득은 복지 '일부 축소'…부의 소득세는 '통합'   

안심소득과 부(負)의 소득세.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안심소득과 부(負)의 소득세. 그래픽=김현서 kim.hyeonseo12@joongang.co.kr

서울시는 ‘안심소득’이라는 비슷한 제도를 준비 중이다.  
“안심소득하고 부의 소득은 기존 제도를 얼만큼 개혁하느냐의 차이가 있다. 부의 소득세는 조세제도가 곧 복지제도가 되는 개념이다. 반면 안심소득은 기존 복지제도를 상당부분 두고 급여제도로 병행하겠다는 생각으로 안다.”

※서울시가 설계 중인 안심소득 역시 기초생활보장제도 중 일부 급여와 근로·자녀장려금 등을 사실상 폐지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부의 소득세는 여기서 한발 나아가 현금성 복지 대부분도 폐지·통합한다는 개념이다.

부의 소득은 개인, 안심소득은 가구를 기준으로 한다는 것도 주요 차이점이다.  
“현재 복지제도 기준을 맞춘다면, 가구별로 했을 때 좋은 점도 있다. 그러나 가장 큰 문제는 가구를 분리하거나 위장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4인 가구 중 한명만 돈을 벌고 3명은 벌이가 없다고 치자. 그래서 4인 가구 합산으로 안심소득 대상이 안된다면, 벌이가 있는 1명만 떨어져 나올 수 있다. 출산과 결혼에 대한 인센티브를 위해서, 현재 조세제도와의 연계를 위해서도 개인으로 주는 게 낫다고 본다.”

※서울시의 안심소득안은 4인 가구 중위소득(6000만원)을 기준으로, 그 이하는 차액의 50%를 지급하는 방식이다. 4인 가구 기준 소득이 0원일 때, 월 지급액은 250만원(250만원×12=연 3000만원) 정도다. 부의 소득세는 개인의 최저생계비를 연간 1200만원으로 잡고 차액의 50%를 지급한다. 소득 없는 개인은 월 50만원(50만원×12=연 600만원)을 받는다.

"일자리 만들기 중요…안심소득, 지자체론 한계”

변양호 전 제정경제원 금융정책국장. 전민규 기자

변양호 전 제정경제원 금융정책국장. 전민규 기자

부의 소득세가 근로 활동을 늘릴 수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일자리 찾기가 힘든 시기다. '복지가 근로의욕을 해치면 안된다'는 생각에서 제도를 만든다면 맞지 않다. 어떻게 돈을 벌 것인가, 일자리를 어떻게 더 많이 만들것인가를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경제활동을 자유화하고, 노동시장을 유연하게 해 자유롭게 고용할 수 있도록 하되 어려운 사람은 체계적으로 도와줄 수 있어야 한다. 타협을 이룰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의미다. 정치권에서 잘 조정해줘야 한다.”
공저자인 이석준 전 국무조정실장이 서울시 자문기구 위원장을 맡고 있다. 
안 그래도 이 전 장관이 오세훈 서울시장의 요청으로 서울비전2030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최근에도 한번 만났다. 안심소득과 관련한 구체적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다만 생각보다 과제가 너무 많아서 바쁘다고만 들었다.”
서울시 실험의 한계는 무엇인가.  
“지자체에서 한다면 안심소득 형태로 밖에 갈 수 없을 것이다. 소득자료가 지자체에는 충분치 않다.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관련해서 비슷한실험을 한 해외 사례가 있다. 그 결과를 스터디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책에는 1960년대 후반과 70년대 초반, 미국과 캐나다 일부 5개 지역에서 진행된 부의 소득세 실험 내용이 담겨있다. 노동유인효과는 일부 감소했지만 주택 소유 증가, 부채 감소 등 삶의 질은 다소 올라간 것으로 소개한다.

안심소득이건, 부의 소득세건 소득 파악이 중요할 거 같다.  
“소득 파악을 전제로 정부에서 매달 얼마를 주는 것이기 때문에 중요한 문제다. 그러나 우리의 세정 능력과 IT(정보기술)을 활용한다면 할 수 있다고 본다.”
큰 예산이 드는 데다, 기존 복지제도를 정리하는 일도 어렵지 않나
“굉장히 어려운 게 맞다. 예산지출에서도 상당한 조정이 필요하다. 지자체별로 이뤄지는 복지제도도 손봐야 한다. 사회적 대타협을 방법론으로 책에서 적었다.”  

※책에서는 부의 소득세의 대상이 3370만 명이며, 각종 공제를 축소하고 복지예산을 통합해 구조조정을 하는 것을 전제로 97조1000억원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변 고문은 지인들에게 책을 나눠주며 ‘유능한 정치세력의 등장을 기대하며’라는 문구를 써주곤 한다. 『경제정책 어젠다 2022』 서문의 제목은 ‘2022 새로운 경제 시스템 구축을 기대하며’다. 표현은 달라도 같은 말로 들린다. 유능한 정치세력은 곧, 새로운 경제시스템 구축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장주영·허정원 기자 jang.joo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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